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부모는 자녀들의 성공과 행복한 미래를 위해 정성을 다한다. 자녀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하고, 작은 일상의 문제도 다 해결해준다. 아이들은 그저 학교·학원을 오가며 숙제하고 사주는 옷 입고, 먹여주는 음식을 먹으면 된다. 그 결과 자녀들은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실패를 겪으면서 다시 도전해볼 모든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반복적인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다. 자아정체감도 정립할 수 없다. 즉 학습된 무력감은 창의성을 좀먹어 우울한 어른으로 성장케 한다. 불안과 외로움을 극복하려다 파괴적인 수단 방법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삶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통제력을 잃고 지속적인 무력감을 느낄 때 설명하기 힘든 조기사망으로 이어진다는 조사 연구가 있었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한 양로원에 들어온 65세 이상의 여성 55명 중 38명은 스스로, 17명은 갈 곳이 없어 온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17명 중 4주 내에 8명, 10주 후에는 16명이 사망했지만, 38명 중에는 단 한 명만이 사망했다. 통제 상실감이나 ‘무력감’과 같은 심리적인 영향은 사망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창의성 교육이나 조기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들의 욕심과 창의성을 담보한 상혼 때문에, 청소년들이 심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청소년들의 창의성을 오히려 말살시키는 끔직한 오류를 범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 연구소의 부모교육 강사는, 세 딸들을 기쁘게 해줄 생각으로 한여름 귀갓길에 작은 태극선 부채를 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뛰어나온 아이들에게 부채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이들은 아빠가 나누어준 부채를 받아들고 시무룩해졌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태극선에 딸기·바나나·사과 모양의 작은 장식이 달려 있었는데, 셋 다 딸기 달린 부채를 원했다는 것이다.
아빠는 다시 그 밤에 바꿔 올 수 없다며 선물을 고마워할 줄 모르는 그들의 행동을 훈계했다. 아이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부채를 놓고 자기들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빠도 속상해하면서 아이들 방으로 가서 “아빠는 너희들끼리 잘 해결하기를 바란다” 하고 말했다. 아침이 되어 아이들 표정을 보니 모두 “하하호호” 하면서 뜻밖에도 아빠에게 부채선물 감사하다고 하더란다. 어리둥절해서 물었더니, 셋 모두 딸기 달린 태극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빠가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고 물으니, 하루씩 돌려 갖기로 해서 모두 딸기 부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어른들이 문제를 해결해주려 말고 기다릴 것. 둘째, 의사소통의 비난, 훈계와 같은 걸림돌을 쓰지 말 것. 셋째, 공통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것이 채워지도록 부모는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아이들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기다려줄 것 등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엄마에게 잊고 간 책을 가져다달라고 떼쓰는 아들에게, 대학교 다니다 사회경험 쌓으려고 휴학계 내고 인턴으로 입사한 아이에게, 부모·형제가 모두 의사·법조인인데 아이는 요리사·가수·화가가 되겠다는 아이에게, 부모는 허용하고 좋은 관계 유지에만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두 살짜리가 고무신 신으려고 애쓰는 것을 도와주지 않았더니 방구석에 기대서서 신고 마당으로 나갔단다. 이처럼 무력감에 빠지지 않게, 그들의 선택이 실패가 아니라 또 한 번의 학습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부모는 용기 있게 멍석만 깔아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찾고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김인자(서강대 명예교수·한국심리상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