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흔히 보이는 의례적인 언행, 체면치레, 같은 편임을 확인시키려는 행동, 응석, 자기비하적 겸손, 눈치 보기 등은 타인지향적 동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추론해 볼 수 있다.”
서른여덟 명의 전문가들은 책에서 한국인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인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특성들이다.
한국은 대체 어떠한 나라인가? 지난 반세기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세계의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골이 깊어진 세대 간 갈등, ‘묻지마 범죄’와 같은 병리현상이 사회 곳곳을 침투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어떤 심리가 현재의 모습을 만든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야심차게 준비한 책이 나왔다.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지난 8년간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심층 진단하고 분석한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 한국인을 발견하는 방식은 서른여덟 가지다. 심리학과, 교육학과, 사회학과, 법학과 교수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기 다른 색깔의 코드로 한국인의 심리를 집중 조명한다.
“너는 고향이 어디니?”로 시작되는 지역 구분은 한국인의 독특한 현상 중 하나다. 팔도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는 것이다. 또한 ‘성형왕국’이라 불리는 외모 지상주의와 상명하달의 군대식 조직문화도 마찬가지로 한국의 특성이다.
한국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설명하기도 한다. “심지가 곧은 것 같으면서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냄비 근성’을 자주 드러내며, 전통적이되 전통과 무관한 원조(元祖) 만들기에 열심이며, 한을 흥으로 전환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뤘다. ‘한국인은 일 중독자인가’ ‘한국 집단주의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인은 통일을 원하는가’ ‘남자는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되나’ 등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던져봤을 법한 질문이다.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한국인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관계 속 자아’다. ‘나’를 중심으로 하는 자기중심적 정서가 별로 없다. 관계 속 타인을 중시하다 보니 바로 ‘우리’라는 의식이 강해진다.
‘정(情)’에 남다르게 반응하는 코드는 한국인이 가진 이런 심리적 특성 때문이다.
책은 한국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보는 한편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하는 데도 지면을 아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외모 지상주의는 개인의 존중감과 연관된다. 자아 존중감은 주관적인 평가에 영향을 받게 되고 이에 따른 ‘외모 규범 일탈자’들은 우울증과 자존감 하락을 경험한다. 따라서 불필요한 ‘외모 낙인’을 조장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사회적 감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의 내면을 폭넓게 다루다 보니 방대한 분량의 책이 되었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맞다, 맞다”하면서 책장을 손쉽게 넘기게 된다.
이 책에서 살피고 있는 한국인의 서른여덟 가지 특성은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 내면에 축적돼온 우리의 고유문화라고 할 수 있다.
글·박지현 기자 2013.11.11
새로 나온 책
목요일의 그림
전원경 지음
중앙북스·1만6천원
한 주에 하나씩 총 52주 동안 그림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책이다. 신년엔 클로드 모네의 <해돋이-인상>을 통해 두려움 없이 힘차게 한 해를 시작하기를 응원하고, 밸런타인데이에는 제임스 티소의 <선장의 딸>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넌지시 묻는다. 3월 말엔 존 슬론의 <봄비>를 보며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피로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그림이 주는 힘을 느껴보자.
고전서당
이은봉 지음
동녘·1만6천원
동양고전 속에서 현대의 처세를 찾고자 하는 책이다. 저자는 옛 성현들이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살고 스스로를 다스리려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부식, 이황, 이이부터 홍대용, 이옥, 정약용 등 당대의 지식인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글과 삶을 녹여냈다. 현대인에게 새로운 각성을 준다. 빠른 것이 미덕인 오늘날, 이 책 만큼은 천천히 곱씹어 보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