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한여름의 폭염이 숨막힐 듯 이글거리는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콘도 앞. 도로변에는 금강산으로 떠날 채비를 마친 관광버스 예닐곱 대가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각 버스 안에는 부푼 가슴에 설레는 마음으로 금강산 관광길에 나선 관광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현대아산 금강산관광팀 나은정(23) 안내조장은 그중 버스 한 대에 냉큼 올라선다. 그리고 이내 마이크를 잡는다.
“행여 휴대전화를 가지고 (북한땅에) 들어가셨다 딱 걸리면 통일이 돼야 찾을 수 있다 말입네다. 고조 아셨드래요?”
나 조장의 장난기 어린 북한 사투리에 다소 긴장감이 돌던 버스는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된다.
한 갈래로 질끈 야무지게 묶은 머리, 조금은 쉰 듯한 목소리,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얼굴, 하얗게 부르튼 입술…. 그는 한눈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는 서글서글한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금강산을 찾는 모든 분이 유쾌하고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늘 웃음과 재미를 드리고 싶어요. 빼어나게 아름다운 금강산 풍경에 감동하더라도 여행 중에 불쾌한 일을 겪으면 마음이 상하잖아요?”
동원대 관광과 졸업반 때인 2004년, 현대아산에서 했던 한 달간의 관광 안내 실습이 인연이 돼 그해 9월 금강산 관광팀을 아예 첫 직장으로 선택했다. 그게 벌써 1년여. 그는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금강산에 대해서 만큼은 ‘전문가 수준’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남북 경협이 급진전하면서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고 방학 성수기와 겹쳐서인지 요즘 들어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하루 들고나던 관광객이 2,000명 수준이었지만, 요즘은 하루 4,000명에 육박할 정도라고 귀띔한다. 주로 여름방학을 맞은 초·중·고교생, 공무원, 직장인, 휴가철을 맞은 가족 단위 관광객 등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지난 7월1일 금강산해수욕장이 개방되면서 등산과 해수욕을 겸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은 젊은이들 사이에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B]피서철 성수기로 강행군, 그래도 웃음 잃지 않아[/B]
나 조장은 지난 7월20일만 해도 2박3일 일정으로 27개 학생 야영팀 1,066명을 인솔해 금강산에 다녀왔다. 이 일정에 투입된 조장만 14명. 조장 1명당 80명에서 많게는 120명의 학생을 감당해야 한다. 더구나 학생들은 잠시 시선만 떼도 금방 사고를 치는 장난꾸러기들이어서 금강산 관광 안내조장 일은 힘이 배로 든다. 어른들도 관광 규칙이나 약속을 어기고 협조를 잘 해주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그럴 때는 진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나 조장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피서철인 요즘에는 거의 매일 들어오는 학교·단체팀 때문에 1박2일, 2박3일 일정을 1주일이면 2개 이상 진행해야 한다. 정기 휴가도 없이 일정 사이사이 하루 정도 직원숙소에서 쉬고 나면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강행군을 계속한다. 보통사람이라면 한 번 다녀오기도 어려운 금강산 꼭대기까지 사흘이 멀다 하고 오르내리는 바람에 관광팀 조장들은 관절염을 달고 산다고 한다.
서울 토박이인 그가 가족·친구들을 보지 못한 지도 벌써 여러 달째. 그도 사람인지라 때때로 외로움과 그리움이 솟구친다. 아마도 여름 성수기가 끝나야 겨우 집에 들를 수 있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면서도 나 조장은 아무리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웃음은 잃지 말자는 자신만의 원칙을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
“화를 내고 얼굴을 찡그리면 저야 기분이 풀릴 수 있겠죠. 하지만 만약 관광객들이 ‘조장이 불친절하더라. 다시는 금강산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 회사 이미지뿐만 아니라 남북 교류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거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 모습 하나하나가 남과 북 사람들에게 그대로 비치잖아요? 저뿐 아니라 동료들도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어요.”
그런 그의 마음이 통해서일까? 관광객들 사이에서 나 조장의 인기는 여느 스타 못지않다. 관광객들이 지어준 별명도 여러 개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낳은정 키운정 기른정’ ‘내조장’ 심지어 ‘며느리’로 불리기도 한다. 그를 보러 두세 번씩 금강산을 다시 찾는 열혈 어르신도 있단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반면 초·중·고등학생들에게는 ‘나댕’ ‘나대빵’으로 불린다. 최근에는 ‘삼순이’ 열풍을 타고 ‘삼순이 조장’이라는 별명도 하나 늘었다며 싱긋 웃는다. 그러고 보니 생김새, 말투, 웃는 모습까지 영락없는 드라마 속 삼순이다.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누나·언니가 되어주고 싶다는 나 조장. 그래서인지 그의 미니홈피에는 안부 인사와 진로 상담까지 금강산 관광을 함께 했던 아이들의 글이 넘쳐난다. 그는 쉬는 짬짬이 그런 아이들에게 꼬박꼬박 답장도 해준다.
“처음 북측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사람들을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긴장하고 무서워하더라고요. 저는 일부러 아이들에게 북측 사람들을 만나면 큰소리로 먼저 인사를 건네라고 해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동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아이들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아무리 개구쟁이라도 돌아갈 때는 ‘통일될 때까지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기특하고 대견하죠.”
[B]넉살 좋은 입담으로 인기, 남북 경계 허물어[/B]
한편 북측 환경관리원들 사이에서 그는 “대한민국 국회가 공인한 나구라 조장”으로 통한다. 그의 넉살 좋은 입담은 남북 간 경계도 훌쩍 뛰어넘은 모양이다. 그는 1년여 금강산에서 동고동락한 북측 관계자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삼촌’이라고 부르게 된 한 북측 환경관리원에게 무좀 방지용 발가락양말을 선물한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미소를 짓게 하는 추억이 되었다.
“선물을 드린 며칠 뒤 그분이 고마웠던지 ‘야야, 나 조장! 이리 좀 와보라우’ 하면서 내 앞에서 손을 쫙 펴보이지 않겠어요? ‘남측 장갑은 원래 이렇게 손가락이 짧나?’ 하는 순간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현장에서 여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북측 사람들에게 음식물을 같이 먹자고 조르는 분, ‘일 없습네다(괜찮습니다라는 뜻)’라는 말에 화를 내시는 분, 검문하는 북측 군인의 허벅지를 만지거나 장난으로 우리 욕설을 가르쳐준다든지, 심지어 금강산 계곡물에 손발을 씻는 분도 있어요. 금강산 물을 그대로 받아 식수로 쓰는 북측 사람들도 생각해야죠.”
조만간 개성과 백두산 관광길이 열리면 꼭 그곳으로 달려가 남과 북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안내자가 되고 싶다는 나은정 조장.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플 수 있지만, 아름다운 금강산 사계절을 모두 봤으니 이제는 백두산 사계절을 보고 싶어요. 그러고 나면 서울에서 개성까지 출퇴근할 수 있겠죠? 그날이 너무 기다려져요.
[RIGHT]주진 객원기자[/RIGHT]
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