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이 목전에 다가오면서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자칫 건강을 잃기 쉬운 여름을 다양한 복달임 음식으로 견뎌냈다. 임자수탕은 그중에서도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음식이다. 임자수탕은 참깨를 임자라고 부른 데서 붙은 이름인데 깻국탕, 백마자탕(白麻子湯)이라고도 한다.
참깨를 닭국물과 함께 갈아 시원하게 냉국으로 즐기는 임자수탕은 궁이나 반가에서 먹던 여름 보양음식이다. 고종의 오순(五旬)잔치를 기록한 1901년의 <진연의궤>에는 임수탕(荏水湯)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있는데 그 요리법을 “영계를 고아서 밭친 찬 국물에 껍질을 벗긴 참깨를 볶아 갈아서 밭친 것을 섞어서 만든다”고 했다. 우리 궁중음식의 특징으로 음식을 상약으로 보는 약선(藥膳)의 개념을 들 수 있는데 임자수탕은 그 전범이라 할 만한 찬선이다.
중국 최고(最古)의 약물학서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깨의 효능을 “허약과 오장을 보하고 기력을 돕는다. 살을 찌우고 두뇌를 좋게 하며, 사기(邪氣)와 풍한(風寒)을 다스린다”고 했다.
우리의 <동의보감(東醫寶鑑)> 역시 깨를 단방보약(單方補藥)으로 들고, 사람의 생명을 기르는 곡식 중 첫 번째로 꼽았으며 “오랫동안 계속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늙지 않으며, 굶어도 배고프지 않고 수명이 연장된다”고 했다. 게다가 깨는 맛까지 뛰어나서 가히 일거양득의 식재료라 할 만하다.
닭도 보신식품으로는 상당한 성가를 자랑한다. 중국 명(明)나라 때의 <본초강목(本草綱目)>은 닭에는 “보양(補陽)하는 성질이 있어 속이 차가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효능을 지닌 참깨와 영계로 만든 임자수탕은 삼복더위에 땀을 많이 흘려 지쳐 있는 사람들의 열을 내려주고, 기혈의 순환을 도와 체력을 보강해준다고 한다. 건강에도 좋지만 담백한 닭고기와 고소한 참깨가 잘 어우러져 맛도 있고 소화도 잘 된다.
아쉬운 것은 임자수탕을 내던 몇 안 되는 서울의 음식점들이 대부분 메뉴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렸다는 사실이다. 사먹기가 힘들다면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된다. 옛날에야 얼음도 귀하고 냉장고도 없었으니 일반 가정에서 해 먹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이야 세상이 어디 그런가.
올여름에는 임금이 먹던 임자수탕을 집에서 즐겨보자 !
1957년에 한희순 등이 저술한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에 자세하게 나와 있는 깻국탕 조리법을 소개한다. 한희순은 조선시대의 마지막 주방상궁으로 고종, 순종의 음식을 담당하였으며 중요 무형문화재 제38호인 조선왕조 궁중음식 1대 기능보유자였다.
“닭을 잡아서 내장을 빼고 물을 붓고 삶는다. 참깨는 타지 않게 잘 볶아 절구에 살짝 찌어서 키에 까불러 껍질을 벗기고 절구나 망에 갈아서 체에 걸러 깻국을 만든다. 닭 삶은 국물에 깻국을 타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차게 식힌다. 소고기는 다져서 봉오리를 만들고 양, 등골, 미나리 등으로는 전유어를 부친다. 달걀은 황백지단을 부친다. 표고버섯도 구형으로 썰어서 참기름에 살짝 볶아 놓는다. 감국잎은 녹말을 씌워서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이상 여러 가지 재료를 같은 크기로 썰어 닭고기(닭 삶은 것을 굵직굵직하게 찢어 쓴다)와 함께 그릇에 담고 차게 식힌 깻국을 붓고 감국잎과 실백을 띄운다. 얼음을 두어 덩어리 깨뜨려서 띄우면 더욱 시원한 맛이 난다.”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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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