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경로당’ 전국 최초 도입
부천시청 노인복지과
정미연 과장, 김윤주 팀장, 장승우 주무관
“봄에는 식곤증이 오기 쉽죠? 몸을 움직이며 졸음을 쫓아봅시다. 발을 구르면서! 신나게!”
경기 부천시 원미구 원미1동에 있는 경로당에 서른 명 남짓 어르신들이 모였다. 구령에 맞춰 힘차게 제자리걸음을 하는 어르신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커다란 화면이다. 수십 개로 분할된 작은 화면에 부천시 곳곳의 경로당 모습이 보인다. 구령을 외치는 주인공은 화면 한가운데에 있는 ‘밸런스 워킹’ 강사다. 화면 속 강사는 마치 어르신들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어르신들의 행동을 살피면서 강의를 이끈다.
“소새울경로당의 빨간 스웨터 입은 어머니, 더 힘차게 팔을 흔드세요!”
비대면으로 신나게 운동하는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곳은 부천시의 ‘스마트경로당’이다. 스마트경로당의 풍경은 보통의 경로당과는 다르다. 경로당 한 편에 ‘스마트팜’이 있다. 어르신들은 스마트팜에서 채소를 키워 먹고 헬스케어 기기를 이용해 수시로 건강 체크를 한다. 또 스마트경로당 관리사가 함께한다. 부천시청 노인복지과 장승우 주무관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비대면 강의나 건강관리 프로그램 같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곳이 스마트경로당”이라고 설명했다.
부천시는 대전 유성구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먼저 스마트경로당을 도입한 지방자치단체다. 2021년 시범사업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2022년 본격적으로 스마트경로당을 운영해 왔다. 그동안 스마트경로당 업무를 담당해온 장 주무관은 “2023년에 매일 진행하는 비대면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의 수만 6만 6000여 명이고 사물인터넷(IoT) 헬스케어 기기를 통해 건강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은 1000명이 넘는다”며 “어르신의 만족도는 91%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여가복지시설 중 경로당 수는 2022년을 기준으로 전국에 6만 8180개에 달한다. 경로당은 지역 기반의 노인 공동체다. 미국의 시니어센터, 독일의 시니어오피스처럼 다른 나라에도 노인 중심의 공동체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로당은 이보다 더 일상적이고 촘촘하다.
장 주무관과 함께 스마트경로당 도입을 이끈 정미연 노인복지과장은 “잘 운영되는 경로당은 세계에 수출할 만한 K-노인복지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런 경로당에 스마트를 더하면 노인들을 위한 최고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스마트경로당을 확대 추진해 노인 맞춤형 여가·복지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2023년 스마트경로당은 전국에 889곳 있었지만 2024년에는 2280곳으로 늘어난다. 부천형 스마트경로당을 운영하는 정 과장과 김윤주 팀장, 장 주무관을 만나 K-경로당에 대해 들어봤다.
스마트경로당에 대해 설명해달라.
장승우 주무관, 이하 장 부천형 스마트경로당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ICT 영상플랫폼을 활용해 주 5회 한 시간 반씩 진행하는 비대면 프로그램이다. 실버로빅이나 밸런스워킹 같은 신체 프로그램, 원예치료나 맞춤 건강강좌 같은 강의 프로그램이 매일 진행된다. IoT 헬스케어 기기를 활용해 매일 혈압, 혈당을 측정하며 건강을 관리하는 어르신도 있고 스마트팜에서 상추 같은 채소를 키워 나눠 먹는 어르신도 있다.
참여율은 어떠한가?
정미연 과장, 이하 정 부천의 스마트경로당은 45개다. 보통 450명 정도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이 중 2023년 90% 이상 출석한 어르신이 209명이다. 신체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지만 맞춤 건강강좌는 예정 시간을 초과할 정도로 어르신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45개 경로당 어디에서나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하니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자유롭게 물어보면서 정보를 교환한다. 덕분에 비대면 프로그램에 아주 익숙해졌다.
45개 스마트팜에서도 1년간 175번 수확을 했다. 1300명 넘는 인원이 수확물을 나눠 가졌다. 헬스케어 기기로 건강관리를 하는 어르신은 한 해 1000명이 넘고 측정 횟수만 3만 회가 넘는다. 스마트경로당이 도입된 후 경로당이 더 활성화됐다는 의견이 많다.
스마트경로당을 왜 도입하게 된 것인가?
정 노인복지시설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고민과 시대적 상황이 맞았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고민하던 것이 경로당마다 격차가 크다는 것이었다. 경로당이 법적으로 인정된 것은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이후지만 오래전부터 사랑방 형태로도 존재했다. 단지 연배 비슷한 사람이 모여 지내는 곳일 뿐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처럼 일상생활에 밀착돼 있는 공동체가 경로당이다.
그런데 부천에 있는 경로당만 해도 규모가 다양하다. 회원이 40명인 곳도 있고 10명이 안되는 곳도 있다. 인원이 많은 곳에서는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할 수 있지만 적은 곳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적은 규모의 경로당에서도 강좌를 열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졌다. 경로당 문을 닫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어르신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또 다시 코로나19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모든 어르신에게 골고루 혜택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스마트경로당이라는 결과물이 도출됐다.
스마트경로당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었나?
정 스마트경로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진행하는 스마트빌리지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스마트경로당을 기획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 하나는 기획부터 기술 실행, 사업 운영까지 노인복지과에서 담당하는 것이었다. 보통 기술 관련 과에서 인프라를 구축하고 노인복지과는 프로그램 구성 단계에서부터 합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기술과 필요가 어긋날 때가 종종 있다. ‘스마트’가 들어간다고 해서 와이파이를 설치하고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쳐서는 안되고 꼭 필요한 기술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르신들에게 기술이 어렵게 느껴져서는 안된다.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적정기술’이어야 접근이 쉽다. 적정기술을 찾으려면 어르신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한다.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고 표현하는데 지역사회 어르신들이 무슨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 어느 기관의 누가 무슨 일을 잘하는지 이런 것들을 알아야 어떤 기술을 들여올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실제로 무슨 프로그램이 필요했나?
김윤주 팀장, 이하 김 길지 않은 시범사업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러면서 건강·신체활동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걸 알았다. 격차 없이 균질한 건강 프로그램을 보급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비대면 프로그램이었다. 비대면 강의 플랫폼을 활용해서 어디에서나 같은 건강 강좌를 듣는 것이다. 마침 대전의 한 플랫폼 개발 업체가 몇몇 경로당에 비대면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업체의 도움을 받아 비대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인프라가 갖춰졌다고 해도 이걸 실행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장 그래서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바로 스마트경로당 관리사를 두는 것이다. ‘노노(老老)케어’라는 말이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세대 안에서도 영시니어와 올드시니어가 나뉘는데 영시니어가 올드시니어를 돕는 것을 두고 노노케어라고 한다. 여기서 착안해 스마트경로당 관리를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진행했다.
스마트경로당 관리사는 몇 명이 있나?
김 45명의 관리사가 있다. 관리사 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됐던 것은 아니다. 경로당은 끈끈한 마을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밀착관계에 있는 어르신들은 외부인이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 처음에는 관리사들도 외부인 취급을 받았다. 모르는 사람이 하루에 세 시간씩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게 불편하다고 문을 걸어 잠근 분들도 있었다. 그래도 관리사들은 포기하지 않고 스마트기기 활용법을 배우고 어르신들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지금은 모든 경로당에서 관리사가 수월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매일 프로그램을 마치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출석부를 제출하고 간혹 논의할 일이 있으면 톡으로 대화한다. 채팅방에서 유일한 청년이 장 주무관이다.
장 관리사분들도 어르신이기 때문에 가끔 스마트기기에 오류가 생기거나 하면 원활하게 대처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 매일 출석 현황을 취합하는 역할을 한다.
벤치마킹을 하러 많이 온다고 들었다.
정 지금까지 34번 방문 왔다. 2023년에 13번, 2024년에는 4월인데 10번이다.
부천시 스마트경로당이 잘 운영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장 스마트경로당은 콘텐츠에 중점을 둬야 한다. 목표가 있어야 한다. 경로당은 잘 활용하면 매우 훌륭한 복지 자원이 될 수 있지만 그동안 어르신들이 시간을 때우는 곳으로만 사용될 때가 많았다. 스마트경로당은 그저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이 아니라 건강하고 즐겁게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노인복지의 기반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경로당을 도입하면서 경로당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질 것 같다.
정 개인적으로 ‘K-경로당’은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노인복지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노인복지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니라 내 집에서 편안하게 존엄을 지키면서 노후를 보내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비용이 절감될 뿐더러 개인의 행복과 인권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자기돌봄’이라고도 표현하던데 경로당이 어르신 스스로가 밥을 지어 먹고,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즐기고, 시간을 보내는 자기돌봄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 역량을 키우는 출발점이 스마트경로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지방시대 이끌 스마트빌리지 사업
어디서나 디지털 기술 누릴 수 있게…
스마트경로당이 대표적 사례
정부는 스마트빌리지 사업을 통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스마트빌리지란 인공지능(AI)·정보통신기술(ICT)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지역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사업이다. 전남 신안군에서는 드론을 활용해 넓은 갯벌을 살펴보고 AI를 통해 낙지의 숨구멍인 ‘부럿’을 찾아내는 기술을 개발해 갯벌에 있는 낙지의 자원량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지도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이처럼 지역 자원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지역 간 격차를 줄이려는 시도가 스마트빌리지를 통해 성과를 내고 있다. 스마트경로당은 스마트빌리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21년 경기 부천시와 대전 유성구에 최초로 도입된 스마트경로당에서는 화상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여가·건강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이로써 여러 경로당에서 동시에 질 높은 강의를 들으며 여가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됐다. 스마트팜을 활용한 원예치료와 헬스케어 기기를 활용해 건강 관리를 일상화하는 등의 콘텐츠도 마련돼 노인들이 겪던 디지털 소외감이 해소되고 편리하고 건강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나아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스마트경로당을 통해 섬·벽지 노인들을 연결해 건강상담이나 의료혜택을 주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스마트빌리지 사업이 균형 있는 지방시대를 이끄는 디딤돌이 되게 한다는 계획이다. 2024년에는 1039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전국에서 99개 사업이 진행된다. 다양한 지역에서 스마트경로당이 조성되고 돌봄체계나 지역산업에 적용될 스마트플랫폼이 속속 들어설 전망이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스마트빌리지 사업은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해결할 것”이라며 “모든 국민이 전국 어디에서나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