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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노장’(老莊)으로 한 묶음 처리되는 노자와 장자는 알고 보면 이미지가 꽤 구분된다. 노자가 근엄한 현자(賢者) 노인이라면 장자는 유머 감각을 자랑하는 이야기꾼이다. 18세기 조선조 사회의 두 천재인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도 그런 구분이 가능하다. 다산? 그는 생김새부터 근엄하다. 문장도 사람을 닮았다. 꼬장꼬장한 이론가 타입의 그는 ‘단도직입의 견결한 기상’이 특징이다.
그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에서 고전평론가 고미숙 씨가 던졌던 말이다. 반면 연암은 ‘힘과 에너지의 태양인(太陽人)’. 우람한 체구, 매서운 눈매를 바탕으로 순발력 있는 문장을 구사한다. 그 연암이 최근 꽤 떴다. 2000년대의 우리에게까지 적지않이 살갑게 느껴진다. 앞에 언급한 고미숙의 책 때문이다. 지난 1년여 새 5만여 권이 팔려 인문서로는 이례적인 성공을 기록한 것으로 안다.
그 덕에 내 주위 상당수 사람이 그 책을 읽었다. 곰팡내 나는 한문 고전을 우리 시대의 매력적 읽을거리로 만들어준 것은 전에 없던 사태다. 한문학자가 아닌 고전평론가를 자처하는 40대가 그 작업을 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학고재)는 연암의 산문 선집. 1997년 초판이 나왔고, 출간 이후 꾸준히 읽히며 사랑받고 있다. 이유는 그만큼 안정된 번역 때문일 것이다.
영남대 김혈조 교수의 우리말 번역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한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한글 구사는 영 매끄럽지 않다는 통념을 깨고 있다. 그러나 약간은 얌전한 번역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 ‘소소(笑笑)선생’, 요즘 말로 개그맨이라고 밝힌 바 있는 연암의 파격적 성격이 무뎌진 쪽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열하일기>를 포함해 <북학의> <답응지서> 등에서 가려 뽑은 이 책을 통해 18세기 조선조 중세사회를 그토록 답답해 했던 그의 몸짓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에서도 자신을 ‘삼류선비’(135쪽)라고 밝히며 배 째라는 식으로 제도권 질서에 대든다. 흔히 북학파로 분류되는 연암이 살았던 시대는 시대착오적인 모화(慕華)사상이 우심하던 때. 즉 만주족 청나라를 우습게 보면서 멸망한 명나라의 그림자인 예(禮)를 뒤쫓던 시기다. 연암이 그런 옹졸한 세계관을 비웃는 모습이 책 곳곳에서 눈에 띈다.
“중국 고유의 좋은 법과 제도마저 배척한다면 장차 어느 나라를 본받을 것인가”(119쪽)라고 묻는 모습 말이다. 그런 대목은 지금 세계화의 시대 연암이 살았다면 적극적인 세계시민이 아니었을까 가늠되는 대목이다. 이 책에는 그러나 친구들과의 교유나 당시 사대부들의 일반 교양 등도 적지않게 등장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옛 시대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왜 연암이 고루하고 장황한 문장 대신 이른바 소품 문장에서 빛났던가도 조금은 짐작된다. 그런 자신의 촌철살인식 문장, 특히 정조와 갈등을 빚었던 문체(文體)를 둘러싼 논쟁의 와중에 자신의 글에 대한 옹호의 목소리도 실려 있어 흥미롭다.
조우석은 <문화일보>를 거쳐 <중앙일보> 입사 후 ‘북섹션’을 담당했다.
특유의 맛깔스러운 글쓰기로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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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