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없는 날은 포항·동해·강릉 어디서 출발하든 3시간 이내에 닿지만, 궂은 날은 네댓 시간 동안 너울을 타야만 한다.
이런 날은 울렁대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나자빠지듯이 도동항에 내리게 된다. 지극히 운수 없는 날은 도동항을 코앞에 두고 배가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협곡 사이 바다에 놓인 좁은 선착장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도동항은 울렁대는 곳이다.
사뿐하게 내렸든, 뱃멀미로 혼쭐이 났든 간에 도동항에 내리면 오른편으로 솟은 망향봉이 여행객을 반긴다. 섬 해안 절벽을 타고 우뚝 솟은 산이다. 2천여 년 가까이 된 것으로 알려진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보일 듯 말 듯 자리 잡고 있다. 울릉도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다.
도동선착장서 행남등대로 이어진 길
해안산책로는 도동항에서 시작해 망향봉 아래 낭떠러지에 난 아슬아슬한 길을 타고 도동 항로표지관리소 너머 저동에 이르는 길이다. 항로표지관리소 전까지는 인공으로 조성한 길이다. 이후 저동항 촛대바위까지 예전부터 있던 오솔길이다. 길의 클라이맥스는 행남등대. 등대 앞에 서면 아름다운 저동항이 보인다. 울릉도의 어업 기지인 불밝힌 오징어잡이 배들이 아름답다. 도동항에서 저동항 촛대바위까지는 약 2.6킬로미터다.
절벽 위에 자리 잡은 마을 이름이 행남, 또 도동 항로표지관리소를 흔히 ‘행남등대’로 부르는 데서 이름 붙여졌다. 강릉에서 오는 배는 저동항에 손님을 풀어놓는데, 그래서 저동항을 기점으로 걷기 시작하면 도동이 종착점이 된다. 방향은 크게 상관없다.
도동이라는 이름은 ‘도방청’이란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살며 번화한 곳이란 뜻이다. 고종 19년(1882년)에 내려진 울릉도 개척령에 따라 육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처음 개척민들이 들어와서 보니 포구 근처는 제법 시가지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이후 도방청의 도(道)자를 따서 도동이라 이름 지었다.
지금도 선착장 입구는 가파르지만, 조금 올라가면 언덕을 따라 음식점과 숙박 시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여행 적기인 봄부터 가을까지 선착장에서 도동 시내에 이르는 길은 여행객과 호객꾼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룬다.
해안산책로는 이 북새통을 피해 쉬어 갈 수 있는 길이다. 선착장 바로 옆으로 난 길은 섬에 닿기 전, 배 안에서부터 나그네를 유혹한다. 낭떠러지 아래로 난 길은 절벽에 딱 달라붙은 쇠로 만든 난간과 아치형 다리가 끊어질 듯 이어진다. 인공 조형물은 절벽과 푸른 바다를 가르는 듯하면서도 둘을 잇대고 있다. 그 길을 걷는 맛이 제법이다.
왼편은 낭떠러지, 오른편은 철재 난간 사이로 난 좁은 철재 트레일(Trail)로 위태로우면서도 흥미진진하다. 바다가 험한 날은 난간 아래에서 거친 파도가 날름거린다. 해안가 길은 미끄럽게 마련이다.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는 게 좋다.
울릉도 해안은 해식애(海蝕崖)가 많다. 바닷물의 침식 작용과 풍화 작용에 의해 생긴 낭떠러지다. 이런 해식애로 ‘V자형 해안골짜기’가 수시로 나타난다. 더러 유람선 뱃머리가 충분히 들어올만큼 크게 패인 골짜기도 있다. 철재 다리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천혜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게끔 해준 인공의 조형물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자연을 해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더러 재미있는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철재 트레일 바로 아래 터키석 빛깔의 바다 속에서 거대한 물체가 잠영하는 광경을 흔치않게 볼 수 있다, ‘거대 고래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다. 울릉도의 매력에 빠진 다이버들에게는 밖으로 보이는 경치 못지않게 수중 세계 또한 국내 최고라고 한다. 트레일 곳곳에는 낚시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울릉도는 사철 고기가 잘 잡히는 곳이지만, 해안에서 낚을 수 있는 고기는 많지 않다.
오징어잡이 배 출어는 울릉 8경 중 하나
절벽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울릉 섬의 내력을 생각하게 된다. 화산 폭발이 만들어낸 독특한 암석들 때문이다. 이런 암석들은 침식에 약해 파도와 만나는 지점에서 움푹움푹 패여 있다.
행남등대 가기 전 해산물을 놓고 파는 작은 점포가 하나 있다.
제주도 올레길에서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울릉도 산책로에서는 근래에 생긴 것들이다. 여행객 입장에서는 목을 축일 수 있는 장소다. 이곳을 지나치면 약간의 오르막이 나타난다. 그리고 룰루랄라 산책하듯 10여 분을 더 가면 행남등대다.
동해를 넘어 태평양을 향하고 있는 도동 항로표지관리소.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저동항의 촛대바위가 보이고, 동쪽으로 죽도와 관음도, 그리고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여태까지 걸어온 도동항이다. 전망대가 아닌 등대를 끼고 바다 쪽으로 살짝 돌아나가면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자리가 있다.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이다.
등대를 내려오면 다시 숲길이다. 그리고 만나는 가파른 계단. 계단에 닿기 전 작은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지난 2008년에 지은 계단은 수직의 벽을 오를 수 있도록 나선형으로 감아 올라간다. 다녀온 이들은 이를 두고 ‘소라 계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행남등대에서 저동항으로 가는 길은 다시 내리막이다. 내려가면서 울릉도 어업기지, 저동의 살아 있는 포구를 내려다볼 수 있다. 특히 문어잡이 배가 닿고 난 이후 한두 시간이면, 부두에서 바로 데친 졸깃한 문어를 현장에서 구입해 맛볼 수 있다. 데친 문어는 이곳에서 바로 포장돼 육지 밥상에 오른다. 저동의 오징어잡이 배들의 출어 광경도 볼 만하다.
환히 불을 밝히고 동해로 향하는 오징어잡이 배의 광경은 ‘울릉8경’ 중 하나로 꼽힌다.
행남 해안산책로는 아름다운 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파도가 심한 날은 트레일 위로 바닷물이 넘치는 날이 많다. 풍랑주의보,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날에는 길이 통제되기도 한다.
글과 사진·김영주(여행 칼럼니스트) 2013.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