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어느 흐린 날이었다. 그날 따라 미세먼지로 도시가 온통 뿌옇게 가라앉아 있었다. 황사, 미세먼지 따위들이 점차 기승을 부리면서 우리네 숨쉴 권리를 조금씩 앗아가는 것 같았다. 그날 마련한 입마개를 하고 거리를 나다녔다. 숨이 저절로 막혀오는 것 같아 순간 아찔했다. 자연스러운 일이라 들숨이든 날숨이든 평소에는 별로 신경 써 보지 않았던 터였는데, 숨쉰다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바빴지만 발은 느려졌다. 생리적인 생존본능 덕분일까. 빨리 걷는다면 더욱 헉, 헉, 거친 숨을 토해낼지도 모를 터이므로 발이 나서서 숨을 조절하는 모양이었다.
느리게 걸어서 ‘느린 풍경’ 앞에 섰다. 이청준 소설을 비롯한 여러 소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 이른바 소설화(小說畵)의 새 장을 연 한국화가 김선두 선생의 전시회였다.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전시회는 놀랍게도 구불구불한 변두리 텃밭의 풍경이었다. 남녘 바닷가 시골 출신인 그는 오랜 서울 생활을 하면서도 고향의 구부러진 길을 잊을 수 없었나 보다. 현묘한 곡선 터치를 통해 시골 풍경과 도시 변두리 풍경이 아스라이 겹쳐져 있었다. ‘빨리, 빨리’를 강요당하는 도시의 직선이 아닌 변두리 시골의 곡선을 통해서, 그는 파시스트적 가속도의 시대에 저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곡선은 한없이 깊어져 확산되고, 늘어지면서 심화하는 가운데 우리네 원초적 고향의 정서의 밑자리로 내려갔다. 나 역시 시골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의 문명 비판적 느림의 미학에 십분 공감하면서 편안한 숨을 느리게 쉴 수 있었다. 고향에 다가선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그 ‘느린 풍경’을 음미하며 잡지를 보다가 어떤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읽게 되었다. 7남1녀 중 4형제가 신부가 되었고 1녀마저도 수녀가 되었다고 했다. 속초 청호동성당의 오세민 루도비코 신부님의 이야기였다. 사제 서품을 받고 첫 본당으로 떠나던 날 아침 노모께서 “신부님께 드리는 엄마 선물입니다”라며 보따리를 건네주셨다. 어머니의 선물이 궁금했던 아들은 그날 저녁 보따리를 끌러보았는데, 그 안에는 아깃적 배냇저고리와 한 살 무렵에 입었다는 털실로 짠 아주 예쁘고 자그마한 털옷이 얌전하게 개켜져 있었다. 그 위에 어머니께서 연필로 꾹꾹 눌러쓰신 손편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신부님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월간독자 Reader> 2013년 12월호)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핑 돌았다.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원래 ‘작은 사람’이었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조금 전 김선두의 ‘느린 풍경’을 고즈넉하게 따라가며 고향의 풍경을 그려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나의 시선을 끝까지 따라가지 못했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 구불구불한 구절양장(九折羊腸)의 시골길 끝에서 아주 ‘작은 사람’이었던 나 자신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작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나를 봐달라고, 나를 잊지 말라고, 조용히 나를 찾았던 것을. 그 목소리를, 그 눈빛을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나이가 들고 분수 넘게도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자칫 외면하는 일이 잦았던 구불구불한 시골길 위의 ‘작은 사람’의 풍경은 느리지만 더욱 선명하게 내게 다가왔다. 눈물이 미세먼지로 더럽혀졌을 눈가를 씻어냈다. 긴 날숨을 내쉬었다. 다음 주에는 그 ‘작은 사람’을 만나러 고향길에 올라야겠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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