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의 구룡포 일대에 과메기가 한창이다. 바닷가의 덕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수많은 꽁치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과메기는 갓 잡은 청어나 꽁치를 냉동 상태로 보관하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바닷가에서 차가운 해풍을 맞혀가며 냉동과 해동을 반복시켜 꾸덕꾸덕하게 말린 것이다. 건조 과정에서 비린내는 날아가고 육질은 쫄깃해지며, 기름기가 자르르 돌면서 특유의 고소한 맛을 내게 된다.
숙성되면서 노화 방지와 피부 미용 등에 좋은 핵산과 오메가3 지방산의 함유량이 늘어나 영양도 더욱 풍부해진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풍수대가 격암(格庵) 남사고(南師古)가 그 지형을 호랑이 꼬리에 비유한 구룡포는 과메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온과 습도, 해풍 등을 가장 이상적으로 갖추고 있는 곳이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로 만들었으나 1960년대 말에 청어가 자취를 감추면서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1809년에 출간된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비웃을 들어 비추어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려 쓰는 그 맛이 기이하다”라고 했다.
과메기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말린 청어를 뜻하는 관목(貫目)이란 이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인 듯하다.
관목은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린 데서 비롯되었는데 구룡포 주민들이 목을 ‘메기’라 발음하여 관메기가 되었다가 니은 받침이 없어지면서 과메기로 변한 것이다.
최근에 청어가 다시 등장하여 적은 양이지만 청어과메기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청어는 기름기가 많고 몸집도 커서 과메기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 생산자들이 건조를 기피하는 것이 흠이지만, 청어과메기의 깊은 맛을 꽁치과메기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19세기 후반에 나온 <명물기략(名物紀略)>에는 청어를 값싸고 맛이 있어 한양의 가난한 선비들이 잘 먹는 물고기라고 밝히고 있으며, 선비들을 살찌게 하는 물고기라는 의미의 비유어(肥儒魚)로 명명하고 있다.
서울 사람들이 청어를 비웃이라 부르는 것도 이 비유어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긴 조선 중기의 청백리 안현(安玹)이 편찬한 <소수서원선록(紹修書院膳錄)>에는 부산 근방에서 청어를 잡아 말린 과메기를 육로로 200킬로미터나 떨어진 경상북도 풍기의 소수서원까지 운반했으며, 당시 유생 한 사람이 하루에 청어 네 마리를 먹었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이다.
요즘은 단순하게 과메기를 미역이나 김에 싸먹는 정도이지만 옛날에는 오히려 더욱 다양하게 해 먹었던 모양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청어를 훈연해서 만드는 연관목(煙貫目)에 관한 언급이 나오며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과메기로 지짐이를 해 먹으면 맛있다는 기록도 보인다. 소설가 김동리는 “과메기를 불에 대강 구워서 칼로 그슬린 비늘을 쏙쏙 긁어 버리고 쭉쭉 찢어 먹으면 술안주로서 더없이 좋은 맛”이라고 했으며 또 “칼로 토막 내어 냉이와 쑥과 콩나물 따위를 섞어 죽을 쑤어 놓으면 이것이 또한 진미”라고도 했다.
미식가로 유명했던 언론인 심련섭은 과메기를 넣고 끓인 쑥국을 봄에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음식으로 꼽기도 했다. 요즘 과메기는 대부분 북태평양산 꽁치로 만들고 그것도 건조의 효율성 때문에 배를 갈라 말린 ‘배지기’가 대세이다. 그러나 과메기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청어를 통째로 말려서 알과 내장까지 맛볼 수 있는 ‘청어통마리’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포항죽도시장이나 포항구룡포과메기사업협동조합에 연락하면 구할 수 있다.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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