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동지방의 향토 음식에 꾹저구탕이 있다. 지역의 명물 꾹저구로 추어탕처럼 끓여먹는 음식이다. 이름도 별난 꾹저구는 망둑엇과의 민물고기이다. 크기는 약 12센티미터 정도이며 주로 강 하구의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汽水域) 바닥에 서식하는데, 때로는 강을 거슬러 올라 중류까지 진출하기도 한다.
민물고기라고는 하나 부화 후 바다로 내려갔다가 2∼3개월 뒤 크기가 2센티미터 쯤으로 자라면 강으로 돌아오는 회귀성 물고기이다. 몸통의 앞부분은 굵고 원통형이지만 꼬리 쪽으로 갈수록 옆으로 납작하며 두 눈 사이가 넓다. 국어사전에는 꾹저구가 꺽저기의 방언이라고도 나와 있는데, 꺽저기는 꺽짓과에 속하는 다른 물고기이다. 영동지방 사람들은 개운하면서 비린내가 나지 않는 꾹저구탕을 최고의 속풀이 해장국으로 꼽는다.
꾹저구라는 이름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가사문학의 우뚝한 봉우리인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던 무렵의 일이다. 1580년경 강릉 연곡지역을 순시하던 송강이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 어선들이 출어를 못하게 되자 지역주민들이 연곡천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탕을 끓여 올렸다. 탕 맛을 본 그가 시원하고 담백한 맛에 감탄하며 물고기의 이름을 묻자, 그때까지 이름도 없는 미물이었던 터라 한 주민이 “저구새가 꾹 찍어 먹는 물고기”라고 고했다. 그러자 송강이 “그러면 앞으로 이 고기를 꾹저구라 부르면 되겠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일화이다.
저구새는 <시경>에도 나오는 금조로 물수리, 징경이라고도 한다. 송강은 “술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수를 세며 한없이 먹세 그려”로 시작하는 권주가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남겼을 정도로 애주가로도 이름이 높았다. 당대 최고의 문사이자 주당이 그 맛을 알아보고 이름까지 지어준 것은 꾹저구로서는 큰 영광이요 남다른 인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꾹저구는 그 외에도 이름이 많다. 강릉에서는 꾹저구라고 하지만 양양에서는 ‘뚜거리’라 하고 고성에서는 ‘뚝저구’, 삼척에서는 ‘뚜구리’ 또는 ‘뿌구리’라 부른다. 그 외에도 지역에 따라 꾸구리, 꾸부리, 꺽자구, 뚜거지, 쭉정이, 똥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양양 지역에서는 뚜거리를 꾹저구뿐 아니라 날망둑, 검정망둑, 밀어, 기름종개 등 유사 어종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쓰기도 한다.
옛날에는 천렵을 해서 잡아먹던 물고기였던지라 일일이 구분하지 않고 걸리는 대로 도거리라 부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꾹저구탕은 지역과 취향에 따라 꾹저구를 통째로 넣어서 끓이기도 하고 갈아서 끓이기도 한다. 꾹저구탕에는 점액 성분인 무틴(mutin)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소화가 잘되며 단백질, 칼슘, 칼륨, 니아신 등의 영양소가 풍부해 보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과거에 비해 꾹저구도 귀해졌다. 옛날에는 강릉과 양양, 삼척, 고성 등지의 하천에서 꾹저구를 흔히 잡을 수 있었는데, 오염이 심해지면서 도심과 인접해 있는 하천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러나 청정 수질을 유지하고 있는 강릉 연곡천과 양양 남대천 일대에서는 지금도 꾹저구가 많이 잡힌다. 영동사람들의 꾹저구에 대한 사랑은 대단해서 강릉 남대천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꾹저구회’라는 모임까지 결성해 활동하고 있을 정도이다.
강릉의 ‘연곡꾹저구탕’과 ‘정든꾹저구탕’은 꾹저구탕으로, 양양의 ‘월웅식당’과 ‘천선식당’은 뚜거리탕으로 각 지역에서 이름을 얻고 있는 집들이다.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2013.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