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다. 2023년 1월 5일부터 나흘간 열린 ‘CES 2023’에는 177개국 3200여 개의 기업이 참가해 11만5000여 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이중 한국에서는 469개 사가 참여했다. 참가 기업의 국적으로 따지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가 한국 기업이었다.
참가한 기업의 수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것은 기업들이 이뤄낸 성과다. CES에서는 별도로 시상식이 열린다. ‘혁신상(Innovation Awards)’ 프로그램이다. 기술과 디자인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제품과 서비스에 주는 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제품·서비스는 ‘최고혁신상(Best of Innovation)’을 받는다.
이번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기업은 20개였다. 이중 45%인 9곳이 한국 기업이었다. 그 중 5곳이 스타트업이다. 역대 가장 많은 수다. 각각 장애인·노약자 등을 위한 접근성(Accessibility) 부문, 스마트시티 부문, 음악 스트리밍(Streaming) 부문, 사이버보안과 사생활보호 부문, 가정용 기기 부문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최고혁신상이 아니라도 혁신상을 받은 434개 기업 중 111개 사가 한국의 벤처·스타트업이었다.
확실히 CES 2023에서는 한국 기업의 활약이 빛났다. 벤처·스타트업의 제품·서비스가 전시되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내 유레카파크 곳곳에서 한국 기업을 찾아볼 수 있었다. 기업이 마련한 공간마다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들으려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별도로 조성한 K-스타트업 전시관에는 2022년 9월부터 혁신상 수상 전략 컨설팅 등을 받아온 51개 스타트업이 참가했다. 이중에서 14개 사가 혁신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라오나크’는 손잡이를 돌리거나 내리지 않고 자동으로 문을 열 수 있는 지능형 잠금장치(도어록) 제품을 선보여 세 개 분야에서 동시에 혁신상을 수상했다. 스타트업 ‘에바(EVAR)’는 자율주행 전기충전로봇 ‘파키’로 두 개 분야에서 수상했고 전기차 충전기 ‘브이엠씨(VMC)’로 또 혁신상을 받았다. 에바는 ‘CES 2022’에서도 두 개 분야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바 있다.
K-스타트업관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CES에 참가한 대다수 스타트업은 정부의 지원을 받은 바 있다. 혁신상을 수상한 벤처·스타트업의 78.4%가 중기부의 창업지원 사업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은 점차 예비창업자와 초기창업 단계를 넘어서 스케일업(규모 확대)과 생태계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CES 2023’에 참석해 언론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스케일업과 글로벌화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기부의 ‘아기유니콘 200 육성사업’은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는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예비유니콘 기업으로 육성하는 사업이다. 예비유니콘은 유니콘 전 단계의 기업으로 기업가치가 1조 원에는 못 미치지만 1000억 원 이상인 기업이다.
아기유니콘 200 육성사업에 선정돼 후속투자를 완료한 116개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총 1조 4080억 원이다. 이중 26개사는 집중적인 투자를 받고난 이후 기업가치 1000억 원 이상의 예비유니콘이 됐다. 전체적으로 봐도 이들 기업의 가치가 3.5배 늘어났다는 것이 중기부의 설명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웹툰을 자동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 ‘테라핀’은 기업가치가 13배 넘게 늘어났다. 2022년 매출액도 283억 원을 넘었다.
‘쓰리아이’는 ‘CES 2023’에서 혁신상도 받은 스타트업이다. ‘피보 맥스’라는 촬영 시스템을 선보였는데 자동으로 사람을 인식해 촬영을 도와주는 기술이다. 고가의 촬영 장비가 없어도 누구나 쉽게 개성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아기유니콘 200 육성사업에 참여한 지 2년 만에 기업가치가 1000억 원을 넘어 예비유니콘이 됐다.
이처럼 2023년 벤처·스타트업 정책은 크게 세 가지다. ▲세계로 진출하는 글로벌 유니콘 육성 ▲디지털·딥테크 벤처·스타트업 집중 육성 ▲청년들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창업환경 조성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유망 스타트업을 선별하고 집중 지원하는 한편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기업과 스타트업을 공동 육성하고 해외 우수인재를 유치하는 데도 힘을 기울인다.
윤석열 대통령도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의사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2월 2일 최고혁신상을 받은 5개 벤처·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등 42명을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 벤처·스타트업들이 그 치열한 현장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우수한 기술력과 혁신 역량을 보여준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첨단 과학기술과 디지털 기반의 혁신에 국가 경쟁력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미래의 생존이 걸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과학기술·디지털 분야 혁신 스타트업 중에서 세계적인 ‘유니콘기업’이 대거 탄생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고 우수인재 유치와 또 투자생태계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CES와 ‘혁신상’
Innovation Awards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박람회로 불리는 CES에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이 총출동한다. 주관사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에 따르면 ‘CES 2023’에는 미국 잡지 <포춘>에서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331개 기업이 참가했다.
이곳에서 수여하는 혁신상은 87명의 전 세계 전문가로부터 심사받은 제품·서비스만 받을 수 있다. 단 혁신상을 수상한 제품은 3개월 안에 시장에 출시해야 한다. 자연히 대기업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이다. ‘CES 2023’에선 삼성전자가 46개, LG전자가 28개 혁신상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벤처·스타트업이 혁신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술력이 충분히 입증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를 갖는다. CTA는 네 개 혁신상을 받았던 에듀테크 기업 클락슨(Klaxoon)의 성공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클락슨은 혁신상을 받은 이후 승승장구해 120개국에서 100만 명 넘는 이용자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