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
코로나19는 거의 모든 분야에 충격을 주고 있는데, 특히 음악에서는 음악 산업의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실 2010년대 음악 산업에서 핵심어는 ‘디지털’이었고 그에 대해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덕분에 그것이 일종의 오해였다는 게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오프라인 기반의 사업이었다. 디지털 음원이 주류가 되었다곤 해도 실제로 수익이 발생하는 건 콘서트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음악이 오프라인에서 이벤트를 만들지 못할 때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확인시켰다.
덕분에 가상공간이 새삼 중요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실시간 재생(스트리밍)과 라이브 콘서트, 지식재산권(IP)을 확장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 등이 최근 몇 달 사이 큰 주목을 받은 것도 같은 이유다. 그중 SM엔터테인먼트가 발표한 신인 걸 그룹 에스파(aespa)는 아마도 가장 신선하고 이상한 방식일 것이다.
실제 멤버들에게 가상 아바타(가상현실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캐릭터)가 연결되는 방식으로,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상호 작용하며 연결되는 활동을 벌인다. 현실 세계에는 실제 아티스트가 존재하고, 가상 세계에는 그들의 아바타가 존재한다. 이 둘은 현실과 가상의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에서 소통하고 교감하며 성장해간다는 설정이다. 아티스트와 아바타는 서로 다른 존재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대화하고 조력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데뷔에 맞춘 이벤트나 단기적인 콘셉트가 아니라 팀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세계관이다.
음악이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만들려면
코로나19 이후의 음악 산업에 대한 여러 쟁점이 있다. 그중 온라인 콘서트에 대한 관심은 사실상 오프라인의 활동 없이 음악이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입장은 두 방향이다. 하나는 음악이란 아티스트와 팬의 유대감을 근간으로 지속되는 사업인데 온라인은 그 거리감을 없애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입장. 다른 하나는 음악 자체의 수익 모델이 흐릿해지는 상황에서 온라인 콘서트는 아티스트의 지식재산권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입장. 두 입장 모두 의미 있는 지적이고, 앞으로 비전을 만들어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관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앞으로는 ‘음악’만으로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는 입장을 공유한다. SM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도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다. 사실 SM은 지난 20여 년간 테크놀로지와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을 주장해왔다. H.O.T. 시절부터 지식재산권을 확장하려는 시도도 다방면으로 넓혔다.
실제로 2010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개봉했을 때 SM엔터테인먼트와 삼성전자는 아바타 세계관을 실제 세계의 엔터테인먼트에 접목한다는 협약을 맺기도 했고, 2017년에는 미국 인공지능 전문 기업 오벤(ObEN)과 공동 투자해 홍콩에 ‘AI 스타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SKT와 아이리버(현재의 드림어스컴퍼니)에 공동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고, 한국에서 가장 진보한 인공지능 챗봇을 만드는 스타트업 스캐터랩과도 협업을 진행했다. 드림어스는 현재 SM, JYP, 빅히트 음원·음반의 독점 유통권을 가지고 음악 서비스 ‘플로’, 고음질 하드웨어 브랜드 ‘아스텔앤컨(Astell&Kern)’, 그리고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의 소프트웨어를 운영하는 회사다.
▶K/DA
스토리텔링 콘텐츠가 음악 표현의 필수 요소
에스파는 바로 이런 협약과 협업이 구체화된 사례로 일단 높은 관심을 얻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된 제1회 세계문화산업포럼(WCIF)에 이수만 회장이 참석해 ‘코로나19 이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와 컬처 유니버스(Culture Universe)’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했다. 여기서 그는 “미래는 셀러브리티(유명 인사나 연예인)와 로봇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미래 엔터테인먼트 세상의 핵심 가치이자 비전으로 SMCU(SM CULTURE UNIVERSE)의 첫 번째 프로젝트 에스파를 선보인다”고 선언하며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에스파의 등장이 이벤트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세계관이 아닌 스토리텔링 콘텐츠(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가 콘텐츠를 매개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가 아티스트와 음악을 표현하는 필수 요소이자 성공의 열쇠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지식재산권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인공지능이 실제 스타를 대체하거나 공존한다는 콘셉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비주얼 아트나 콘셉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의 K/DA와 비교하는 입장이 큰데, 이 사례는 게임 캐릭터와 음악 엔터테인먼트의 결합과 콘서트에서 가상현실과 실제 세계의 접점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공지능이 적용된 사례는 아니지만 2018년에 이미 뮤직비디오와 콘서트로 대중에게 충격을 안겨준 뒤 현재에도 활동 중이라는 것이 비교 이유가 된다.
음악의 미래, 혹은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이 대중문화를 매개로 인간과 인간의 교감·공감에 있다는 입장이 인공지능이나 비주얼 테크놀로지로도 확장될 수 있을까. 당장 답하기엔 어려운 문제다. 앞으로 꽤 다양한 사례의 관찰과 경험이 필요할 것 같지만 일단 음악, 그중에서도 K-팝 산업이 미래 혁신의 선두에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