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의 장편소설 <은교>를 읽다가 여주인공을 쇠별꽃에 비유한 것을 보고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를 모은 이 소설은 예순아홉 노시인이 열일곱 소녀 은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큰 읽을거리인데, 그 중에서 은교를 쇠별꽃에 비유한 대목이 하이라이트다.
소설 앞부분에서 시인이 은교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 “나는 곤히 잠든 소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 하오의 햇빛을 받고 있는 상반신은 하얗다. 쇠별꽃처럼. 고향집 뒤란의 개울가에 무리져 피던 쇠별꽃이 내 머릿속에 두서없이 흘러갔다”는 대목이 있다. 또 비오는 날 은교가 천둥소리에 놀라 시인 옆으로 와 잠든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그 애의 젊은 머리칼에선 적멸(寂滅·사라져 없어짐) 없는 빛이 흘러나왔고, 쇠별꽃 같은 향기가 풍겨나왔다”는 구절이 나온다.
노시인 이적요는 원래 여성에 대한 욕망을 하찮게 생각했고, 자신을 매혹시키는 여성을 만나지도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성기능도 잃었다.
그런 시인이 자신의 집 데크 의자에 앉아 잠든 소녀를 발견했을 때 욕망이라는 낯선 감정을 느낀다. 은교는 ‘눈에 확 띄는 미인이라곤 할 수 없지만’ 귀엽고 해맑고 붙임성이 좋았다. 소녀는 청소 알바를 하면서 시인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기 시작한다.
시인의 제자 서지우는 문학적 재능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노시인이 준 소설을 자기 이름으로 내서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오른다. 서지우와 은교의 관계는 일종의 원조교제 비슷하다. 은교가 시인의 집을 찾아와 데크 의자에서 잠들기 전에도 두 사람은 알고 지냈다. 시인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서지우가 은교와 애정행각을 벌이자 질투와 함께 자신을 능멸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여기에다 서지우가 시인의 단편을 훔쳐가 자기 이름으로 내고 사람을 시켜 시인을 모욕하자 교통사고로 위장해 그를 살해한다. 그리고 시인은 치료를 거부한 채 죽음을 맞는다.
<은교>를 읽는 맛은 노인의 사랑과 욕망을 섬세하게 그려낸 데서 나온다. 특히 잠자는 은교에 대한 묘사, 은교가 입김으로 화아, 뽀드득뽀드득 같은 소리를 내며 유리창을 닦는 장면 등은 감각적이며 소설 속 표현대로 ‘관능적’이다. 특히 노시인의 은교에 대한 사랑과 욕망은 일정한 경계선을 넘지 않고 절제를 보이면서 울림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쇠별꽃은 별꽃과 함께 전국의 집 근처, 산기슭, 길가 등 약간 습한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생장력이 왕성해 첫눈이 온 지 한참 지난 12월 초에도 회사 뒤뜰에는 쇠별꽃들이 무리지어 꽃망울을 맺고 있다.
쇠별꽃은 작은 별처럼 생긴 흰 꽃과 초록색 잎, 줄기 등 거의 두 가지색만 있다. 그래서 첫눈에 싱그럽다는 느낌을 준다. 소설 속 은교의 이미지와 잘 맞는 꽃이다. 쇠별꽃 등 별꽃속 식물들은 꽃잎이 다섯 장인데, 꽃잎 하나가 깊게 갈라져 두 개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열 장의 꽃잎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별꽃과 쇠별꽃을 구분하는 포인트는 꽃 가운데 있는 암술대 숫자를 보는 것이다. 별꽃은 암술대가 3개여서 삼발이처럼 보이지만, 쇠별꽃은 암술대가 5개여서 바람개비처럼 보인다. 꽃들이 작기 때문에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암술대가 보인다.
문학에서 여성을 꽃에 비유하는 것은 흔하지만, 여주인공이 쇠별꽃 같다는 소설을 만날 줄은 몰랐다. 소설 <은교>는 뜻밖에도 쇠별꽃이 등장하면서 문학적인 성취와 향기를 더한 것 같다.
글과 사진·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 2013.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