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재는 월드컵시리즈 후프 결선에서 28.050점을 얻어 알리야 가라예바(아제르바이잔), 다리야 드미트리예바(러시아)에 이어 3위에 올랐다.
4월 28일 열린 예선에서는 한국 선수 최초로 후프를 비롯해 곤봉, 리본, 볼 전 종목에 걸쳐 결선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예선 개인 종합 성적은 역대 최고인 4위. 2012 런던올림픽을 석 달 앞둔 시점에서 아주 고무적인 성과였다.
손연재는 평소 리듬체조를 ‘크레파스’라고 묘사한다. “여러 가지 색깔을 칠할 수 있는 크레파스처럼 자신의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란다.
키 1미터65, 몸무게 45킬로그램의 가녀린 체구지만 1미터70 이상의 서양 선수들 앞에서 절대 주눅 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승부욕을 발휘하곤 한다.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노보고르스크 훈련장에서 예브게니아 카나예바(러시아) 등 세계 굴지의 선수들과 뒤섞여 훈련하면서 외로움도 많이 느꼈지만 오기와 끈기도 배웠다.
손연재를 돕고 있는 IB스포츠 관계자는 “손연재가 어릴 적에는 그냥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 같았지만 러시아에서 1년 넘게 혼자서 훈련하고 생활을 하면서 훌쩍 큰 느낌이 든다”고 했다. 손연재는 “러시아에서 혼자 버티고 훈련 과정을 이겨내려면 최대한 즐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리듬체조는 종목 특성상 몸무게 1백그램의 변화에도 움직임이 달라진다. 때문에 대회 때는 샐러드, 바나나, 토마토 등만 먹어야 한다. 다이어트는 어느덧 생활이 됐다.
사람의 기본 욕구인 ‘먹고 싶은 충동’은 억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목표가 있기 때문에 참는다. 원했던 동작을 완벽하게 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어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손연재는 “리듬체조는 몸도 마음도 극한으로 밀고 가야 원하던 동작이 나온다”며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정상을 향해 보완하고 노력하고 나아간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편해진다”고 했다. 리듬체조의 가장 큰 매력은 “몸을 최대한 활용해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며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손연재는 2011년 9월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개인 종합 11위에 오르는 깜짝 활약으로 런던올림픽행 티켓을 따냈다. 2010년 개인 종합 32위였던 선수가 1년 만에 급성장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에 가까웠다.
지난 4월 프랑스 체조연맹에서 발간한 체조 매거진 표지모델로 선정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손연재의 인터뷰도 잡지에 함께 실렸는데, 제목이 ‘폭발적 성장’이었다.
IB스포츠 관계자는 “‘리듬체조’ 종목은 잘 몰라도 손연재가 ‘한국 리듬체조 선수’라는 사실은 안다는 것이 인터뷰를 담당한 프랑스 총리실 홍보부 직원의 말이었다”고 전했다.
손연재는 펜자 월드컵시리즈 예선에서 볼(28.125점), 리본(28.500점) 종목에서 28점대 점수를 받았다. 예선에서 27.900점을 받았지만 결선에서는 28.050점을 받은 후프까지 합하면 제일 취약한 곤봉(예선 27.675점)을 제외하고 3종목에서 28점대 점수를 받는 데 성공했다.
손연재는 2010년에는 23~25점대, 2011년에는 26~27점대의 점수를 받았다. 프랑스 잡지 인터뷰 제목처럼 1~2년 사이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체력과 집중력에 있다. 펜자 월드컵시리즈만 놓고 봐도, 예선에서 전 종목 3~4위권에 위치했다가 정작 결선에서는 후프를 제외한 나머지 종목에서 6위권으로 미끄러졌다. 손연재도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펜자 월드컵시리즈 개인 종합 4위가 곧 세계 상위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펜자 월드컵시리즈에는 ‘리듬체조 여제’ 카나예바를 비롯해 알리나 막시멘코(우크라이나·세계선수권 5위), 멜리티나 스타니우타(벨라루스·세계선수권 6위) 등 세계 10위권 선수 6명이 참가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손연재는 아직도 세계 8~11위권이라고 봐야 한다.
월드컵시리즈 첫 동메달 획득이 곧 런던올림픽 메달 청신호를 밝히는 의미는 아니라는 뜻이다. 런던올림픽 리듬체조 종목에는 개인 종합과 단체전에서만 두 개의 금메달이 있을 뿐, 각 종목별 메달은 따로 없다.
그래도 손연재가 4종목 중 3종목에서 28점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세계 10위권 선수들과 비슷한 점수대에서 대등하게 경쟁을 할 수 있는 위치까지 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동양인 선수가 세계 리듬체조 10위권 내에 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일본이 많은 투자를 해왔지만 단체 종목이 아닌 개인 종목에서는 빛을 못 봤다.
그만큼 동양 선수가 뚫기 어려운 종목이 리듬체조이다. 수구 구사 능력이나 표현력에서 서양 선수들을 따라잡기가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손연재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손연재는 런던올림픽에서 개인 종합 결선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년 세계선수권 순위가 11위였으니 불가능한 도전은 아니다.
체조협회 관계자는 “손연재가 런던올림픽에서 개인 종합 결선에만 진출해도 대단한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개인 종합 결선에만 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수 하나에도 점수가 많이 깎이는 게 리듬체조 종목이기 때문이다.
손연재는 “메달 획득은 모든 선수의 꿈”이라며 “현실적으로 메달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래도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메달을 따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세계를 향한 손연재의 아름다운 도전은, 8월 9일 영국 런던 웸블리 아레나에서 꽃망울을 틔운다.
글·김경무 (한겨레신문 스포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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