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누리길의 ‘한북’은 북한산의 북쪽이라는 뜻으로 시작점은 북한산성 매표소 가기 전 창릉천을 따라 흐르는 도로의 버스정류장이다. 이곳에 어른 허리께 높이의 말뚝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갈색 말뚝에 녹색 글씨로 누리길을 표시하는 ‘N’자 표시가 돼 있다.
11월의 첫번째 주말 한북누리길에서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북한산성 입구는 북한산 등산코스에서도 특히 붐비는 곳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지하철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산으로 향한다. 반면 누리길 도보 여행자가 돼 반대 방향으로 걷게 되니 등산객과 교차돼 기분이 묘했다. 특히 이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호젓한 도보 여행길 묻어나는 흙냄새
첫번째 기점은 북한산 입구에서 북한산 온천까지다. 2킬로미터에 약간 못 미치는 길, 빠른 걸음으로 30분이면 족하다. 온천 입구는 이른 아침부터 오후 9시까지 문을 여는데, 산행을 마친 등산객보다는 가족 단위 온천 여행객이 많았다.
호젓한 도보 여행길은 온천 뒤편으로 올라간 뒤 시작됐다. 온천을 마주보고 왼편으로 고샅길이 나 있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막다른 골목에 이른다. 반드시 위쪽으로 가야 한다. 100여 미터 정도 걸어가면 이정표 말뚝이 보인다. 옥녀봉(205미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로 고갯마루는 중고개로 불린다.
중고개에서 왼편으로 가면 옥녀봉, 고개를 바로 넘으면 덕양구 오금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옥녀봉 정상은 5분이면 갈 수 있는데, 이곳에서 북으로 방향을 틀면 노고산(495미터)이다.
옥녀봉에서 내려와 싸리나무쉼터까지는 약 1.5킬로미터, 20분 정도 걸렸다. 이 구간은 예나 지금이나 군사적 요충지로 통한다.
고양·양주에서 서울 구파발로 진입하는 길이며, 6·25전쟁 당시 영국군과 중국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해피밸리’가 이 부근에서 멀지 않다.
도보 여행자는 싸리나무쉼터로 가기 전 371번 지방도를 건너야 하는데, 서울시민들이 휴양지로 애용한 일영·송추유원지가 이곳에서 멀지 않다.
맑은 날 싸리나무쉼터에서는 북한산과 노고산 등이 보이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린 데다 산안개까지 잔뜩 끼어 시계가 좋지 않았다. 오금동과 지축동 사이 작은 옛길 하나를 다시 넘는데, 한양과 고양을 오가는 이들의 지름길이었다. 왕의 행차나 고위 관리, 사신들이 주로 의주대로를 이용한 반면 이 길은 소박한 서민들의 길인 것이다. 의주대로는 현재의 1번 국도로 구파발에서 삼송역 방향 큰길이다.
조금 더 가면 북한산전망대가 있다. 오금동과 지축동의 경계지점으로 고양시를 동서로 가르는 한북누리길 중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인 인수봉(810미터)을 비롯해 백운대(836미터), 의상봉, 향로봉, 비봉 등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인왕산과 안산을 조망할 수 있다.
삼송역 5번 출구는 서삼릉누리길 시작
어느새 한북누리길의 끝인 지하철 삼송역이 코앞이다. 주유소 앞에서 육교를 건너 삼송역에 닿았다. 삼송역 5번 출구, 한북누리길의 끝이자 서삼릉누리길의 시작점이다.
근방에서 간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 길에는 또 어떤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도보 여행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모티브다. 삼송역에서 큰길을 따라 100여 미터쯤 가니 말뚝 이정표가 보였다. 이게 없었으면 ‘길을 잘못 들었나’라는 생각이 들 뻔했다. 말뚝을 이용해 오른편으로 올라가라는 표시를 하고 있었다. 콘크리트 골목길을 150미터쯤 올라가니 오른편으로 상수리나무숲이 보였다. 다시 보이는 누리길 이정표가 그지없이 반갑다.
상수리나무숲길에서 솔개약수터까지 약 1.5킬로미터 정도 이어진 숲은 호젓하고 편안했다. 맞은편에서 낙엽을 밟으며 다가오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만큼 길은 고요했다. 서삼릉누리길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길이었다.
숲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숫돌고개 이정표다. 길에 얽힌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설명 해설판’이 설치돼 있었다.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조선의 원병으로 출병한 명나라 이여송 군대는 이 고개에서 왜군을 맞아 승전보를 울렸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편안하게 서울로 입성할 준비를 하던 이여송은 북한산 북면 창릉천에 주둔한 왜군의 매복에 걸려 크게 패했다. 퇴각 명령을 내린 이여송은 이 고개에서 칼을 갈며 왜군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칼을 갈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 숫돌고개, 한자로는 여석령(礖石嶺)이다. 칼을 간 보람이 있었던지 명군은 권율 장군이 행주에서 큰 승리를 해 일본군이 물러난 틈을 타서 다시 숫돌고개를 넘어 남으로 진군할 수 있었다.
숫돌고개에서 숲길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농협대학까지 1.86킬로미터다. 길을 거슬러보면 삼송역에서 숫돌고개까지 약 1.2킬로미터, 짧은 길이지만 천천히 걸어 30분 걸렸다. 5분여를 내려가니 ‘서삼릉누리길 거북바위 이야기’ 해설판이 보였다.
숲을 내려와 마을 어귀에 드니 약수터가 있었다. 지도상에는 ‘솔개약수터’로 나와 있는데, 약수터에는 분명 ‘천일약수터’라 쓰여 있었다. 비 온 뒤라 물을 뜨지 않았다. 대신 약수터 위편으로 샛노란 은행나무 잎이 계단을 수놓은 아름다운 길이 보여 무작정 따라갔다.
해설판에서 삼송리의 작명에 얽힌 설명을 볼 수 있었다. 고양, 특히 삼송리 근방에는 조선시대 왕릉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선대왕의 능(陵)을 찾는 임금의 행차가 연중 몇 차례씩 있었다. 행렬은 서오릉을 지나 서삼릉으로 이어졌는데, 소나무 세 그루가 유난히 눈에 띈 곳이 있었으며, 그래서 삼송리(三松里)라 이름 붙여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 마을은 ‘소나무가 무성한 큰 고개’라 하여 솔개마을이 됐다.
푸른 초지와 샛노란 은행나무가 일품인 종마목장
솔개약수터에서 농협대학으로 가는 길은 비록 찻길이었지만 은행나무 낙엽길이 약 500여 미터 이어졌다. 농협대학을 넘어서면 원당경주마목장이다. 원당목장에는 주말을 맞아 소풍을 나온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았다. 찻길에서 목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왕복 1.2킬로미터.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15분이면 충분한지라 목장으로 진입했다. 역시 은행나무 낙엽길이 길게 이어졌다. 신기한 것은 11월인데도 목장 초지에는 아직 푸른 잡초가 무성했다. 샛노란 은행나무와 푸르른 잡초가 진한 대비를 이뤘다.
서삼릉이란 고양시 원당동에 소재한 효릉(孝陵)·희릉(禧陵)·예릉(睿陵)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중종(1488~1544)의 계비 장경왕후 윤 씨(1491~1515)의 희릉을 조성하면서 서삼릉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중종의 아들인 인종(1515~1545)과 비 인성왕후 박 씨(1514~1577)의 효릉, 철종(1831~1863)과 비 인철왕후 김씨(1837~1878)의 예릉이 자리 잡았다.
능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묘소라기보다는 숲 공원에 가깝다.
한창 무르익어가는 서삼릉의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 서삼릉은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 휴원이며, 단체일 경우 문화관광해설사를 예약 신청할 수 있다.
서삼릉을 지나오면 한국스카우트연맹을 지나 수역이마을에 다다른다. 이 마을에도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집들이 많다.
배가 고프면 이곳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것도 좋다. 수역이 마을에서 다시 상수리나무 낙엽이 수놓은 작은 고샅길을 지나면 배다리술박물관이다.
목장 진입로 입구에서 스카우트연맹, 수역이마을을 지나 배다리술박물관까지는 약 3킬로미터, 1시간 거리다. 술박물관에서 10여 분 내려오면 지하철 원당역. 서삼릉누리길은 여기서 끝난다.
3호선 삼송역에서 시작해 원당역까지, 지하철을 타면 3~4분이면 올 수 있지만 굽이굽이 길을 돌아오면 2~3시간이다. 하지만 몇 십 배 보람이 있는 길이다.
글과 사진·김영주(여행칼럼니스트) 2013.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