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한 도시에서 여대생이 실종됐다. 경찰이 은밀히 수사중이라 아직 언론에 발표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범인은 불안에 떨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아날로그 시대라면 범인은 신문을 뒤지고 방송의 뉴스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는 그럴 필요가 없다. 검색이 있기 때문이다.
범인은 수시로 이 사건에 대해서 검색을 해 볼 것이다. 검색을 통해 경찰이 어디까지 조사했는지 다 알 수 있다. 하지만 비밀수사라면 검색결과 나오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때문에 범인은 더 자주 더 자세한 검색을 할 수밖에 없다. 범행 장소, 날짜, 시간까지 검색어로 사용하던 범인은 결국 피해자의 이름까지 찾아보게 된다.
이런 심리를 역으로 이용한다면 검색 사이트를 통해 용의자를 찾아낼 수 있다. 범인이 아니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을 검색하는 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이 미궁에 빠진 여대생 실종사건을 처리할 목적으로 압수수색을 통해 포털의 검색어 자료를 확보하여 범인 검거에 참고한 일이 있다.
이 일은 경찰의 과잉수사 논란과 검색행위를 개인정보로 취급하여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지만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포털들은 정보를 어디까지 제공했는지 밝히지 않았고 경찰은 수사에 얼마나 활용했는지 비밀에 부쳤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인터넷에서의 활동기록은 보호받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빅브러더(Big Brother)’ 논란은 철학적인 논의나 영화 속의 일이 아니다.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개인의 모든 활동이 기록되고 있다.
곳곳에 폐쇄회로(CC) TV가 설치되어 있고 수많은 자동차에도 블랙박스가 달려 있으며 2천만명 이상이 카메라 달린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있다. 누가 조금만 잘못해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에 올려진다.
최근 학교 운동장에서 여학생을 친 운전자의 블랙박스가 차주도 모르게 인터넷에 공개된 일이 있고 달리는 차 트렁크에서 뛰쳐나온 개가 죽은 채 끌려가는 모습이 찍히는 바람에 ‘악마 운전사’가 된 경우도 있다. 잘잘못을 떠나 나도 모르게 여론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증가한 것이다. 일단 영상이 공개되면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비정상으로 보이는 행동은 장난으로라도 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스마트폰의 위성항법장치(GPS), 전화망, 와이파이 연결 기능 때문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카드 사용 기록, 하이패스 사용 정보, 자동차 번호판 자동인식 기능, 인터넷 사용 인터넷 프로토콜(IP) 추적 등을 합하면 누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인터넷의 개인정보 추적 기능에 비하면 별것 아닌 정보에 불과하다.
SNS는 실제 인맥을 온라인에 올려놓은 것이다. 때문에 실명을 기본으로 한다. 나이, 성별, 주소 등으로 내가 누군지를 밝혀야 같은 소속의 다른 회원과 교류를 할 수 있다. 개인들 간의 만남뿐 아니라 동창회 같은 그룹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출신학교와 취미도 밝혀야 한다.
가장 인기 있는 SNS인 페이스북은 한 개인이 삶 전체를 올려놓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편하고 있다. 부모들이 자식들이 태어난 모습부터 성장과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더라도 페이스북 페이지는 그대로 이어받아 계속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한 사람의 일대기를 알고 싶으면 SNS를 방문하면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 창립자 저커버그는 “프라이버시는 없다”란 말로 이런 현상을 요약했다. SNS 업체들은 개인정보를 활용하여 타깃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광고주들은 인종, 성별, 나이, 지역, 출신학교 등의 정보를 활용한 광고를 집행하고 있다. 빈민가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은 그들이 선호하는 제품 광고를 보게 되며, 맨해튼에 거주하는 백인 중년층에게는 고급 제품 브랜드 광고가 노출되는 것이다.
점차 정교해진 인터넷 서비스들은 개인의 활동내역을 교차 체크하여 정밀한 개인별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검색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소셜 검색은 같은 검색어로 검색하더라도 개인정보를 활용하여 각각의 사용자에게 서로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검색엔진은 사용자가 보수적인지 진보적인지 스포츠와 정치 중에서 어떤 것에 더 관심이 많은지를 체크하여 검색결과를 재배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개인화는 정보의 편식을 가져온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보다는 자극적인 정보를 주로 서비스하게 되면 사회 구성원들이 올바른 판단력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좋아하는 것만 즐기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 결국 서로 의견이 다른 집단끼리 소통이 불가능해져 사회 여론이 극단적으로 나누어지게 될 위험이 높다.
각각의 사용자를 위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행위가 오히려 문제를 증폭시키고 있다. 개인화 서비스란 사용자의 기호를 알아채고 마음까지 미루어 짐작하는 훌륭한 비서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 서비스들은 결국 무조건 “좋아요”만 외칠 뿐 절대로 “안 돼요”라고 말하지 않게 된다.
각 업체는 서로 개인화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탓에 올바른 서비스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IT 업체 스스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그 판단의 기준은 결국 상식일 것이다.
빅브러더화해 가고 있는 인터넷 기업을 제어할 방법은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개인화 서비스가 발전하더라도 꼭 알아야 할 사회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개인이 원하지 않으면 개인정보도 활용하지 말아야 한다. 프라이버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상식이기 때문이다.
글·김인성 (IT 칼럼니스트)
빅브러더(Big Brother)
정보를 독점해 사회를 통제하는 거대 권력을 일컫는 말이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한 용어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감시하기 쉬워져 이를 경고하는 의미에서 자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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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