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 첫날이던 2월 9일, 서울 면목동의 한 아파트에서 50대 남성이 이웃사촌인 위층 주민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의 싸움은 지극히 ‘사소한 갈등’에서 비롯됐다. 평소 층간소음 문제로 서로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하필 온 가족이 모인 설 연휴에 그것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고 이해했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불행이지만, 이들에게는 서로의 편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이 부족했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이기심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일지 모른다. ‘불통의 시대’ ‘무한 경쟁의 시대’ ‘피로사회’… 요즘 우리 사회를 일컫는 표현들만 보더라도 각박한 시대상을 알수 있다. 영국 런던정경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투게더>의 저자인 리처드 세넷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협력이 사라진 불안정한 시대”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협력’은 이타심, 관용 등으로 무장한 도덕 개념이 아니다. 그는 ‘협력’을 윤리적 가치로 간주하기보다 실생활에서 쓰는 ‘기술’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 안에 존재하는 협력의 유전자를 “함께 행동하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응답하는 기술”로 개발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투게더>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훑어 ‘협력’의 의미를 살핀다. 중세유럽 상공업자들의 동업 조합인 길드부터 근대 작업장, 현대의 SNS 공간까지 시대별로 변화해온 협력의 개념을 고찰하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함께할 수 있는 ‘협력’의 방법을 제안한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대화의 기술’이다. 이는 곧 ‘잘 듣는 기술’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언어뿐 아니라 동작과 침묵까지 파악하는 기술인 것이다. 저자는 협력은 “타인에 대한 반응 능력”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며, 자기 말만 해대는 ‘귀머거리 대화’에서는 “대화적 대화(대화를 하기 위한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직장, 학교 등 공동체에서 이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조언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또는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서로를 이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저자는 “실용적인 효과를 지닌 일상의 외교술로 협력의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의 말대로 협력이 일상의 외교술로 쓰인다면 생명을 앗아간 ‘층간소음’도 ‘층간소통’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희망’을 발견하는 게 이 책을 읽는 기쁨이자 ‘협력’의 시작이다.
글·백승아 기자
새로 나온 책
숫자의 문화사
하랄트 하르만 지음
알마·13,500원
수를 세는 방식과 상징성은 각 문화권마다 다르다. 어떤 문화에서는 4가 불행을 가져오는 수인데 반해 어떤 문화에서는 13이 불행을 가져오는 수로 인식된다. 저자는 시대별로 언어와 문화에 담긴 숫자의 상징을 살펴본다. 아울러 수를 세는 방법의 다양성과 발전 과정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한 수의 상징성이 흥미롭다.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오스틴 클레온 지음
중앙북스·11,500원
아주 단순한 방법과 적은 노력으로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산해낼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친구·음악·책·영화 등 모든 요소가 아이디어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아티스트인 저자는 “마구잡이로 아이디어의 소재를 수집하기보다 자신의 취향과 선택에 맞게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가 제안하는 10가지 방법은 머릿속에 가라앉은 생각을 아이디어로 되살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삶이 값진 것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월호 지음
마음의 숲·14,000원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저자 월호 스님이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집으로 돌아왔다. 책은 삶의 여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분노·불안·인연·사랑 등의 키워드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죽음’이라는 삶의 마무리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