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는 요즈음에 와서 신분이 수직 상승한 생선이다. 옛날에는 갈치가 많이 잡혀서 값이 싼 데다 맛도 좋아 “값싸고 맛 좋은 갈치자반”이라거나 “돈 아끼는 사람은 잔갈치 사 먹으라”는 말이 다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달라져서 한 마리에 10만원을 훌쩍 넘는 갈치가 등장할 정도이고 잔갈치도 값이 만만치 않아서 돈 아끼려면 쉽게 사 먹기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갈치라는 이름은 긴 칼을 연상하게 하는 그 모습에서 비롯된 것인데 옛날 신라에서는 칼을 ‘갈’로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과거 신라지역에서는 갈치라 부르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칼치라고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방에 따라 칼 ‘도’자를 써서 도어(刀魚)라 하기도 하고 빈쟁이, 붓장어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갈치새끼는 ‘풀치’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부른다.
<자산어보>는 긴 치마 띠처럼 생겼다고 해서 군대어(裙帶魚)라 했고 속칭 갈치어(葛峙魚)라 기록하고 있으며 <난호어목지>에는 갈어(葛魚)라 돼 있다. 중국에서도 흰 띠 모양의 물고기란 뜻의 ‘바이다이유(白帶魚)’라 부르고 일본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큰 칼이라는 의미의 ‘다치우오(太刀魚)’라고 한다. 세상 사람들의 보는 눈은 다 비슷한지 영어권에서도 역시 칼이나 칼집에 비유해서 ‘커틀라스피시(cutlassfish)’ 또는 ‘스캐버드피시(scabbardfish)’라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갈치가 다른 생선들처럼 옆으로 누워서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서서 헤엄친다는 점이다. 가끔 수족관에서 꼿꼿이 서 있는 갈치를 보면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스쿠버다이버들에 의하면 바다 속에서 그렇게 서 있는 은백색 갈치를 만나면 기괴한 느낌이 다들 정도라고 한다.
갈치는 통상 1.5미터 정도까지 자라는데, 가끔 언론에 화젯거리로 등장하는 초대형 산갈치는 이름만 갈치일 뿐 분류학상으로는 갈치와 속한 목이 아예 다른 심해어 종류이다. 흔히 맛있는 갈치의 대명사로 꼽히는 제주 은갈치와 목포 먹갈치는 기실 다른 종류가 아니다. 잡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낚시로 잡으면 은갈치가 되고 그물로 잡으면 먹갈치가 된다. 채낚시로 잡아 올리면 몸에 상처가 나지 않아 은빛 비늘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은갈치라 부르고, 그물로 잡은 것은 자기들끼리 몸을 서로 부딪쳐 비늘이 벗겨져서 어두운 색을 띠기 때문에 먹갈치라 하는 것이다.
낚시로 잡은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아 육질이 단단해서 더 맛있다는 이들도 있고 그물로 잡은 것이 기름기가 많고 더 부드럽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둘을 맛으로 구분해서 우열을 가리기는 그리 쉽지 않다. 갈치 비늘은 일반 생선 비늘과는 다른 은분 형태인데 그 성분은 구아닌(guanine)이라는 색소로 인조 진주나 색조화장품의 원료로 쓰이기도 한다.
갈치는 흔히 구이나 조림으로 해 먹지만 제주도에서는 늙은 호박을 넣고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싱싱한 갈치로 회를 해먹기도 하는데 냉장유통이 발달한 요즘은 서울에서도 몇몇 전문점에서 갈치회를 맛볼 수 있다. 갈치는 젓갈도 담근다. 특히 내장으로 담그는 남도의 갈치순태젓은 최고의 밥도둑으로 꼽힌다. 안타까운 것은 남획으로 인해 우리 연근해에서 갈치의 어획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갈치 요리는 역시 제주도가 본고장이다. 제주시의 ‘성복식당’과 ‘장춘식당’, 서귀포의 ‘남궁미락’과 ‘화정식당’이 소문이 자자한 집들이다. 서울에서는 청진동의 ‘제주갈고복’이 알려진 집이며 남대문시장의 갈치골목에 가면 서민풍의 갈치조림을 맛볼 수 있다.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201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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