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2년 8~11월 정보통신기술(ICT)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 관련 제품 개발·출시 과정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기술은 ‘인공지능(AI·46.1%)’이었다. ‘빅데이터(34.0%)’ ‘사물인터넷(13.3%)’ ‘모바일 5·6세대(G·11.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AI는 업종, 매출액 규모와 무관하게 개발·활용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와 관련한 기술은 대부분 자체개발로 확보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이들 기업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 ‘정부의 세제지원(50.9%)’이 가장 많았고 ‘연구·개발(R&D) 자금 지원(26.7%)’ ‘정보 제공 및 직원 교육(14.1%)’ 등의 순으로 답변했다.
윤석열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는 이와 같은 응답이 담겨 있다. 디지털 경제 패권, 과학기술 시스템 재설계, 우주경제 실현 등의 목표를 골자로 과학기술·디지털 정책 기틀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2월 2일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3’ 혁신상 수상 벤처·스타트업을 초청한 자리에서 “첨단 과학기술과 디지털 기반의 혁신에 국가 경쟁력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미래 생존이 걸려 있다”고 한 발언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AI·빅데이터·클라우드 기반 강화
그동안 우리나라 R&D 규모는 크게 성장했으나 주요국 대비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디지털 정책 재정립에 나서고 있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를 출범하고 데이터 정책 컨트롤타워(지휘본부)를 신설했다. 또 12대 전략 기술을 선정하고 국가임무 중심의 R&D 체계로 전환해가고 있다.
신기술 기반 미래 산업을 선점하는 데 있어 양자·바이오·탄소중립·6G·메타버스 기술 등을 중점 육성하고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할 딥사이언스(Deep Science) 창업과 스케일업(규모 확대) 활성화를 병행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최신기술 분야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미래 먹거리를 찾는다는 구상이다. 초기기업(스타트업)은 그 비전을 실현하는 중심축이다.
정부는 양자 컴퓨팅·통신·센싱 등에 2023년 984억 원을 투입해 양자기술 전략 로드맵에 따른 맞춤형 기술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디지털 융합형 인프라(기반시설),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데 바이오파운드리, 바이오데이터스테이션 등과 유전자 편집·제어, 줄기세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안전성·경제성이 우수한 혁신형 소형모듈형원자로(SMR) 개발과 탄소포집(CCUS) 원천기술 개발 등도 함께 추진한다.
초격차 전략기술을 육성해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기술패권 경쟁시대, 글로벌 시장 선도와 국익·안보 확보를 위해 필수 전략 기술 육성에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면서다. 경제성장과 안보 차원에서 주도권 확보가 필수인 전략 기술을 지정해 초격차를 선도하고 대체불가 기술 확보를 집중 육성할 방침이다.
ICT 기업이 제품 개발·출시 과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답한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의 핵심 기반 강화에도 힘쓴다. 메타버스·디지털플랫폼 같은 신산업 육성은 디지털 경제 패권 국가로 도약하는 데 주요 자산이 될 것이다. 최고 수준의 AI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AI R&D를 추진하고 AI 반도체 육성을 추진한다. 재난안전·교육·복지 등 전 분야에 AI를 전면 활용할 계획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 환경 확립
국가 R&D 100조 원 시대.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과학기술 시스템 재설계는 정부의 주요 목표다. 정부는 총지출의 5% 수준을 R&D 예산에 배정할 만큼 관심이 높다. 기술·환경 변화에 신속·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추진하고 R&D 예타 기준을 1000억 원으로 상향해 평가제도 개선, 성과 활용 지원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세제 지원 확대 등 다양한 민간 R&D 지원을 강화하고 기술영향평가를 통해 규제 이슈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대응한다.
인력지원 정책에서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환경을 확립하는 데 방점이 있다. 연구자 주도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투자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자 주도의 기초연구와 국가 수요를 반영한 임무 지향형 기초연구 투자를 확대하고 사업 간 연계를 강화한다. 젊은 연구자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우수 연구자까지 연구생애주기별 지원을 확대해 연구의 연속성을 높일 방침이다.
정부의 과학기술 기반 정책 주체는 국민·기업·정부 어느 하나 빠질 수 없다. 정부는 국민이 익숙한 민간 플랫폼 등과 연계한 공공서비스를 개발, 전달해 민간의 혁신 역량을 적극 활용하는 가운데 데이터 분석을 통한 정책효과를 정밀 예측하는 등 국정 운영의 과학화를 실현해갈 계획이다. 한 번의 인증, 한 번의 정보입력, 한 번의 결제로 각종 공공서비스를 처리할 수 있도록 민·관 협업 기반의 범정부 데이터·서비스의 개방·연계·활용 인프라를 구축한다. 국민에게는 통합적·선제적·맞춤형 행정서비스를, 기업에는 새로운 혁신기회를, 정부에는 과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선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