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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거진천(生居鎭川)’. 사람 사는 데 진천만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진천사람들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이 말은 보통 진천을 말할 때 ‘캐치프레이즈’처럼 사용된다.
왜 사람 살기에 좋다는 것일까? 진천의 지세를 둘러보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진천은 차령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싼 분지다. 여기에 미호천이 평야를 가르고 흐른다. 쉽게 말해 땅이 좋고 물이 좋다. 땅이 좋고 물이 좋으니 토지가 비옥할 수밖에 없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산물이 풍부하다 보니 인심 또한 넘쳐날 만하다.
이 지역 향토지에는 1930년대 진천을 ‘6만 섬이 넘는 쌀이 나온 곡향(穀鄕)’으로 적고 있다. 단보당 쌀 생산량이 전국 최고를 기록할 만큼 땅이 비옥하다. 그래서 진천쌀은 예부터 전국적 지명도가 있었고, 최근에는 ‘생거진천쌀’이라는 상표를 붙이고 우리 밥상에 오르고 있다.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이런 진천에 10여 년 전부터 새로운 특산물이 등장했다. 아직 일반에게는 생소한 관상어다. 진천과 관상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이 지금은 썩 잘 어울리는 합성어처럼 들리지만, 그 명성은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관상어로 꼽히는 비단잉어 명품화사업은 진천군의 새로운 특화사업으로 자리잡았다.
이 사업 또한 진천의 좋은 토양, 좋은 물과 무관하지 않다. 진천 관상어는 2002년 산업자원부로부터 ‘세계 일류 100대 상품’으로 선정되면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현재 청와대 안의 5개 연못에서 노니는 250여 마리의 비단잉어도 진천산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최고 관상어 산지로 자리잡은 진천군에 관상어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누구일까? 거기에는 한 사람의 열정이 숨어 있다. 진천 관상어 양식의 원조로 통하는 방약수(62) 씨. 방씨는 1970년대 초부터 부업 삼아 비단잉어를 기르다 양식 기술을 접목했다. 국내에 비단잉어가 들어온 것은 그보다 앞서지만, 비단잉어 양식은 그로부터 출발한 셈이다.
그는 당시 사재를 털어 비단잉어 종어(種魚)를 들여온 뒤 일본을 수차례 오가면서 독학으로 양식 기술을 터득했다. 그런 그가 1980년대 관상어 양식을 본업으로 삼은 데 이어 1990년 초부터 진천 농민들에게 본격적으로 양식 기술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B]1970년대 일본에서 비단잉어 종어 도입[/B]
진천군의 관상어 명품화사업을 앞장서 추진해온 김경회 군수의 설명.
“1990년 당시 방약수 씨의 관상어 양식 기술을 지역특화사업으로 키우기 위해 군에서 그 분에게 기술지도자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지요. 군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고요.”
그로 인해 1991년 진천관상어협의회가 조직됐고, 1994년에는 영농조합법인 진천관상어로 법인화됐다. 10여 명으로 출발한 조합원도 35명을 넘어서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1996년에는 관상어의 어병 예방과 치료, 양어 기술 향상을 위해 충북 관상어명예연구소로 지정돼 관상어 애호가와 사육자들의 현장견학과 연수 코스로도 각광받았다.
하지만 한동안 잘나가던 진천 관상어사업은 1997년과 1998년 잇따라 악재를 맞았다. 외환위기로 타격을 받은 데다 1998년에는 대부분 양식어가에 바이러스가 돌아 한 마리에 1,000만 원을 호가하던 종어들마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 사고로 상당수 농민이 관상어 양식을 포기했지만 몇몇 조합원은 빚을 지면서까지 다시 일본에서 종어를 들여와 명맥을 이었다.
진천관상어는 1992년 미국에 비단잉어 300마리를 처녀 수출한 데 이어 매년 수출량을 늘려 지난해 9월까지 총 29억1,200만 원의 수출고를 기록했다. 세계 비단잉어 시장의 규모를 30억 달러로 추산할 때 이 같은 수출액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김경회 진천군수는 진천관상어의 가능성과 미래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양식 기술력을 꾸준히 키운 덕분에 진천관상어는 국제적으로도 그 품질을 공인받고 있어요. 색상이나 건강에서 비단잉어의 원류인 일본에 대해서도 경쟁력을 갖춰 국제 품평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거든요. 하지만 국내 사육량에 비해 외국 바이어들의 주문량이 너무 많아 양식어민들이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덕분에 진천관상어 영농조합 대표를 맡고 있는 허화영 씨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최근 네덜란드·미국을 잇따라 방문한 데 이어 신규 관상어단지 조성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늘어나는 수출물량을 대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이와 함께 효과적인 관상어 운송을 위해 인천공항과 가까운 경기도 일산에 관상어 연구실과 함께 별도로 본사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진천관상어는 아직 세계시장 접근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시장의 90% 이상을 휩쓰는 일본의 관상어들이 최근 흔들리고 있습니다. 생산어가의 노령화와 젊은 세대의 관상어 사육 기피로 조건이 좋지 않거든요. 이러한 틈새를 적극적으로 공략해 나갈 생각입니다.”
허 대표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국내에 신규 관상어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해외 바이어들이 대부분 다양한 어종에 많은 관상어를 장기간 조달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국내 양식단지가 워낙 협소해 주문량을 대지 못해 낭패를 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B]‘농지법’이 신규 관상어단지 조성의 걸림돌[/B]
“일본은 비단잉어 한 종으로 연 20조 원을 벌어들입니다. 정책당국의 지원과 행정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일본에서는 보통 방죽이나 저수지 등을 양식어가에 무료로 제공하고 대단위 양어장 타운을 형성할 수 있도록 혜택을 주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릅니다.”
허 대표는 우리 관상어가 수출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육기반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대규모 생산단지 조성을 막고 있는 ‘농지법’의 농지전용제한 규정과 농지전용부담금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천군이 물과 토양이라는 좋은 환경을 이용해 관상어 명품사업을 벌여 나가기 위해서는 늘어나는 휴경답을 활용한 대규모 관상어 생산기지 조성이 시급합니다. 진천관상어 사육기반 확대를 위해서는 지역특화발전특구 지정을 통해 농지법에 따른 여러 규제가 풀려야 합니다.”
김경회 군수는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 생산기지 조성과 함께 테마관광산업을 연계한 비전도 그리고 있다. 한때 쌀농사로 이름을 날렸던 생거진천의 평야지대에 수많은 노지양어장이 들어서고 수백, 수천만 마리의 비단잉어가 노니는 날을 위하여. [RIGHT]김홍균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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