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아는 분이 번역한 어떤 책의 교열을 본 적이 있다. 이른바 성공학 책이었다. 그런 유의 책을 처음 읽었다. 처음엔 놀랐고 책장을 덮을 즈음엔 서글펐다. 사람들을 성공으로 이끌어주겠다는 그 책의 내용을 단순요약하자면 대충 이렇다.
회사의 실세를 파악하라. 그 사람의 모든 것-취미는 물론 출근시간까지-을 파악하라. 그 사람과 취미를 공유하라. 그 사람이 자주 가는 식당이나 엘리베이터에서 우연을 가장하여 부딪친 후 넌지시 그 사람의 취미와 관련된 대화를 옆 사람에게 무심한 듯 꺼내라.
그렇게 하면 업무가 아닌 일상에서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측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연을 가장하여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미리 정보를 캐내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짓을 하면서까지 사람들은 성공을 꿈꾸는 모양이다. 그 성공이 아마 돈과 명예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래서 죽자고 성공하려 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과연 행복 또한 가져다줄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상대가 좋아할 만한 일만 골라 한다고 해서 마음이 얻어지진 않는다.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하여 얻은 마음은 이익을 줄 줄 알았던 상대가 이익을 주지않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상대 또한 그 얕은 마음을 모를 리 없다. 마음이란 진심을 다하여 상대를 대할 때 겨우 얻어지는 것이며, 그렇게 얻어진 마음은 어지간한 풍파에도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깨어지지 않을 굳건한 우정을 일컬어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한다.
누구나 알듯 춘추시대 제나라를 중흥시킨 명재상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다. 포숙아는 관중과의 우정을 통해 역사 속에 살아남았다. 관중은 출신도 인물됨됨이도 그리 훌륭하지 않았다. 그가 재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포숙아 덕이었다. 포숙아는 관중을 환공에게 천거한 후 자신은 친구의 아랫자리에 앉았다. 훗날 관중은 포숙아와의 우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날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포숙아와 같이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문을 나누면서 내가 더 많이 차지하고는 했으나 포숙아는 나를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포숙아를 위해 일을 꾸미다가 실패해 더욱 곤궁하게 되었는데, 포숙아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시운에 따라 유리한 때와 불리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 번 싸워 모두 패하고 도망쳤지만 포숙아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게 늙으신 어머니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왕위를 놓고 공자 규가 패했을 때 친구인 소홀은 죽고 나는 붙잡혀서 욕된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아는 나를 염치없는 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떨치지 못함을 수치로 여김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다.”
마음을 얻는다는 것,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란 이런 것이다. 재상이 되기 전의 관중은 우리처럼 숱한 실패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쓸쓸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그토록 알아주는 포숙아가 있었으니.
어릴 적에는 이름난 사람이 부러웠다. 일하기 싫어질 나이쯤 되니 돈많은 사람이 부러웠다. 요즘은 관중이 부럽다.
별 볼 일 없는 나를 끝까지 신뢰해주는 친구 하나 있다면 가진 것 없어도 늙음이 두렵지 않겠다. 이름을 얻어서가 아니라 포숙아가 있어 관중은 행복했을 것이다.
글·정지아(소설가)
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