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설립한 덱스터 스튜디오는 K-VFX의 개척자다.| 덱스터스튜디오
세계로 뻗는 K-콘텐츠
우리나라의 시각특수효과(Visual Effects, VFX) 기업들이 할리우드 등 해외시장에 진출하며 K-콘텐츠의 전진기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선두 주자는 K-VFX의 개척자인 덱스터스튜디오다.
덱스터스튜디오는 영화 <나이츠 오브 더 조디악(Knights of the Zodiac)>의 VFX 콘텐츠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최근 밝혔다. 계약액은 약 46억 3838만 원이다. <나이츠 오브 더 조디악>은 1985년 쿠루마다 마사미가 그린 인기 만화 <세인트 세이야>를 실사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 만화는 발매 이후 35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1980년대 후반에는 텔레비전과 극장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할리우드 리포터> 등 외신은 도에이 애니메이션과 소니 픽처스가 최근 이 영화의 실사 촬영을 끝마치고 올해 안에 전 세계에 배급한다고 보도했다. 연출은 넷플릭스 시리즈 <위처>의 프로듀서 토마스 바긴스키 감독이 맡았다. 영화 <퍼시픽 림: 업라이징>에 출연한 일본 배우 아라타 마켄유를 필두로 매디슨 아이스먼, 디에고 티노코, 마크 다카스코스, 닉 스탈, 팜케 얀센, 숀 빈 등이 출연한다.

▶2021년 11월 문을 연 덱스터스튜디오의 버추얼 스튜디오 ‘D1’ | 덱스터스튜디오
K-VFX 기술력 세계에 증명하는 기회
덱스터스튜디오는 <나이츠 오브 더 조디악> 참여를 계기로 해외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연내 세계적 업체들과 추가 동반관계(파트너십)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해 해외 물량을 지속적으로 수주할 계획이다. 김욱 덱스터스튜디오 대표는 “K-콘텐츠가 주목받으면서 국내 VFX 시장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번 <나이츠 오브 더 조디악> VFX 제작 참여는 그동안 다져온 덱스터스튜디오와 K-VFX 기술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11년 설립한 덱스터스튜디오는 2013년 개봉한 영화 <미스터 고>에서 야구하는 고릴라의 휘날리는 털과 표정, 역동적 몸짓까지 완벽하게 구현했다. 가슴털과 머리털의 다른 질감과 움직임을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2년 동안 매진한 결과였다. 수천만 개의 점을 화면에 찍은 다음 바람과 중력, 물성 등을 컴퓨터 기술로 입혔다. 고릴라가 움직이면 털들이 각자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관계성을 만들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우리나라 VFX 기술력만으로 영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남겼고 그때 개발한 독자적 노하우와 기술이 다른 영화를 제작할 때 자양분이 됐다.
진종현 덱스터스튜디오 VFX 슈퍼바이저는 “우리 회사의 창립 작품인 <미스터 고> 작업 당시 구현한 디지털 캐릭터, 자연환경, 물 시뮬레이션 등은 쉽게 접근하기 힘든 기술이라 내부 소프트웨어를 설계해 진행해야만 했다. 그런 기술력은 당시엔 국내에서 유일한 정도였다”며 “<미스터 고>를 통해 우리의 기술적 능력을 해외에 처음 알리면서 디지털 캐릭터에 대한 솔루션을 인정받아 다수의 중국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덱스터스튜디오는 영화 <미스터 고>에서 야구하는 고릴라의 털과 표정, 역동적 몸짓까지 완벽하게 구현했다. VFX 전(위)과 후 | 쇼박스·덱스터스튜디오
전화위복이 된 ‘한한령’… OTT로 날개 달아
덱스터스튜디오는 <몽키킹> 시리즈와 <지취위호산>, <서유기>, <쿵푸 요가>, <유랑지구> 등 중국의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VFX 효과를 맡으며 우리 VFX 기업의 위상을 높였다. 이들 영화는 북경국제영화제, 대만 금마장, 홍콩 금상장, 창춘영화제 등 아시아 주요 영화제에서 시각효과상과 특수효과상을 받았다. 매출의 70% 이상이 수출에서 발생할 정도였다.
진종현 슈퍼바이저는 “자연환경과 물 시뮬레이션 등은 덱스터스튜디오의 내부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할리우드에서만 가능했던 기술을 자체 파이프라인(3차원 제작 공정 솔루션)으로 체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업체로 알려지게 됐고 해외 업체들의 신뢰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2016년 7월 우리나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확정된 뒤 시작된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에 국내 VFX 업체들도 직접적 타격을 받았다. 저가 수주 경쟁에 어려움을 겪던 VFX 기업들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라는 새로운 매체가 출현하면서 재도약기를 맞았다.
업계 관계자는 “한한령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중국 당국의 규제도 규제지만 코로나19로 중국에서 대형 영화 제작이 줄어들었다. 우리 업체들이 중국만 보고 일했으면 무척 어려웠을 텐데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공상과학(SF) 장르와 히어로물은 할리우드의 전유물로 통했다. 그러나 영화 <승리호>로 반응이 달라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SF 영화 <승리호>는 10개 정도의 국내 VFX 회사가 모여 협업한 첫 사례다. 덱스터스튜디오는 <승리호>의 전체 VFX 분량 약 2000컷 가운데 70%인 1304컷을 담당했다. 원래 27억 원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을 맡았는데 점점 늘어나 최종적으로는 40억 원 규모를 작업했다.
진종현 슈퍼바이저는 “영화 <승리호>와 <신과 함께> 시리즈 등이 해외에 소개되면서 해외 전문가들로부터 ‘할리우드 수준에 뒤지지 않는 품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작비가 할리우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상황에서 양질의 VFX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도 놀라워한다. 덱스터스튜디오는 오랜 시간 제작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효율성 또한 덱스터스튜디오만의 기술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2020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영화 <승리호>는 국내 최초의 우주 공상과학(SF) 영화다. VF X 전(위)과 후 | 넷플릭스·덱스터스튜디오
<승리호> 경험 바탕 SF·히어로물 도전
덱스터스튜디오는 김용화 감독의 신작 우주 SF영화 <더 문>에서 또 한 번 광활한 우주를 VFX로 표현할 예정이다. 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더 문>에서는 우리 영화 사상 최초로 달을 그려낸다. <승리호>의 경험을 바탕으로 달의 표현, 중력에 따른 움직임 등을 한층 섬세하게 구현할 계획이다.
진종현 슈퍼바이저는 “<미스터 고>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축적한 캐릭터 디자인 노하우와 디지털 샷 구성 라이브러리 덕분에 빠르게 제작이 가능해졌고 작품 수준 역시 많은 발전이 있었다”며 “이 모든 과정을 통제하고 빠르게 설계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 시스템 또한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했고 이 모든 것이 덱스터스튜디오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덱스터스튜디오는 마블스튜디오가 만든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와 같은 히어로물에도 새롭게 도전한다. 이두호 화백의 만화 <머털도사>를 메가박스와 함께 실사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하기로 했다. 한국형 히어로물로 원작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머털이와 누덕도사의 활약상을 그린다. 덱스터스튜디오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영화 공동 제작과 영화·드라마의 VFX, 색 보정(DI), 음향 보정 등 후반 작업 전반을 책임진다.
김욱 대표는 “<머털도사>를 탄탄한 스토리와 세계관 확장, 자사만의 기술력을 더해 원작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히어로물로 만들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콘텐츠 발굴과 기획 역량을 강화해 OTT,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넷플릭스
가성비 훨씬 뛰어난 K-VFX에
해외 유수 제작사 “함께 하자”
영화 <승리호>,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지옥> 등이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K-VFX의 높은 기술력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승리호>의 총 제작비는 240억 원 정도다. 할리우드 10분의 1 수준의 제작비로 화려한 VFX를 선보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 VFX업계의 임금 수준은 할리우드와 비교해 전혀 낮지 않다”며 “K-VFX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는 훨씬 효율적인 제작 시스템과 상향평준화된 아티스트들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승리호>가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1위를 차지한 이후 해외 유수의 제작사로부터 국내 VFX 업체에 협업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장주연 덱스터스튜디오 홍보팀장은 “한한령과 코로나19로 극장 시장이 침체했을 때 글로벌 OTT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탄탄하게 만들어진 K-콘텐츠가 위력을 발휘했다”며 “K-콘텐츠의 힘과 함께 우리 VFX 기술력을 보여줄 기회가 많아지면서 K-VFX도 인정받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덱스터스튜디오는 2021년 6월 OTT 전용 색 보정(DI) 및 음향 스튜디오를 증설했고 넷플릭스와 2년 장기 동반관계(파트너십)를 맺었다. 하정수 넷플릭스 포스트 프로덕션 디렉터는 “넷플릭스가 선보이는 K-콘텐츠가 세계에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각 분야의 뛰어난 전문성을 갖춘 국내 파트너사들과 세밀한 부분까지 함께 하며 수준 높은 완성도에 집중하기 때문”이라며 “국내 창작자들과 협력을 더욱 확대해 우리나라 콘텐츠의 세계적 흥행과 함께 국내 창작 생태계의 위상도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