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산골짜기,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는 내 월급은 80여만원이다. 한 달치 식량으로 쌀 10킬로그램과 자반고등어 두어 손 사고 나머지 돈을 몽땅 털어 꽃나무 묘목 1백그루를 산 적이 있다.
식목일 아침, 어린이들이 한 그루씩 들고 갈 수 있도록 뿌리 부분을 정성껏 신문지로 감았다. 고물 자동차 옆좌석, 뒷좌석, 트렁크에 나누어 싣고 인근 마을 학교로 돌아다니며 나누어 주었다. 성산초등학교 전교생 91명 중 제 손으로 나무를 심을 수 있는 4~6학년 어린이들에게 51그루, 왕산초등학교 전교생 20명에게 20그루, 고단분교 전교생 5명에게 5그루, 그리고 왕산중학교 전교생 13명에게 각각 2그루씩 26그루를 나누어 주며 말했다.
이 묘목을 집으로 가져가서 여러분의 손으로 앞마당에 심으세요. 그리고 날마다 정성껏 돌보며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세요.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 나는 이 세상에서 먼지처럼 사라지고 없겠지만, 여러분과 오늘 내가 나누어 준 묘목들은 우람하게 자라서 이 사회의 일원으로 유익하고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겠지요.
그러면 그중에 누군가는 또 나처럼 월급을 몽땅 털어 묘목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요.
밀린 숙제 같던 그 일을 하게 된 것은, 1960년대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박봉의 월급을 덜어 꽃나무 묘목을 사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 사는 모습을 보며 자란다.
요즘 일부 청소년들의 심성이 황폐해져 가는 듯해 우려되는데, 어른들 사는 모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나무같이 말 한마디 없으면서 묵묵한 행동으로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위인전에 등장하는 위인들보다 가까운 마을 어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보았다. 산골체험 하러 온 유치원 어린이들이 그 조그맣고 예쁜 손으로 개나리꽃을 똑똑 따서 날려 버리는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서둘러 말렸더니 한 어린이가 하는 말에 섬뜩해졌다. “문구용 풀로 다시 붙여 놓을게요.” 흙장난하며 노는 일보다 아스팔트 길을 걷고, 가위로 색종이를 오려 꽃을 피우는 일에 더 익숙한 어린이들에게 자연과의 교감은 어려울지 모른다.
나는 이런 어린이들에게 한 가지 제안하고 싶다. 아껴 모은 돼지저금통을 털어 작은 화분 하나 사서, 볕 잘 드는 창가에 두고 물을 주며 자기 손으로 정성껏 가꾸어 보면 어떨까.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차단되었던 자연과의 교감이 회복되어 학교폭력이나 왕따가 없어지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살아보니까 ‘조금’이라는 말처럼 중요한 말도 없다. 조금씩 흐르는 실개천이 모여 큰 강을 이루어 낸다. 어떤 이는 조금이니까 괜찮다며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고, 어떤 이는 조금이라도 보태겠다며 지구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4월이다. 퇴근길, 종이컵에 담은 커피 대신 작은 화분 하나 사서 가슴에 꼭 안고 가는 그대 모습이 보고싶다.
글·유금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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