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대풍년을 이뤄 쌀 소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거나, 쌀 소비가 급감해 특수미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언론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쌀 소비 촉진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어서, 몇 년 전부터 ‘쌀은 한국 사람의 체질에 딱 맞는 음식’이라는 텔레비전 광고가 나오기도 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농촌진흥청에서 ‘쌀=밥’이라는 공식을 깨고 ‘고아미쌀’로 만든 유아용 파우더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먹는 쌀이 바르는 화장품으로 개발되어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 하지만 그런 쌀도 귀하신 몸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이름으로 낸 ‘식생활 개선 캠페인’ 광고(동아일보 1972년 1월 18일)를 보자. 이 광고에서는 “애국하는 마음으로 혼·분식을 합시다!”라는 헤드라인을 써서 혼·분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식생활 개선과 미곡 소비절약에 대하여!’라는 소제목을 바탕으로 혼·분식은 애국의 길, 정부 시책의 요점, 혼·분식의 이점, 국민의 협조 요청 같은 4가지 핵심 사항을 선정해 깨알같이 상세한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의 주식인 쌀은 그 영양 성분으로나 경제성으로 볼 때 여러 가지 폐단이 많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며 쌀의 가치를 심각하게 부정하고 있으니, ‘쌀은 한국 사람의 체질에 딱 맞는 음식’이라는 최근의 광고 메시지와는 차이가 너무 크다.
이 광고 이후에도 정부의 식생활 개선 캠페인은 여러 부처가 함께 참여하는 형태로 지속되었다. 정부 광고 바로 아래에 동아제분(밀가루회사) 광고나 삼립식품(제빵회사) 광고를 게재하게 함으로써,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정부는 ‘혼·분식=애국’이라는 논리로 공공 캠페인을 전개한 셈이다.
정부 광고의 설득 논리는 이렇다. 혼·분식이 애국이다(숨은 전제) → 애국하기 위해 혼·분식을 하자(주장)→혼·분식을 해야 건강해진다(논거). 숨은 전제를 제시한 다음 주장을 하고, 그에 해당되는 논거를 제시하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전형적인 문법을 구사한 셈이다. 그 무렵의 정부 광고에서 자주 활용하던 방법이었다.
혼·분식 장려 운동은 1969년 1월 23일 정부의 행정명령 고시로부터 시작되었다. 정부는 음식점을 실사해 위반한 업소를 엄중 처벌했는데, 1975년 8월에는 서울에서만 1,336개 업소가 적발되어 8개 업소는 허가취소, 691개 업소는 1개월 영업정지를 당했다. 학교에서도 매일 점심시간마다 쌀밥에 보리나 밀가루가 25퍼센트 이상 섞여 있는지 도시락 검사를 했다. 혼·분식 여부를 성적에 반영했기에, 부잣집 엄마들은 도시락용 밥을 따로 짓거나 2층 밥을 지어 자식들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식량 자급에 성공한 1977년에 들어서야 그 행정명령이 해제되었다.
연말연시를 맞이해 이런저런 행사들이 자주 열리고 있다. 행사장에 가보면 축하 화환이 즐비한데, 행사가 끝나면 그 많은 화환들이 현장에서 폐기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어차피 보내고 받아야 할 화환이라면 차라리 쌀을 대신 보내면 좋지 않을까? 1972년의 광고 문구처럼 말하자면 화환 대신 쌀을 보내는 것도 애국의 길이다. 쌀 소비 문제를 가치사슬의 맥락에서 접근해 다양한 시장을 창출하는 정책이 필요한 때다.
글·김병희 (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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