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평서니는 전국적인 지명도는 갖지 못했지만 전남 여수 일원에서는 알아주는 생선이다. 그렇지만 여수가 어디 예사 고장인가. 옛날부터 “여수 가서 돈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혹자는 여수가 1950~60년대 밀수의 고장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겼다고 하지만 사실은 일제강점기에 여수항이 개항하면서 해상교통의 요충지이자 어업기지로 번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지인들의 주장이다.
경제적으로 번창하던 곳인지라 맛있는 것도 많고 사람들 입맛이 까다롭기로도 유명한 동네다. 소설가 한창훈이 인용한 대로 “오늘 먹고 말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바로 여수 사람들이다.
해산물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이 지역에서 음식 좀 따져가며 먹는다는 이들이 굴비보다 윗길로 치는 생선이 바로 군평서니다. 오죽했으면 몰래 만나는 애인에게만 챙겨주는 고기라 해서 ‘샛서방고기’라는 선정적인 별칭이 다 붙었을까.
시인 김영애는 그 맛을
“시 한 편 쓴다는 일이 / 물고기 이름
하나로 족할까 / 금풍생이 구이 / 어찌 입에 달던지 / 샛서방하
고만 먹는다는데 / (중략) / 금풍생이 살점 떼어서 / 무릎 꿇고
앉아 샛서방 입에 넣어주면 / 오직 맛으로만 먹는다는 황홀”
이라고 노래했다.
시인은 표준 이름을 놔두고 굳이 여수의 식당들 메뉴판에 올라 있는 것처럼 ‘금풍생이’라 했는데, 사실 군평서니만큼 별명이 많은 생선도 없다. 경남에서는 꾸돔, 전남에서는 쌕쌕이, 그 외에도 지역에 따라 딱돔, 꽃돔, 깨돔, 얼게빗등어리, 챈빗등이, 딱때기, 금풍쉥이, 금풍선이, 군평선이 등의 다양한 칭호가 있다.
돔이라는 명칭이 붙는 데서 짐작할 수 있지만 군평서니는 도미의 일종이고 학술적 분류로도 하스돔과에 속한다. 이름에 돔이 들어가는 생선 종류는 대체로 지느러미와 비늘이 강하고 가시가 억세지만 자태에 기품이 있는데, 군평서니도 마찬가지로 강골로 생겼으나 우아한 모습을 자랑한다. 통상 몸길이는 25센티미터에서 30센티미터 사이고 긴 타원형으로 생겼으며, 머리에서 꼬리까지 6개의 폭넓은 암갈색 가로띠가 있다.
또 온대성 어류로 계절에 따라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회유성 어종이다. 겨울철에는 수심이 깊은 남쪽 바다에 서식하다가, 봄이 되면 중국 연안 및 우리나라의 남해안과 서해안으로 이동하여 얕은 바다에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면 다시 남쪽으로 이동한다.
여수 지역에 구전되어 오는 그 이름의 내력에는 불경스럽게도 이순신 장군까지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했을 때 우연히 이 고기를 먹고 맛이 있어서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당시 전라좌수영에서 성가가 높던평선이라는 관기의 이름을 따서 ‘구운평선’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변해서 군평서니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쯤 되면 여수 사람들이 군평서니를 높이치는 연유를 알 수 있다. 수산학자 정문기도 <한국어도보>에서 “여수 근해에서 잡히는 군평선이가 도미류 중 가장 맛이 좋다”고 확인해준다.
군평서니는 회로도 먹지만 주로 양념장을 발라 구워 먹는데 살은 적어도 맛이 아주 달곰하다. 구이로 먹을 때는 젓가락으로 살을 발라 먹기보다는 손으로 쥐고 뜯어 먹어야 제맛이 난다. 손으로 두 동강 낸 후 살을 대충 훑어 먹고 대가리와 뼈는 물론 내장까지 어적어적 씹어 먹어야 그 담백하면서도 엇구수한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여수의 구백식당은 오래전부터 군평서니구이로 소문이 자자한 집이고 서울에서는 마포의 남해바다에서 그 맛을 볼 수 있다.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