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에 일기 시작한 등산 열풍이 시민들의 패션을 바꿔놓더니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걷기 열풍이 일고 있다. 이 열풍은 국토의 지형을 바꿔놓을 기세다. 지금까지 숨가쁘게 살아온 것을 반성하면서, 타성에 젖어 빨리 가려는 습성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이다.
거기에다 슬로 시티니 로컬 푸드니 하면서, 베드타운으로 변해버린 보금자리와 장시간 노동을 위한 에너지 충전 같은 ‘먹어 치우는’ 식습관도 고치려 한다. 보다 느리게, 보다 여유 있게 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대중의 요구에 발맞춰 최근 몇 년간 서점가에서는 ‘느리게 사는 법’에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1년 전 〈피로사회〉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철학자 한병철은 이런 움직임을 비판한다. 그는 최근에 나온 〈시간의 향기〉 ‘한국어판 서문’에서 ‘느리게 사는 것’ 또한 시간에 예속된 현대인의 비정상적 행동양태일 뿐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시간 자체를 인질로 잡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쉬는 시간’과 휴가, 수면조차도 ‘일의 시간의 한 국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란다.
결국 ‘느리게 살기 운동’은 ‘시간의 위기, 시간의 질병’의 한 ‘증상’이므로, 증상으로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는 현대사회가 일의 시간을 버리고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시간 혁명’을 하기를 제안한다.
시간에 쫓기는 ‘활동적 삶’ 대신에 흐르는 시간을 관조하는 ‘사색적 삶’이라는, 우리에게 대단한 용기가 요구되는 근본적인 주문을 하고 있다.
치유의 방법도 앓고 있는 사람이 따를 수 있을 때 효과가 있다. 이루고 싶고 가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욕망은 각자가 가진 시간을 조종한다. 우리의 욕망이 크고 강할수록 자신의 시간에 채찍질을 가하고, 시간을 잘디잘게 쪼개 한 올도 허투루 쓰게 놓아두지 않는다.
대학 캠퍼스를 둘러보면 10분이 아까워 새벽부터 저녁까지 꽉 짜인 계획에 따라 공부에 열심인 학생들을 늘 만난다. 젊은이들이 온 시간을 쏟아 배움에 열정적인 것은 보기 좋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들이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 직장을 가지고 명퇴니 조기 은퇴니 사회활동을 그만둘 때까지, 바쁜 시간의 리듬을 멈출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가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면서도 늘 쫓기듯 바쁘게 사는 것은 많은 부분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욕구 불만을 충족하느라 그럴 것이다. 자신의 목표는 대체로 남과 비교해 설정되고, 그 기대치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하지만 노력하는데도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경우 우리는 욕구 불만에 시달리거나 상실감에 빠지고 만다. 자포자기와 우울증은 이런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오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사는 것이 그다지 현명한 일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경쟁의식을 다독이는 일 또한 살아가는 데 그다지 지혜로운 일도 아니다.
우리가 활동적 삶을 버리고 사색적 삶을 살기가 쉽지 않듯이, 욕망을 버리고 살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보다 적게 욕망하며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소탈하게 사는 것이 불행을 멀리하는 삶이듯이, 욕구 불만과 상실감에 덜 노출되는 길은 좀 적게 욕망하는 것이리라.
‘경쟁심과 비교의식’, 그리고 ‘정서적 여유와 심리적 안정감’. 이들은 서로 상충되는 정서이므로 이들을 모두 다 품고 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이 가진 자기 결정권에 속한 문제이리라.
글·전광호 (부산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2013.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