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수년 전 한 신문사에서 주최한 수필 대회에서 최우수작으로 당선된 작품의 제목이다. 이 공모전의 주제는 한국인의 삶을 대표하는 경험에 대한 글이었다. 시험. 씁쓸하지만 한국인의 삶을 이루는 굵직한 선 하나임은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삶에서도 우리는 계속 정답을 찾게 된다.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는 생각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정답에서 벗어난 가치와 행동에 대해서는 불안함을 느낀다. 심지어 행복에 관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행복의 잣대가 이렇게 획일화될수록 개인이든 사회든 행복을 경험하기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많은 연구결과가 보여준다.
한국인의 행복 잣대는 몇 개로 압축된다. 고등학생들에게는 좋은 대학, 대학생들에게는 좋은 직장, 중년 부모들에게는 그럴듯한 지위와 자식들의 성취가 행복의 기준이다. 그리고 세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으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잃는다. 왠지 ‘행복의 정답’을 맞추지 못한 인생을 사는 듯하여 결국 불행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하지만 행복은 내 자신을 세상에 증명하는 시험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놓고 옳고 그름을 가릴 필요도 없고 순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바로 행복이다. 초록색과 붉은색 중 어떤 색을 좋아하는 것이 더 옳은가를 따지는 것은 우문이다. 내가 초록색이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또 초록색을 좋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서로 존중하는 열린 태도가 행복의 밑거름
초록색이 좋은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듯이 행복하다는 것은 내 삶이 좋다는 느낌이며, 일종의 ‘독백’이다. 옳은 독백도, 틀린 독백도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독백조차도 시비를 가리려고 한다. 그럴듯한 학벌과 재력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독백은 허락되고, 객관적으로 내세울 것 없는 삶을 살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의 착각으로 치부된다.
그러다 보면 남이 인정해줄 만한 ‘옳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 삶의 외형을 갖추는 데 노력한다. 이런 외형적인 조건들은 장기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연구 결론이 지배적인데도 말이다.
높은 경제수준과 좋은 사회복지제도가 행복한 사회의 조건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가장 높은 행복감을 누리는 덴마크의 학자들은 이런 피상적인 것들 때문에 그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행복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은 “각 개인이 가진 다양한 가치와 의견을 그대로 존중하고 중시하는 열린 태도”라고 덴마크 학자들은 거듭 강조한다. 각 개인이 고백하는 각양각색의 행복의 이유와 독백들이 하나같이 모두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사회다.
행복의 정답이 너무 많고 다양해서 결국은 하나의 정답으로 수렴되지 못하는 곳. 행복은 이런 곳에 뿌리를 내린다.
글·서은국(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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