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자 동네 여기저기 축제가 열린다. 나다니기 좋은 계절인만큼 흥겨운 지역 행사가 빠질 수는 없겠다. 가을을 축제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지역마다 갖가지 축제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1970~80년대에 드물었던 축제가 지방자치시대가 되고부터 곳곳에 넘쳐난다. 재래시장축제, 한우축제, 무슨 생선축제, 무슨무슨 인삼축제…….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열리는 축제마다 비슷한 주제로, 비슷한 행사로 채워지기 일쑤다. 심지어 우리나라 대표 도시가 다른 도시에서 오랫동안 해오던 축제를 모방하려고 해서 두 지자체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축제에 외부 손님이 찾아오는 것도 좋지만, 주인공은 역시 그 지역 사람들이나 해당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이다. 해마다 혹은 특정 주기로 이들이 중심이 되어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을 내려놓고, 한바탕 신명나게 즐기는 마당이 곧 그 지역의 축제인 것이다. 그래서 축제의 중요한 기능은 흥겨운 어울림을 통해 정서를 교감하며 집단 내에 생긴 이질감을 몰아내고 동질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흑인 부족들과 중남미 인디언 부족의 축제에서 이런 원형에 가까운 것을 발견한다. 가까이는 관광자원화되기 전, 중국 오지의 소수 민족들의 축제에서도 전 구성원들이 혼연일체가 되는 축제의 근원이 존속되었다. 유추해 보건대,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조상들이 주기적으로 즐겼을 마을 축제도 이와 유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위의 축제는 그런 본질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다. 사회 환경과 개인생활의 변화에 따른 축제의 진화를 고려하더라도, 지역 축제가 이벤트성 행사에다 경제 효과에만 치중해 돈벌이에 몰두한다는 인상이다. 본래의 기능보다 축제의 성공 여부를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방문해 어느 정도의 돈을 뿌리고 갔는가’로 평가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축제는 유독 먹는 행사가 많다. 매일 먹는 것도 모자라 축제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을 불러 모아 단체(?)로 먹게 하는 상행위가 주종을 이룬다. 1년에 한 번뿐인 축제에서조차 그 주역들인 상인들이 쌓인 노고를 달래고 시름을 잊는 일은 뒷전이다. 문화행사에 역점을 둔 축제라 해도 많은 경우 내용과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무슨 ‘세계축제’ 아니면 ‘국제축제’를 표방하곤 한다. 소박함과 토속적인 멋을 지키는 행사가 드문 이유이다.
축제 참가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행사 내용도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간단한 놀이가 주요 이벤트인 양 홍보의 중심을 차지한다.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산천어축제, 빙어축제, 맨발로 하천 달리기 등 단순한 놀이가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전국적으로 축제가 이렇게 많은 지금 축제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축제 본래의 기능을 상기해 볼 때다. 앞으로의 축제는, 경제성도 중요하지만 그 축제의 주역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신명나게 일상의 파격을 맛보든가, 평소에 접하기 힘든 문화행사를 누림으로써 생활의 격조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즐기는 축제로 거듭난다면, 시간과 더불어 그 축제의 전통과 유명세는 더해질 것이고 외부의 참여는 저절로 따라오지 않겠는가. 급조하여 덩치만 키운다고 될 일이 아닐 것이다. 축제란 까마득한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부족민에게 새 질서를 부여하던 교감의 장이었다.
글·전광호(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2013.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