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의 일인데도 잊혀지지 않는 우연한 경험 한 토막이 있다. 과년한 딸과 진해로 벚꽃 구경을 갔을 때다. 만발한 벚꽃의 화사한 꽃 바다는 좋았지만 끝없이 밀려다니는 인파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눈이 시리도록 꽃구경을 하고 나서 부산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마침 퇴근 시간과 겹쳐서 버스 안은 초만원이었고 차가 흔들리면서 심하게 밀려 버티고 서 있기도 어려웠다.
이때 곁에 있던 한 중년 신사가 좀 심하게 밀렸는지 뒤에 있는 여고생으로 보이는 소녀에게 밀지 말라고 다소 짜증스럽게 말했다. 웬만하면 말없이 참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이 소녀가 뜻밖에도 “입장을 좀 바꿔서 생각해보세요”라고 대꾸를 하는 것이었다. 그 중년 신사는 다시 돌아보기만 하고 말이 없었다.
그 장면에서 내가 놀란 것은 소녀의 입에서 나온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는 말 한마디였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더러 하던 말이지만 요즈음은 통 듣지 못한 말을 어린 소녀의 입을 통해 듣게 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 그 소녀도 집안에서 노인들이 하는 말을 유심히 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자기도 모르게 말한 것일 테지만, 곁에서 들은 그 한마디 말이 오랫동안 내 가슴에 충격으로 남아 되새겨보게 했다.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스치고 부딪치고 만나고 어울리는 곳이다. 공자는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타이르면서 “대문밖을 나서서 누구에게나 큰 손님 맞이하듯이 하라”고 하였다.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도 누구에게나 큰 손님처럼 공경하라는 말이다. 말은 쉬워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공경하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남을 배려해주는 아름다운 풍속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자기 생각과 주장에 빠지면 남은 모두 자기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남이 자신을 도구로 삼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항상 부모형제와 이웃과 나라를 생각하며 살도록 가르쳐왔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희생을 치러야하는 일이 많았다. 이제는 그 반대로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풍조가 넘쳐흐르고 있다.
가정에서도 거리에서도 자기 이익을 위해 자기주장만 하며 서로 부딪치고 불화를 일으키는 일이 흔하다. 자기주장에 사로잡히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는 칡덩굴과 등나무처럼 만나기만 하면 서로 부딪쳐 갈등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서로 다른 개체가 만났으니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잠시 자기 생각을 접어두고 한 번이라도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서로의 입장이 이해될 수 있고, 타협과 화합의 통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서(恕)’라는 글자는 ‘같다’는 뜻의 ‘여(如)’ 자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심(心)’ 자가 결합한 글자다.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려 나와 남이 같은 마음을 이루어가는 방법이 바로 ‘서’다.
부모에게 어떻게 해드려야 하는지 알고 싶으면 자식이 자기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지 자기 마음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요, 친구가 자기에게 어떻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면, 자기도 친구에게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저지르는 일이 없을 것이고, 자기 생각과 자기 이익에 빠져 남과 부딪치는 갈등 또한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훨씬 아름답고 조화로울 수 있지 않을까?
글·금장태(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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