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딱다구리가 도연 스님이 준비한 먹이를 먹고 있다.| 이길우
지장보살이 정말 보인다. 차를 모는 스님이 가리키는 먼 산에 부처가 누워 있다. 머리 부분이 지장산이다. 스님은 오래전 경기도 포천과 철원에 걸쳐 있는 지장산 기슭에 거처를 마련했다. “지장보살이 어떤 분인 줄 아나요?”
스님이 설명한다. 지장보살은 인도 바라문의 딸이었다. 바라문(브라만)은 고대 인도에서 제사와 교육을 담당한 최고로 높은 계급이다. 딸의 어머니는 생전에 부처를 비방하고 다녔다. 어머니가 죽자 딸은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졌으리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죄를 대신 빌며 살아온 딸의 공덕에 힘입어 무간 지옥에서 고생하다가 천상으로 올라갔다.
이를 안 딸은 지옥에 빠진 모든 중생이 제도(죄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일)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딸은 주위의 어려운 이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벌거벗은 몸이 됐다. 결국 자신의 벗은 몸을 감추기 위해 땅을 파고 자신을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장(地藏)보살이다. 땅의 신이 됐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이후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무불(無佛) 시대에 이승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는 보살이다. 그러니 지장보살은 희생의 보살이고 이타의 보살인 셈이다.

▶참새들이 도연암의 텃새 역할을 한다.| 이길우

▶멧비둘기가 주변을 경계하며 도연 스님이 준 먹이를 먹고 있다.| 이길우
목탁 대신 전기 톱 든 ‘목공 달인’ 스님
지장산 기슭에 머물고 있는 도연 스님의 요즘 하루 일과는 둥지상자(새집)를 만드는 일이 대부분이다. 승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목탁 대신 전기 톱을 들고 나무를 자른다. 각종 전동 기구를 익숙하게 다루는 모습이 속세의 ‘목공 달인’ 같다.
봄철은 새들이 알을 낳는 시기다. 스님이 만든 둥지상자 속으로 새들이 들어가 부드러운 가지를 물어다가 알을 품을 둥지를 짓는다. 그러니까 새들이 자신의 집을 지을 수 있게 튼튼한 아파트를 제공하는 셈이다. 서울시에서 스님의 둥지상자 300개를 주문했다. 서울시는 스님이 만든 둥지상자를 서울 주변의 산에 있는 나무에 설치한다.
스님이 머무는 도연암 마당에는 전국으로 보낼 둥지상자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스님이 수십 년 새를 관찰하고 새장을 만든 기술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새들이 드나드는 입구의 크기도 다르고 둥지상자의 크기도 다르다. 참새, 박새. 곤줄박이 같은 작은 새들이 머무를 둥지상자의 입구 직경은 25~30㎜이고 크기도 작다. 찌르레기. 원앙, 솔부엉이 같은 덩치가 큰 새들이 머무를 둥지상자의 입구는 50~70㎜이고 크기도 비교적 크다.
스님이 표준화하고 규격화한 둥지상자의 종류는 일곱 가지. 여기에 주변의 자연 환경과 어울리고 보는 사람이 즐겁게 예쁜 색을 입힌다. 스님이 지금까지 만들어 나무에 매달은 둥지상자는 3000여 개다.

▶참새들이 도연 스님이 마련해준 둥지상자에서 놀고 있다.| 도연 스님

▶도연 스님이 자신의 목공 공방에서 조립한 둥지상자를 설명하고 있다.| 이길우
40년간 둥지상자 3000여 개 만들어
스님은 새 전문가다. 새를 관찰하고 새를 사진으로 찍고 둥지상자를 만들어온 세월이 40년을 넘는다. 스님 주변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든다. 각종 새들의 지저귐이 마치 오케스트라 화음 같다. 눈을 감고 몇 종류의 새 소리가 나는지 가늠해본다.
바람소리와 풀벌레 소리, 바람결에 잎파리 부딪치는 소리와 풍경 소리를 배경으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애잔하게 산속의 공기를 메운다. 가까이서 멀리서 각종 새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성을 유혹하기도 하고 동료에게 먹잇감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도 하고 뱀 같은 적의 출현을 경고하기도 한다. 새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도연 스님이 설명한다. “새들은 둥지상자를 1년에 25일 정도 사용합니다.” 둥지상자를 발견한 새는 그 안에 알을 품을 자신의 둥지를 만드는 데 열흘 정도 보내고 알을 낳아 보름 정도 품는다는 것이다. 새들이 번식하는 데 천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둥지상자가 하는 셈이다. 둥지상자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도연스님의 설명은 계속된다.
“120년 전 독일의 베를레프슈라는 남작은 새를 무척 좋아했어요. 자신의 정원에 많은 새가 깃들어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세계 최초로 둥지상자를 만들어 나무에 달아주었고 새들이 그곳에 알을 낳아 새끼를 키웠어요. 그런데 어느해 그 도시에 해충인 목화명나방이 퍼지며 나무들이 죽기 시작했는데 베를레프슈 남작의 숲에는 새들이 많아 목화명나방의 애벌레를 잡아 먹어 정원이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둥지상자는 숲을 보호하는 장치로 이름을 날리며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지장산은 누워 있는 부처의 얼굴 부분(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새는 무엇 하나 소유하지 않아”
새들이 주로 먹는 것은 벌레들의 유충이다. 벌레 입장에서 새는 무서운 존재다. 하지만 먹고 먹히는 것은 자연의 섭리. 새들이 숲의 생장에 해로운 벌레들의 애벌레를 주로 먹기에 둥지상자를 짓는 일이 보람 있다.
커피에 조예가 깊은 스님은 100년이 넘은 커피 분쇄기로 원두를 갈아 깊은 맛의 커피를 함께 마시자고 했다. 이와 함께 최근에 배운 제빵 기술로 스님이 직접 만든 빵도 곁들인다. 스님에게 물었다. “왜 새와 이리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까?”
“처음 불가에 귀의해 모든 인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운수납자(雲水衲子)의 길을 선택했어요. 선지식을 찾아 구름처럼 물처럼 자유롭게 떠다녔죠. 그러다가 철원의 겨울 들판에서 수많은 기러기와 두루미가 자유로이 비행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탄했어요. 아! 진정한 자유가 저런 것이 아닐까? 근처 지장산에 컨테이너로 거처를 마련하고 새를 찍기 시작했어요. 새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조류도감을 사서 공부하고 새에게 방해 되지 않으면서 관찰하기 위해 망원경도 사고 망원렌즈도 챙겼어요.”
“새들에게 불심(佛心)이 있나요?”
“인류는 직립보행을 하면서 손을 쓰고 무엇이든 소유하려했어요. 심지어 무기까지 들었어요. 마구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새는 손 대신 날개가 있어요. 하늘을 나는 새는 무엇 하나 소유하지 않습니다. 집도 절도 없습니다. 잘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웁니다. 저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삽니다.”
도연 스님의 새 이야기는 계속된다.
“새들은 떠날 때가 되면 기별도 없이 사라져요. 수백 마리씩 무리지어 날아와 먹이를 먹던 새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단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사라집니다. 허전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지요. 그런 새들을 보며 떠남과 만남이 반복되는 삶의 진리를 깨닫습니다. 애써 지은 둥지를 버리고 훌훌 떠나는 모습에서 무소유의 미덕을 배웁니다.”

▶도연암 마당에 도연 스님이 만들어 나무에 매달아 놓은 둥지상자들
“다시 태어난다면 새가 되고 싶어”
“만약 다시 이승에 태어난다면?”
“해탈을 못하고 이승에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되고 싶어요.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자연생태학교를 운영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어린이들이다. 이들에게 새들을 보여주고 새장을 직접 만들게 하면서 자연속에서 인간이 다른 생명을 다치게 하지 않고 살아갈 지혜를 일깨워준다. 스님은 인간 역시 야생동물이나 들풀처럼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규정짓고 자연을 파괴하면서 살아갑니다. 헛된 욕심을 채우는 데 정신이 없습니다. 인간도 거대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들이 일깨워줍니다.”
스님은 컨테이너로 만든 절집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생전 법정 스님과 많은 교류를 나누었던 도연 스님은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다. 커피 향이 짙게 깔리는 숲속에 동박새가 날아든다. 아주 익숙하게 스님이 준 먹이를 입에 물고 스님을 지긋하게 바라본다.
“고마워요. 스님.”

이길우_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해 34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한민족과 이 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족의 무예, 공예, 민간신앙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 꾸준히 발굴·소개한다. 저서로 <고수들은 건강하다>, 사진집 <신과 영혼의 몸짓 아첼레란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