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꿈틀거린다. 그냥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작은 몸집이지만 혀를 내두를 만큼 무서운 몸짓으로 꿈틀댄다. 온몸이 용솟음쳐 오르고 내리는 그 꿈틀거림을 한시도 멈추지 않는다. 입으로 들숨을 쉬고 항문으로 날숨을 뱉는 미꾸라지들이 수면과 바닥을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생을 유지한다.
꿈틀거림을 멈추는 순간 그 생명도 끝이 나고 마는 것이기에 꿈틀댄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증거다. 온몸으로 살아 있음을 방증한다. 미꾸라지만큼 한시도 거르지 않고 온몸으로 자기를 살아내는 생명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그 꿈틀거림에는 태만이 없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5대 음식테마거리는 서울 신당동 떡볶이거리, 강릉 초당순두부거리, 대구 안지랑 곱창거리, 부산 광안리 민락동 횟집거리, 그리고 남원 추어탕거리다. 그 중 겨울에 가장 어울리는 메뉴는 남원의 추어탕이 아닐까. 뜨끈한 국물에 밥 한그릇 말아먹으면 다가올 추위도 두렵지 않다.
추어탕은 배고픈 시절 농민들에게는 가을걷이가 끝난 후 여름철 축난 몸 추스르고 다가올 추위를 대비해 먹는 보양식이기도 했다. 강에서 낚은 고기로 매운탕을 끓일 때 논두렁에 흔하던 미꾸리를 함께 넣어 흔히 먹던 ‘천렵국’에서 유래한다. 추어탕 먹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찬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사이라지만 요즘에는 기운 떨어질 때면 언제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추어탕이다.
‘새집’을 시작으로 형성된 추어탕거리 50년
남원 하면 바로 추어탕을 떠올릴 만큼 남원추어탕이 유명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남원은 지리적으로 전라도 동부지역의 산악 중심 도시로 예부터 그 영역이 광대했고 산악문화와 농경문화가 조화를 이루어 먹을거리도 풍부했다. 특히 섬진강의 지류 대한민국 땅 방방곡곡에는 맛깔나고 독특한 음식으로 그 지역까지 유명해진 음식명소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에서는 그 중 옥석을 가려 5대 음식테마거리를 선정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에는 남원의 추어탕거리도 포함된다. 12월의 첫 주 슬며시 외투 안으로 차가운 바람을 밀어넣는 초겨울 추위를 뜨끈한 추어탕 국물로 녹이는 보양여행은 어떨까.
인 요천과 축천이 만들어 주는 청정 하천이 남원 곳곳으로 흐르는 덕에 풍부한 퇴적층이 형성되어 너른 평야가 되었으니 미꾸라지를 흔하게 잡을 수 있었다. 자연스레 미꾸라지를 비롯한 민물고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미꾸라지는 내수면의 잡기 쉬운 곳에서 서식하므로 예부터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는데 농촌사람들에겐 더욱 요긴한 동물성 단백질 식품이자 보양식이고 강장식이었다. 지리산에서 나는 고랭지 푸성귀를 말린 시래기와 질 좋은 초피(전라도에서는 젠피라 부른다)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생태환경에서 남원의 추어탕 문화는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옛날에는 양반층보다 서민층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었지만 그 영양학적인 가치가 조명되면서 지식인층의 기호식품으로 전파되었고, 현대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인정하는 보양식으로 대중화되었다.
남원에는 광한루원 일대인 남원시 천거동을 중심으로 추어탕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광한루원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줄지어 있는 추어탕집만 해도 50여 군데에 이른다. 광한루원에서 곡성쪽으로 300미터 지점에 ‘새집’이 있고, 그 주변의 도로변 식당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추어탕집들이다.
1959년 남원시 조산동에서 ‘새집’을 개업한 고(故) 서삼례 할머니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은어요리, 추어탕, 추어숙회 등을 선보였다. 남원문화원에서는 “88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관광객들이 남원과 지리산에 몰렸고 이때 ‘새집’ 할머니 추어탕 맛이 최고라는 명성이 퍼져 전국적인 대표 음식이 됐다”고 전한다.
남원에서 가장 오래된 ‘새집’ 추어탕은 약 40년 전 천거동으로 이전해 54년째 영업 중이다. 그 주변으로 하나 둘 추어탕집들이 생겼고 추어탕거리가 조성된 현재에 이른다. ‘새집’의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명성을 얻은 20~30년 된 오래된 추어탕집도 있고 이제 막 오픈한 지 한 달 된 따끈따끈한, 그야말로 새집도 있다.
남원까지 내려와 먹는 추어탕의 매력은 남원지역의 어느 추어탕집이나 국내산 미꾸라지만 쓴다는 점이다. 남원의 추어탕 식당들에서 소비되는 미꾸라지는 남원에서 생산되는 자연산을 비롯해 남원과 그 인근지역에서 기른 양식으로 모두 국내산이다.
자연산이건 양식이건 남원에서 생산된 토종 미꾸라지는 일반 미꾸라지에 비해 월등히 맛이 좋다. 지리산의 맑은 물과 산골 연못에서 자란 남원의 미꾸라지는 해감이 적어 전국에서 제일로 알아준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건강에 이로워
“미꾸라지는 배를 덥히고 원기를 돋우며 술을 빨리 깨게 하고 정력을 보하여 발기 불능에 효과가 있다.” “양기(陽氣)에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한다.”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에 등장하는 이러한 추어탕의 효능은 과장이 아니다. 이미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바 있다. 추어탕에는 생리 활성을 촉진하는 비타민이 골고루 들어 있어 중년 이후의 정력 감퇴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고혈압을 내리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불포화 지방산의 비율이 높아 성인병 예방에 좋고, 단백질 중 필수아미노산인 라이신은 성장기 어린이나 노인에게도 좋은 영양소다. 미꾸라지 표면의 점액 물질인 뮤신으로 인해 세포의 노화와 위축을 예방해 젊게 보이는 동안피부를 만들기도 한다. 추어탕은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몸에 이로운 식품이다.
옛날 한양에서 양반집 마님이 깊은 밤 사랑채의 서방님이 드실 야식으로 은밀하게 준비했던 음식이 바로 추어탕이었다. 미꾸라지의 움직임과 태생 때문에 천한 음식으로 취급했던 예전에는 남의 이목을 피해서라도 먹고 싶었던 음식이었다. 동양의학서나 민간 속설에서도 하나같이 미꾸라지가 정력에 좋다고 나온다.
남원에서 꽃피운 시원하고 박력 있는 소리의 동편제만 봐도 남원 사람들의 정력을 가늠할 만하다. <변강쇠전>과 <춘향전>의 서로 다른 사랑이야기에도 다른 종류의 에너지가 넘친다. 변강쇠의 넘치는 힘은 그것대로 활력이 있고 굳건히 시련을 이길 수 있는 강단을 가졌던 춘향의 절개에도 힘이 있다.
태생적으로 본성이 강건한 미꾸라지는 그 움직임이 활발할 수밖에 없다. 진흙 속에서 꿈틀대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힘차게 몸을 움직여야 했고 그것이 습성이 되었으니 생명의 에너지는 대단한 것이다. 그러한 미꾸라지를 탕으로 끓여 먹으니 약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추어탕은 단순히 몸만 보양하는 음식이 아니다.
미꾸라지의 끊이지 않는 생명력, 그 활력을 닮고 싶어하는 연약한 사람의 마음까지 보듬는 마음의 보양식이다.
50여 식당 즐비… 입맛 따라 개성 따라 골라먹는 재미
추어탕거리에 있는 50여 개의 추어탕 식당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맛을 자랑한다. 뼈째 갈아 영양이 그대로 살아 있는 걸쭉한 추어탕을 내는 ‘3대원조할매추어탕’을 비롯해 맵지 않은 어린이용 추어탕과 인삼을 넣어 어르신용 효추어탕을 개발한 ‘현식당’, 인산죽염으로 간을 해 남원 전통의 짭짤하고 얼큰한 추어탕맛을 이어오고 있는 ‘흥부골남원추어탕’, 하나부터 열까지 할머니의 정성과 손맛을 고집하며 자연산 미꾸라지를 쓰는 ‘고향마루추어탕’, 직접 손으로 살과 뼈를 발라내는 수타식 추어탕을 선보이는 ‘참살이추어탕’, 얼큰한 국물의 ‘부산집’, 맑은 국물이 깔끔한 ‘동원추어탕’, 할매할배 인정 넘치는 ‘부부식당’ 등 추어탕 집집마다의 특색과 서로 다른 맛 덕분에 취향에 따라 골라먹을 수 있다는 점이 추어탕거리의 매력이다.
하루 두 끼 혹은 세 끼, 매일 먹는 밥이지만 때때로 그 밥, 제대로 한 끼 먹으러 남원까지 달려가고 싶은 날이 있다. 몸도 마음도 지쳐 그만 꼬꾸라져 버리고 싶은 어떤 날, 뜨끈한 추어탕 한 그릇 앞에 놓고 미꾸라지의 그 강건한 생명력을 탐해도 좋을 일이다.
글과 사진·이송이(여행작가) 2013.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