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를 잡자!”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복지가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에 비춰보면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 같은 장면이지만 1970년대에는 ‘전국 일제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겨울로 들어가는 초입이나 한겨울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인 것. 언론에서도 적극 호응해 잡은 쥐의 숫자를 보도하거나, “간첩을 색출하는 정신으로 쥐를 찾아내 박멸하자”며 정부 정책에 호응했다.
1970년 1월 26일 오후 6시, 제1회 전국 동시 쥐잡기 운동이 펼쳐졌다.
1960년대부터 시·군 단위로 벌이던 쥐잡기 행사를 농림부가 범국민 캠페인으로 확대한 것. 당시 농림부는 인구 1인당 세 마리, 한 집 평균 18마리의 쥐가 있어 전국에 9천만 마리의 쥐가 있다고 추산했다. 전국의 쥐들이 한 해 약 240만섬(240억원, 곡물 총 생산량의 8퍼센트)을 먹어치우니 절반만 잡아도 곡물 120만섬을 구한다는 논리였다.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의 ‘쥐를 잡자’ 편(경향신문 1970년 1월 21일)은 제1회 전국 동시 쥐잡기 운동을 알리는 ‘기념비적’ 광고다. “쥐를 잡자!”는 헤드라인 옆에 꼬챙이에 찔린 쥐를 펜 드로잉으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1월 16일 하오 6시를 기해 전국 일제히 쥐약을 놓아 쥐를 잡기로 했는데, 쥐약은 이(理)·동(洞)사무소에서 무료로 나눠주며, 2차 독성이 없는 인화 아연제 쥐약 20그램씩을 집집마다 분배하고, 안전한 쥐약이지만 개나 닭이 직접 먹지 않도록 유의하며 음료수는 뚜껑을 꼭 닫으라’는 내용이다.
정부에서 쥐약 놓는 시간까지 정해 주다니! 국민들은 오후 5시에 쥐약을 놓아도 되지만 꼭 6시에 쥐약을 놓아야 하는 줄 알고 그 시간을 맞추었다는 기사도 있다. 학교별로 목표치를 할당해 학생이 많은 집에서는 서로 쥐를 더 가져가겠다고 싸워 부모가 형제의 쥐 숫자를 정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가져가면 꼬리 한 개당 연필 한 자루씩을 주기도 했고, 많이 가져가면 복금 당첨권을 주기도 했다. 1억4천만원을 투입해 효과가 좋았으니, 그 후 구서(驅鼠·쥐잡기) 포스터 공모대회나 쥐잡기 주제의 웅변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유튜브에서는 다시 쥐잡기송(song)이 인기를 끌고 있다. “쥐 한 마리가 쥐 두 마리가~~~ 그때 야옹~ 야옹~ 고양이 나왔지~~ 모두 쥐구멍에 들어가서 숨어버렸지.” 10대들은 저 1970년대의 쥐잡기 운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미있게 흥얼거린다. 박멸의 대상에서 귀여움의 대상으로 처지가 바뀐 쥐들의 운명에서 시대의 표정을 느껴보자.
글·김병희(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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