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시 청라면 오서산자연휴양림
단풍이 가을의 전부가 아니다. 하늘거리는 억새 물결도 단풍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단풍철과 동시에 억새철도 온다. 억새 감상을 제대로 하려면 산에 오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흔히 억새와 갈대를 혼동하는데 갈대는 습지나 물가에서 자라지만 억새는 산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억새 명소로는 강원 철원군 명성산, 강원 정선군 민둥산, 경남 합천군 황매산 등이 있다. 자연휴양림 중에서는 충남 보령시의 오서산자연휴양림(이하 오서산휴양림)이 대표적이다.
노란 환영 받으며 서해안의 등대 산으로
충남 서부, 보령시와 홍성군에 걸쳐 있는 오서산(791m)은 ‘서해안의 등대’로 불린다. 근처에 높은 산이 없는 데다 정상에서 서해안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기 때문이다. 등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백패커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유명한 산이다. 낭만적인 일몰을 감상하고 부드러운 억새 품에서 잠들 수 있으니 캠퍼들의 로망이 아닐 수 없다.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자연을 훼손시킬 우려였다. 이런 우려 없이 자유롭게 오서산 억새를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떠오른 곳이 바로 오서산휴양림이다. 오서산휴양림 야영장에 텐트를 치면 억새 능선을 실컷 걸을 수 있다.
오서산휴양림은 보령시 청라면에 자리한 국립휴양림이다. 출발지에 따라 서해안고속도로 광천IC 또는 대천IC를 경유하게 된다. 소요 시간은 비슷하다. 공통점은 어디서 오든지 가을이 한창인 황금 들판과 노란 은행나무들의 환영을 받는다는 것. 오서산휴양림으로 가는 길의 장현마을은 ‘은행마을’이라 불린다.
오서산휴양림에는 다양한 색이 공존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기린 두 마리와 노랑·빨강 하트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빨간 벤치는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이다. 휴양관 앞에는 무지개색 연필들이 서 있다. 노란 은행잎이 그려진 목공예장도 귀엽고 특색있다. 숲속의 집들 앞에는 바람개비 동산이 있다. 빨강·노랑·파랑 바람개비들이 동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빨간 시소 벤치를 타는 아이들은 엉덩이가 아프지도 않은지 까르륵대며 즐거워한다.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색들에 더 즐겁게 반응한다. 오서산 포토존을 보면 숲에도 색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봄, 여름, 가을은 자연이 주는 천연색으로 빛나고 삭막한 겨울의 숲은 화려한 인공의 색이 채워준다.
오서산휴양림에는 숲속의 집 8개 동과 연립동 3개 동, 산림문화휴양관 1개 동, 그리고 아담한 야영장이 하나 있다. 입구에 있는 하트 동산 뒤쪽으로 가면 바로 숲속의 집들이 나온다. 개나리, 채송화 등 친숙한 꽃 이름을 붙인 숲속 집이다. 총 7개 동으로 3·4·5인실로 다양하니 예약 시 잘 살펴야 한다. 숲속의 집들 위에 야영 데크 8개가 일렬로 앉아 있는 아담한 야영장이 있다. 주차하고 짐을 옮기는 데까지 거리는 짧은 편이다. 데크 사이즈가 11㎡로 다소 작지만 돔형 텐트 하나 올리고 소박한 캠핑을 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제일 마지막 8번 데크는 호불호가 갈린다. 제일 호젓해서 명당이라는 의견과 짐 옮기기 멀고 등산로가 가까워 불편하다는 평으로 나뉜다. 야영장을 흐르는 명대계곡은 오서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다. 가물어 수량이 풍부하진 않지만 원시림 속을 흘러내리며 시원한 풍광을 선사한다. 산 정상이 억새로 일렁이는데 이상기후 때문인지 10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야영장에는 알록달록한 단풍보다는 초록빛이 많이 남아 있다.
하트 동산의 왼편에 숲속의 집과 야영장이 있고 직진하면 또 다른 숙박동이 있다. 그곳에는 목공예체험장과 산림문화휴양관, 연립동이 자리잡고 있다. 휴양관 앞에는 단풍나무들이 절정을 뽐내고 있다. 그 속에 바비큐장이 들어앉아 있다. 이런 곳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오감이 즐겁다. 옆으로 찔레꽃, 잔디꽃 이름이 붙은 연립동이 있다. 숲속의 집 중 가장 큰 진달래꽃 동이 제일 높은 곳에서 바람개비 동산을 바라보고 있다.
억새에게 유연함을, 대나무에게 지조를 배운다
오서산은 대표적인 억새 명소다. 가을에 오서산휴양림을 찾는다면 일렁이는 억새 물결을 만나러 가야 한다. 억새철이면 일부러 입장료 내고 휴양림을 찾아오는 산객이 많아서 넓은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오서산휴양림에서 억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야영장 옆 등산로를 따라 2㎞를 가면 된다. 다른 길은 등산객이 주로 이용하는 주차장 위 산길을 따라 2.8㎞를 걷는 것이다.
야영장 데크에 텐트를 치고 오서산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월정사까지는 쉽게 오르고 임도까지도 무난하다. 이후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서산의 오(烏)는 ‘까마귀 오자’다. 그래서인지 오르는 내내 “까까까” 소리가 응원처럼 들려온다. 벌거벗은 참나무들 사이사이를 숨차게 올라 철제계단을 오르는 데 마지막 힘을 쓰면 마침내 억새들의 춤사위와 마주한다. 붉은 해가 떨어지는 시간, 하늘하늘 억새의 몸짓은 황홀함을 넘어 애잔하다. 높이(791m)를 알려주는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하산한다.
오서산에서 억새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억새 산행으로 고단한 몸은 푸른 대숲에서 풀 수 있다. 연립동 뒤쪽으로 대나무숲으로 가는 길이 있다. 보통 남부지방에서나 볼 법한 울창한 대숲이 오서산에 있다니 의외다. 대나무숲은 억새만큼 오서산휴양림을 대표하는 장소로 숲 해설과 각종 체험이 진행된다.
푸른 숲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소리도 묻힌다.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를 외쳤다는 옛이야기가 떠오른다. 곧게 뻗은 숲속에서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놓아도 좋겠다. 온전히 녹색에 갇힌 숲. 걷는 내내 마음도 걸음걸이도 곧게 펴지는 것 같다. 억새에게 삶의 유연함을 배웠다면 죽 뻗은 대나무에게 지조를 배우고 간다.
안윤정 여행작가
여행작가이자 휴양림·캠핑 여행 전도사다. 주말마다 전국 방방곡곡에 발도장을 찍고 있다. <우리는 숲으로 여행간다> <캠핑으로 떠나는 가족여행> <숲에서 놀자>(공저) 등을 썼다. 산림청 매거진 <숲>, 산림조합 월간지 <산림>, 국립공원 블로그 등 각종 매체에 숲 여행을 소개하고 있다.
박스기사
오서산자연휴양림 예약방법
오서산자연휴양림은 휴양림 통합예약시스템 숲나들e(www.foresttrip.g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선착순 예약제와 주말·성수기 추첨제를 병행한다. 평일에 이용하고 싶다면 매주 수요일 오전 9시에 예약하면 된다. 다음 6주 차분까지 선착순 오픈된다. 주말·성수기에 이용하려면 추첨 신청을 해야 한다. 매월 4~9일까지 신청을 받고 추첨 후 이용자를 선정한다. 매월 10일 오후 4시에 당첨 여부를 발표한다. 안타깝게 미당첨이라면 매월 15일 오전 9시에 미결제분이나 취소분을 선착순으로 잡을 수 있다. 실패해도 실망하지 말고 대기를 걸어놓자. 대기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있는데 1순위는 예약 가능성이 꽤 높다.
주소충남 보령시 청라면 오서산길 531
전화041-936-5465
예약숲나들e(www.foresttrip.go.kr)
시설숲속의 집 8개 동, 연립동 3개 동(6실),
산림문화휴양관 1개 동(10실), 야영데크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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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산자연휴양림 주변 돌아보기
보령 은행마을
오서산 동남쪽에 자리한 장현마을에는 수령 100년이 넘는 은행나무 30여 그루를 포함해 300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 최대 군락지로 ‘은행마을’로 불린다. 그중 농촌체험학습장인 정촌유기농원이 있는 곳이 마을의 중심이다. 카페에서 흐르는 통기타 선율의 노래를 들으며 가족, 연인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아담한 연못 앞에는 캠핑장이 있다.
주소 충남 보령시 청라면 오서산길 150-32
신경섭가옥
정촌유기농원에서 700m가량 떨어진 곳에 신경섭가옥이 있다. 신경섭가옥은 조선 후기 양반가옥으로 충남 문화재자료 제219호로 지정돼 있다. 운치 있는 담벼락과 나란히 서 있는 은행나무들이 포토존이다. 너도나도 멋진 풍경을 담느라 분주하다. 고택 앞 300년 된 느티나무도 은행나무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소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밭길 62
보령석탄박물관
탄광 발전과 현장을 알리기 위해 문을 연 최초 석탄박물관이 보령에 있다. 전시장에서 석탄의 생성과 이용 역사, 장비 등을 볼 수 있다. 석탄이 생소한 아이들은 ‘꼬마 연탄 만들기’ 체험을 흥미로워한다. 국내 최초의 모의갱도에는 냉풍터널이 있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주소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산로 508 전화 0507-1381-1902
죽도 상화원
보령 대천해수욕장을 지나면 죽도가 있다. 그 안에는 상화원이란 한국식 정원이 있는데 금·토·일요일에만 운영되고 동절기에는 휴관한다. 섬 둘레 약 2㎞ 구간을 지붕형 회랑으로 연결해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이름처럼 울창한 대숲도 만나고 운치 있는 소나무들을 지나면 확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자리한 고풍스러운 한옥마을이 상화원 산책의 백미다.
주소 충남 보령시 남포면 남포방조제로 408-52 전화 041-933-4750
보령 성주사지
보령 내륙 쪽 성주터널을 지나 꽤 깊은 산에 접어들면 분지가 등장하고 성주사지가 나타난다. 통일신라 말에 구산선문의 중심, 성주사가 있던 곳으로 여느 폐사지와 달리 평지에 석등, 탑, 석불입상 등 꽤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5층 석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경쾌한 모습으로 서 있다. 세쌍둥이처럼 나란히 자리한 3층 석탑도 인상적이다. 전각 속의 국보, 대낭혜화상탑비는 무염대사를 기리기 위해 최치원이 지은 것이다. 고승 탑비 중 최고로 극찬받는 문화재이니 천천히 살펴보자.
주소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전화 041-930-4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