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설 속에서도 많은 꽃들이 피고 지고 있다. 소설은 우리 삶을 담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삶의 한 부분인 꽃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에는 ‘여뀌<사진>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작품 2권에는 “강실이에게는 그 목소리조차 아득하게 들렸다. 그러면서 등을 찌르던 명아주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아우성처럼 귀에 찔려왔다”는 대목이 있다.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는 4권과 6권에서도 다시 나오고 있다.
이 소설은 사촌 사이인 강실이와 강모의 애증관계가 기본 뼈대 중 하나다. 처음 강실이는 살구꽃 이미지였다. 강실이 집 토담가에는 연분홍 살구꽃잎이 휘날리는 아름드리 살구나무가 서 있고, 강모와 강실이는 어릴 적 그 살구나무 아래에서 소꿉장난을 했다.
강모는 혼례를 치르지만 신부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다 어려서부터 연모해 온 강실이를 범한다. 그 장소가 여뀌가 무성한 텃밭이었다. 이 사건은 강실이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변곡점이었다. 무책임한 강모는 만주 봉천으로 도피해 버리고, 옹구네가 강모와의 정사 소문을 퍼뜨리면서 홀로 남은 강실이는 벼랑끝으로 몰린다. 그래서 강실이가 이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럼 왜 하필 여뀌일까. 소설의 배경은 전북 남원의 노봉마을이다. 남원을 가로지르는 강 이름이 요천(蓼川)이고, ‘요’자가 ‘여뀌 요’자라는 것을 알면서 그 궁금증은 풀렸다. 요천은 여뀌꽃이 만발한 모습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요천은 광한루 앞 등 남원 시내를 흘러 섬진강에 합류하는 샛강이다.
본래 ‘요강’이라고 부르려다 어감이 좋지 않아 요천으로 바꾸었고, 남원사람들은 ‘요천수’라고 부른다. 지난 봄 산철쭉 사진을 찍기 위해 지리산 바래봉에 다녀올 때 요천수를 보았다. 둔치를 쌓는 강변 개발을 해서 여뀌가 자랄 공간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여뀌는 습한 곳이나 시냇가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1년생 풀이다.
6~10월 가지 끝에 이삭 모양의 붉은색 꽃이 다닥다닥 달리지만, 요즘도 산기슭이나 도심 공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고마리·부레옥잠 등과 함께 수질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
<혼불>은 작가가 17년에 걸쳐 완성한 대하소설이다. 작가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1981년 초 <혼불>을 쓰기 위해 사직했다. 작가는 <혼불>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다른 작품을 쓰지 않았고, 1998년 암에 걸렸지만 치료를 거부한 채 <혼불>을 완간한 지 2년 만에 별세했다.
우리 나이로 52세 때였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마치 한 사람의 하수인처럼, 밤마다 밤을 새우면서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의 넋이 들려 그들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가라는 대로 내달렸다. 그것은 휘몰이 같았다”고 했다. 작가는 ‘소신공양하듯’ 17년 동안 <혼불>을 쓰고 세상을 뜬 것이다.
<혼불>의 배경 마을인 남원 노봉마을은 작가의 아버지 고향으로, 작가가 어렸을 적 많이 간 곳이다. 남원시는 노봉마을을 ‘혼불마을’로 지정하고 이곳에 ‘혼불문학관’을 지었다.
이 글은 <혼불>이라는 거대한 작품을 여뀌라는 작은 야생화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혼불>에 대한 분석과 글이 많지만 잡초인 여뀌 관점에서 바라본 것은 처음이라 자부심도 갖는다.
글과 사진·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 201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