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지역의 경제지형이 대단위지역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급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29일 처음으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의 종착역을 향하는 시점에서 참여에 관심을 표명하여 막차를 탔다. 뒤늦었지만 바른 선택이다. 월드컵에 출전해야 기량을 세계 수준으로 연마할 수 있듯이 초광역 다자통상 질서에 참여해야 우리는 선진통상대국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TPP 참가국 12개국은 세계 GDP의 38.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TPP는 2008년 미국이 합류하고 그 뒤 캐나다와 멕시코 등이, 마침내 일본의 아베정권까지 지난 7월 공식협상에 합류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TPP는 아무리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 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TPP에 뒤질세라 중국은 개방성이 낮지만은 않은 역내 포괄적 동반자협정(RCEP : 아세안 10개국, 한·중·일, 인도, 호주, 뉴질랜드)을 주도하며 미국과 대립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동시다발적 FTA를 통상정책의 기본으로 삼아 온 우리나라는 미국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TPP에 왜 당초부터 참여하지 않았던 걸까? 우선 이미 한·미 FTA를 발효시켰고, 일본을 제외한 TPP의 여타 주요국과 FTA를 타결하였거나 양자협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실익이 크게 없다는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경제 긴밀도가 가장 높고 북한 관리를 위한 전략적 동반자로서 한·중 관계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이미 각론 협상으로 접어든 한·중 FTA에 더욱 공을 들인 점이다. 또 하나의 요인으로는 일부 농산물의 추가 시장 개방으로 인한 국내 반발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고려했을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다음의 측면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선 미국이 주도하는 TPP는 지금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도하개발어젠다(DDA)에 돌파구를 열자는 의지와 함께 새로운 통상, 서비스, 투자 규범과 다자회원국 공통의 원산지 규정 등 새로운 통상 원칙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국제 정치적 측면에서 TPP와 RCEP의 추진을 미국과 중국의 역내 패권경쟁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 논리이다. 미국은 향후 중국을 포함해 TPP의 기본 틀을 수용하는 나라에 문호를 열어 놓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참여 표명에 대해 미국은 일단 환영하지만 TPP의 기존 참가국들과 현재진행형인 틀에 대한 합의를 조속히 도출한 이후에 고려할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앞으로 우리의 TPP 가입수순은 관심표명→참여선언→기존 참가국의 승인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본에 아·태지역 공급사슬망 주도권 빼앗기면 안 돼
우리는 위의 수순을 빨리 진행하여 내년 상반기 이전에 신규 참여국 자격을 얻고, 가능성이 다분한 최종 타결 라운드에라도 참여해 우리의 관심 영역을 반영하여야 한다. 우리나라가 TPP에 합류할 경우 아마도 가장 큰 변화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발생할 것 같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부품·소재와 자동차 시장에서 문호를 여는 반면 일본의 서비스 시장과 농업 개방에 따른 일본 시장 진출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TPP 참여 시 예상되는 일부 농산물과 중소기업 제품의 추가 개방에 대비해 국내 대책을 조속히 수립하고 농업의 수출 산업화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경쟁력이 없다는 농업에서 지난해에 농수산 가공식품 수출만 85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은 이제 TPP, 한·중 FTA, RCEP 등에 동시 참여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중견모범통상국가로서 통상과 투자의 허브 기능을 다지고 중국이 포함되는 명실상부한 아·태 자유무역지대(FTAAP) 결성에 적극 기여, 우리의 경제영토를 넓혀야 한다.
글·안충영(중앙대 석좌교수·경제학) 2013.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