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동,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옛 향수를 가득 짊어지고 있는 곳. 그래서 옛것의 향수를 간직한 어른들과 옛것에 동경을 품은 젊은 연인들을 숱하게 부르는 동네. 남산, 인왕산, 북악산과 더불어 내사산 중 하나인 낙산 아래, 어렵던 시절 서로 어깨 부딪치며 정겹게 지어진 집들을 관통하며 이화마을이 있다.
누구는 문화라 하고 누구는 저개발이라 말하는 이 마을은 오래된 것들과 현대의 것들이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여전히 꼿꼿하게 서 있다. 구불구불 이리저리 휘어진 골목과 높다란 계단들 틈에 제 살 자리 찾아 조그맣게, 때로는 위태롭게 지어진 집들에 사람들이 살아간다.
창신동과 성북동 그 사이 어디쯤, 깊은 회한에 잠긴 양 서울의 마천루를 내려다보며 선 이화마을 곳곳엔 세월이 심은 시간의 흔적과 그 곁을 지키는 사람의 체취가 짙다. 명색이 성곽으로 둘러싸인 사대문 안동네다. 사대문 안이라 개발이 덜 된 덕분에 지금은 제멋대로 변해버린 도시의 모습에 싫증난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2006년 68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낙산 공공프로젝트’ 이후 이화마을은 벽화마을로 변신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후 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사람들이 찾아들고 외국여행자들까지 찾아보는 관광명소가 됐다.
10월 말 끝난 ‘이화동 마을박물관’ 특별전 큰 호응
이화동에선 지난 9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이화동 마을박물관’이라는 특별전이 열렸다. 벽화마을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여러차례 이곳을 찾았지만, 이화마을의 집들은 여전히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집의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뿐 그 안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객들은 속속들이 골목 안팎을 누비면서도 그저 그려진 벽화 앞에서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골목 여행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오래된 마을의 집 곳곳을 박물관이나 갤러리로 꾸며 그 동선을 연결하는 마을박물관 프로젝트가 기획됐다. 이 동네에서 10년 넘게 산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에 의해서였다.
박물관 관장다운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골목만 누비다 끝나는 골목 여행이 아니라 마을의 집집으로 들어가 그 집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고 그 집에 살던 사람의 체취까지 맡을 수 있는 제대로 된 골목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최 관장은 마을의 오래된 집을 사들여 자신의 컬렉션을 펼쳐놓고는 작은 박물관을 만들기도 하고, 동네 주민들을 설득해 그들이 살아온 삶의 역사를 슬며시 꺼내놓게 만들었다. 이른바 소통이다. 주민과 주민 간의, 주민과 여행자 간의 소통. 내 것을 보여주고 네 것에 공감하는 결코 서둘지 않는 소통이다.
이화동 마을박물관은 저마다의 개성과 주제를 가진 7개 전시관을 마을길의 자연스러운 동선을 따라 이은 것이다. 모두 이화마을의 집이나 공방을 새롭게 꾸미거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인에게 문을 열었다. 단돈 1천원으로 7개의 박물관과 갤러리를 모두 둘러볼 수 있는 파격적인 티케팅도 선보였다.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집안 구석구석에서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마을박물관에서는 예술, 그와 더불어 마을사람들의 정서와 삶의 흔적을 만난다. 20년 전, 30년 전에는 저개발이었던 것이 이제는 문화가 되고 역사로 평가받는 것이다.
마을 속에 어우러져 마치 친구 집에 있는 듯
첫번째 박물관 ‘수작’에서는 독특한 다리미들과 미싱을 전시했다. 두번째 갤러리 ‘산개미 갤러리’에서는 유종연 사진전을, 세번째 갤러리 ‘소석 구지회 갤러리’에서는 구지회 화백의 동양화를, 네번째 박물관 ‘목인헌’에서는 돌밭댁의 70년사를, 다섯번째 박물관 ‘이화동 마을박물관’에서는 근·현대 한국인의 소소한 생활상을, 여섯번째 갤러리 ‘개뿔’에서는 적산가옥의 건축 면면을, 일곱번째 전시관 ‘김미연 칠보연구소’에서는 현대적인 칠보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들 박물관과 갤러리가 일반적인 여느 박물관이나 갤러리와 확연하게 다른 점은 모두 이화마을의 가옥을 활용한 전시관이라는 점, 마을 사람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마을 속에 깊숙이 어우러져 마치 친구 집에 놀러온 듯한 친근함과 따뜻함을 느낀다. 그 안에서 여행자는 ‘보는’ 구경꾼으로서가 아니라 ‘만나는’ 참여자로서 여행하게 된다는 것이 이화동 마을박물관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나는 박물관이다” “나는 갤러리예요”라며 우뚝 솟은 세련된 건물 속, 사람과 격리된 전시보다는 내 어린 시절 혹은 엄마·아버지 어린 시절 살았을 것만 같은 골목의 오래되고 삐뚤삐뚤한 집에서 만나는 가슴 아린 물건들이 비로소 내게 말을 거는 순간이다.
마을 집, 그 안의 정겨운 박물관과 갤러리를 내 집인 양 마음대로 드나들며 새롭게 만나는 이화동 골목 기행은 신선하다. 애틋하다. 당신들의 인생과 나의 인생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비록 올해의 이화동 마을박물관 전시는 막을 내렸지만 아쉬워할 일만은 아니다. 내년 봄이면 새단장 후 다시 문을 연다.
골목골목이 다 보물이다. 마을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낙산 성곽길을 만난다. 성곽길은 또 다른 옛길이다. 옛 마을길과 옛 성곽길이 오롯이 살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숨쉬고 있다.
글과 사진·이송이 여행작가 2013.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