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만나는 ‘한국의 비무장지대’
1953년 7월 27일, 남북은 6·25전쟁 휴전협정 후 직접적 충돌을 막기 위해 무기와 병력을 배치하지 않는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서해안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 강원 고성에 이르는 248㎞의 군사분계선(휴전선), 여기에서 남북으로 각각 2㎞ 지점에 이르는 공간이 바로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다.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이곳은 DMZ로 지정되면서 중립국 감시단이 지속적인 감시활동을 펼칠 뿐 민간인의 출입은 허락되지 않는다. 70년간 미지의 공간으로 남은 DMZ는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덕에 각종 1급수 어류와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는 세계적인 자연생태계의 보고가 됐다. 이 같은 이유로 남북통일이 되더라도 DMZ를 개발하지 않고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총성이 멈춘 자리에서 탄생한 냉전의 유산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청정구역으로, 한반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보훈처·구글 3년간 5000여 점 자료 모아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구글과 함께 온라인 전시 ‘한국의 비무장지대’를 지난 2월 22일 전 세계에 공개했다. 이번 전시가 마련된 구글 아트앤드컬처는 전 세계 약 80개 이상 국가, 3000여 개 기관이 보유한 문화유산과 예술작품 등을 전시하는 비영리 온라인 플랫폼이다. 국내에선 2018년 국립고궁박물관과 협력한 ‘코리안 헤리티지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시인 김소월과 윤동주, 화가 이응노, 세계자연유산인 제주도와 해녀 공동체 등을 조망하는 전시를 진행했다. 이번 ‘한국의 비무장지대’ 전시는 6·25전쟁 당시의 모습과 DMZ의 자연, DMZ를 주제로 한 예술작품을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전시에는 전쟁기념관, DMZ박물관, 국립생태원, 국립수목원 DMZ자생식물원 등 10여 개 기관과 협력해 제작한 60여 개 분야 5000여 점의 자료가 담겼다. 전시 준비만 3년이 걸렸다는 게 구글 측의 설명이다.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는 ▲역사 ▲자연 ▲예술 등 세 가지 주제를 통해 DMZ를 탐험할 수 있다. 먼저 ‘역사’ 컬렉션에선 6·25전쟁과 관련된 국가기록물이 역대 최대 규모로 공개됐다. 6·25전쟁의 주요 장면과 휴전협정의 순간들이 방대한 자료를 통해 시간을 거슬러 펼쳐진다. 또 강원 철원 노동당사와 경기 포천 방어벙커 등 DMZ 인근에 위치한 문화유산과 임시수도 부산에 남겨진 6·25전쟁의 흔적도 더듬어볼 수 있다. 한국군과 6·25전쟁에 참전한 22개국의 외국군 모습은 물론 피난민 등 민중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작전명령서, 경찰 기밀문서 등 모든 사진은 자세한 설명과 함께 게재돼 전시해설사(도슨트)의 이야기를 듣듯 70년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6·25전쟁 중 머리에 총탄을 맞은 고 이학수 참전용사가 치료를 받으며 쓴 병상일기도 눈길을 끈다. 병상일기에는 그가 경험한 전쟁의 비극부터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에 대한 기억, 휴전협정에 대한 생각 등이 담겼다. 이학수 용사는 머리에 박힌 총탄을 끝내 빼내지 못한 채 2005년 숨을 거뒀다. 그의 후손 이병기 씨는 2월 2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어메이징70, 구글 아트앤드컬처 DMZ 글로벌 론칭·헌정 행사’에 참석해 “아버지는 다리 부상을 입은 동료의 다리가 되고 그 동료는 아버지의 눈이 돼 필사적인 귀환을 했다”면서 “아버지는 병상일기를 쓰며 고통의 시간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전했다.
멸종위기 ‘수달’부터 한탄강 ‘바람 소리’까지 담아
‘자연’ 컬렉션에서는 6100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야생 동·식물의 천국 DMZ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한반도에만 분포하는 특산식물인 매자나무와 금강꽃초롱,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인 비로용담 등 낯설지만 아름다운 풀꽃들이 시야를 정화시켜준다. 또 남북을 관통하는 하천을 자유롭게 오가는 수달과 산양, 참수리 등 어디서도 보기 힘든 세계적 멸종위기종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구글은 “우리나라의 동·식물 멸종위기종 267개 중 38%가 DMZ에 서식한다”고 밝혔다.
구글은 수십억 개의 파노라마 사진을 결합해 현장의 모습을 가상으로 표현한 ‘스트리트 뷰’ 기술로 DMZ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 그 덕에 온라인 방문객들은 대한민국 1호 람사르습지 용늪, 6·25전쟁의 격전지이자 독특한 해안분지 지형으로 유명한 펀치볼(강원 양구군 해안면 일대), 세계적인 두루미 도래지인 한탄강 등을 직접 걷는 것처럼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을 살펴보는 동안 들려오는 바람과 강물 소리 등은 더욱 현실감을 높인다. 이 역시 실제 현장의 소리다. 전시를 총괄한 사이먼 레인 구글 시니어 프로그램 매니저는 “큰 장비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많아 배낭에 설치한 카메라로 360도 촬영을 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그는 “현장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도록 한 건 이번 전시가 처음”이라면서 “한국의 DMZ를 전 세계인 누구나 경험해볼 수 있도록 여러 해에 걸쳐 노력했다”고 밝혔다.
‘예술’ 컬렉션에선 DMZ를 주제로 한 예술작품 세계로의 여행이 기다린다. 백남준, 승효상, 이불 등 유명 미술작가와 건축가가 표현한 공간의 모습을 통해 DMZ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특히 전시에서는 김선정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아 2019년 문화역서울284에서 진행한 ‘리얼디엠지프로젝트’ 섹션이 따로 마련돼 관련 작품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전방 감시소초(GP) 철수 후 나온 철조망 등을 이용하거나 DMZ 자생식물을 주제로 한 것 등 여느 전시에서는 보기 힘든 소재와 주제가 담겼다. 김 감독은 “냉전의 산물인 DMZ가 정치적·사회적·정서적으로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뉴스나 영화 등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DMZ의 모습이 아닌 실제 DMZ의 상황과 미래 가능성을 현대미술로 풀어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의 비무장지대’ 온라인 전시는 구글 아트앤드컬처 누리집(goo.gle/koreadmz)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누구나 감상할 수 있다. 보훈처와 구글은 앞으로 22개 6·25전쟁 참전국 크리에이터(창작자)와 협력해 정전 70주년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구글 DMZ 아카이브(기록 보관)를 통해 전 세계인이 6·25전쟁의 역사와 DMZ의 자연을 체험하면서 정전 70주년의 의미와 참전영웅들의 숭고한 인류애를 되새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조윤 기자
박스기사
비무장지대(DMZ) Q&A
비무장지대는 무엇인가?
DMZ(Demilitarized Zone)는 군사적 비무장지대를 뜻하는 것으로 국가 간 일정 간격을 유지하도록 한 완충지대다. 이곳에선 군대 주둔이나 무기 배치, 군사시설 설치가 금지된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는 언제, 왜 만들어졌나?
1953년 7월 27일 6·25전쟁 정전협정에 의한 것으로 휴전에 따른 군사적 직접 충돌을 방지하고 잠정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디에 있으며 크기는 얼마나 되나?
DMZ는 한반도의 허리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른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를 지정해 총 4㎞의 공간을 두고 있다. DMZ는 한반도 전체 면적인 22만㎢의 250분의 1에 달하는 총 907㎢로 서울 면적의 1.5배다. DMZ 길이는 서해의 임진강 하구에서부터 동해의 강원 고성에 이르기까지 약 248㎞에 달한다. 이는 서울에서 대구까지 직선거리인 238㎞보다도 길다.
38선, 군사분계선, 접경지역의 의미는?
38선은 일제가 패망한 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기 위해 북위 38도에 그은 분할 점령선이다. 군사분계선은 일명 휴전선으로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당시 남북 점령지를 기준으로 한 경계선이다. 군사분계선이 생긴 뒤엔 남북 간 왕래가 불가능해졌다. 남방·북방한계선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를 지정해 설정한 것이다. 접경지역은 DMZ 또는 해상 북방한계선과 맞닿아 있는 시·군과 민간인통제구역(휴전선 남쪽 5~20㎞ 구간) 이남 지역에 속하는 15개 시·군을 말한다.
비무장지대 안에 들어갈 수 있나?
군사분계선 남쪽 5~20㎞의 통제구역에서는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예외적으로 통일전망대, 판문점, DMZ박물관 등은 민간인 통제구역 내에 있음에도 출입신청서 등을 작성하고 관할 부대의 승인을 받으면 출입할 수 있다.
비무장지대는 한반도에만 있나?
유럽의 대표적 분단국인 키프로스와 에게해제도, 올란도제도 등 다수의 비무장지대가 있다. 아프리카의 수단·남수단도 비무장지대를 두고 분단됐다. 남북한의 경우 냉전 이후 이념 갈등으로 분단된 국가라는 점,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의 DMZ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자료 구글 아트앤드컬처 ‘한국의 비무장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