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 65주년을 맞는 올해 7월 17일은 그 어느 해보다도 의미가 크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당선된 198명의 국회의원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대의원이었다. 제헌의회의 최대 임무는 대한민국의 법적 기초가 될 헌법의 제정이었다. 이들은 국회의 조직을 완료하자 바로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해 헌법제정 작업에 착수한다. 작성된 헌법안은 7월 12일 의결되고, 7월 17일 공포돼 즉시 시행됐다.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의 영향을 받은 제헌헌법은 전문(前文)·10장·103조로 구성됐다. 국가 체제로 민주공화국을 천명하고, 국민주권의 원리, 국제평화주의를 규정했다. 평등권과 더불어 다양한 자유권, 노동3권, 사기업에서의 근로자의 이익분배균점권, 생활무능력자의 보호 등 사회적 기본권을 규정했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가 혼합된 형태를 취했다. 국회는 단원제로 했고, 10년 임기의 법관으로 법원을 구성하고, 대법원장은 국회의 승인을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경제 질서는 사회정의 실현을 기본으로 삼고 개인의 경제적 자유는 부차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비록 짧은 기간에 만들어졌지만 제헌헌법은 65년이 지난 지금 봐도 상당히 잘 설계됐다는 느낌이 든다. 이후 9차례의 변화를 겪으면서 현행 헌법에 이르게 되고 마지막 개정 이후 25년이 흘렀다.
모든 규범은 시공(時空)을 초월할 수 없다. 사실 먹는 문제, 즉 ‘보릿고개’가 해결되지 못했던 제헌 당시의 현실은 아무래도 헌법 규범을 따라잡지 못했다. 빵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자유의 문제가 거론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헌헌법은 일부를 제외하고 명목적 헌법에 머물 수 밖에 없었고, 더 높은 곳을 향한 메아리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4·19와 5·16을 거쳐 제3공화국(제5차 개헌)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조국 근대화’라는 구호 아래 빵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다음은 ‘자유’였다. 이 자유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한 것은 6·10 민주항쟁 이후라 할 수 있다. 현행 헌법(제9차 개헌)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자유권적 기본권의 보장은 현행 헌법 하에서 꽃을 피우게 됐다는 뜻이다.
25년이 지난 지금 자유권적 기본권은 사회적 기본권으로 그 형태가 바뀌었다. 최근 자주 거론되는 복지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는 곧 ‘삶의 질’의 문제다. 주택이 없는 사람,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는 거주의 자유나 직업의 자유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자유권적 기본권이 구체제에 대한 시민계급의 정치적 선언을 의미했다면, 사회적 기본권은 20세기 시민사회에서 약자의 생존과 자유에 대한 역사적 선언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유권적 기본권이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라면 사회적 기본권은 인간의 생존과 복지를 위한 개인의 적극적인 요구다. 여기서 ‘사회’에 담긴 권리의 내용은 물질적 급부를 의미한다는 데에서 ‘경제적’이라는 말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국가의 경제력이 곧 헌법의 규범력을 의미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인권의 문제로 귀결된다. 빵의 문제도 인권이고, 자유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기본권 역시 그렇다.
5년 후면 제헌 70주년을 맞는다. 칠순을 앞두고 우리 국민 모두가 헌법이 흘러온 역사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글·심경수(전 한국헌법학회장·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