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첫 주거 기반 통합돌봄
광주 광산구청 이지영 주거의료급여팀장 “제가 세 번이나 죽으려고 했던 사람인데요. 여기 온 뒤로는 살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어요. 사는 게 정말 행복해서요.”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운영하는 ‘살던집’에서 만난 이영순(70) 씨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의지할 가족도 없었던 그는 보이스피싱과 전세사기를 연달아 겪은 뒤 죽음을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움을 청해보자는 마음으로 찾은 광산구청을 통해 살던집에 입소하게 됐다.
또 다른 입소자 박상록(62) 씨는 이곳에 들어온 지 반년이 돼간다. 반마비로 병원에서만 8년을 지냈다. 돌아갈 집이 없어 중증환자들이 뒤섞인 병실에서 버텨야만 했다. 휠체어에서 마음대로 내려올 수도, 가벼운 운동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살던집에 온 뒤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 그는 “병원에 있을 때보다 백배는 낫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요즘은 인근 파크골프장에 나가 운동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을 회복했다. 살던집은 이처럼 주거만이 아닌 삶의 방향을 다시 바꿔주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살던집 프로젝트’(이하 살던집)는 공공임대주택의 공실을 활용해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병원이나 요양원으로 옮겨가지 않고도 원래 살던 집과 지역에서 건강한 생활을 이어가도록 주거·의료·돌봄을 융합해 지원하는 주거복지사업이다. ‘케어홈’과 ‘중간집’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케어홈에서는 간호사·사회복지사·작업치료사 등 전문 인력이 상주하며 집으로 찾아가는 맞춤형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간집은 병원에서 퇴원한 뒤 건강이 호전될 때까지 거주하며 일상으로 복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광산구는 지난 7월부터 살던집을 운영해 12월 초 기준 15명이 입소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광주도시공사가 관리하는 영구임대아파트 우산빛여울채의 공실 30호를 확보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 살던집은 최근 ‘대한민국 주거복지문화대상’ 종합대상에 이어 ‘2025 대한민국 지방자치 혁신대상’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단순한 주거 지원을 넘어 삶과 존엄을 지키는 혁신적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가 2026년 3월 전면 시행을 앞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돌봄통합지원법)의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다. 통합돌봄은 돌봄이 필요한 노인·장애인 등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의료·요양·돌봄·주거 등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다. 초고령화로 급증하는 돌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핵심 과제다.
살던집을 기획한 이는 광산구청 이지영 주거의료급여팀장이다. 이 팀장은 치매를 앓다 97세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집에서 직접 돌봤다. 돌봄이 ‘제도’이기 전에 ‘삶의 문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그는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지원했던 ‘살림케어비앤비(단기입주형 재활주택)’에서 얻었다고 한다.
살던집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올해 1월 간호사 출신 동료가 요양병원 이야기를 꺼냈어요. 건강상태는 괜찮은데 집이 없어서 퇴원을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광산구가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집행하는 의료급여 비용만 연간 973억 원에 달합니다. 집이 없는 분들이 요양병원에 그대로 머물면 한 달에 300만~350만 원 정도의 의료비가 발생하는데 이 비용을 전부 국가가 부담하고 있어요. 경우에 따라 의료비가 오남용되는 구조가 생길 수밖에요. 그래서 이 사업을 처음 기획할 때 효과를 가장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척도로 ‘의료급여 비용’을 삼았습니다. 실제로 장기 입원 환자의 퇴원 전 6개월과 퇴원 후 6개월을 비교했더니 월평균 의료급여 비용이 330만 원에서 68만 원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입소 대상자 선정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거주 기간과 비용도 궁금합니다. 처음 살던집을 기획할 때는 ‘중간집’을 재활주택 개념으로 생각했어요. 병원에서 퇴원한 뒤 6개월에서 1년 정도 거주하면서 건강이 호전되면 본인 집으로 돌아가게 하자는 취지였죠. 그런데 막상 생활해본 분들이 “너무 좋다, 계속 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광주광역시와 광주도시공사가 협의해 현재는 ‘1년 거주 후 2년에 한 번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계속 살 수 있어요. 기존 임대주택 보증금은 2년 기준 234만 원인데 첫 입주 때는 연 50만 원만 내고 재계약 때 기존 거주자들 수준으로 조정됩니다. 입소 자격은 기본적으로 무주택자인 기초생활수급자가 우선이지만 단순히 소득 기준만 보는 건 아니에요. 동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사가 직접 방문해 돌봄 필요도를 평가하고 건강 상태와 일상생활 수행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점수가 일정 기준에 들어야 통합돌봄 대상자가 됩니다.
주거공간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고요. 그게 바로 기존 주거복지정책과 가장 다른 점입니다. ‘살 곳’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중간집)를 중심으로 의료서비스와 생활 지원까지 함께 묶어 제공합니다. 서비스 대상자의 상태를 먼저 확인한 뒤 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신체 마비로 요리하기 어려운 분에게는 반찬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작업치료사가 집으로 방문해 재활 운동과 일상 기능 회복 훈련을 돕습니다. 병원 진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동행 서비스도 연결하고요. 정서적인 돌봄도 중요하기 때문에 우울감이나 고립감이 큰 분들은 전문 상담 프로그램을 연계하고 외부 활동이 가능한 분들은 봉사활동이나 지역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연결해 사회적 관계를 다시 맺도록 돕습니다.
의료급여비 절감 이외의 효과도 있겠는데요. 무엇보다 삶의 질이 눈에 띄게 좋아집니다. 이런 형태의 돌봄이 자리 잡을수록 돌봄 인력이 더 필요해져 일자리도 창출되고요. 집 안에 설치되는 안전바 시공은 지역 업체가 맡게 되니 지역경제와도 연결됩니다. 주민들의 삶이 바뀌는 변화가 곧 지역 경제의 선순환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죠. 공공임대주택의 공실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큰 효과입니다.
중간집이 퇴원 환자를 위한 주거공간이라면 케어홈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살던집 이전부터 이 아파트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이 요양원이나 병원에 가지 않고도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케어홈의 목적이에요. 고령자가 많은 이곳을 시범지역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래 계획은 케어홈을 동마다 하나씩 두는 것이었습니다. 돌봄 인력들이 한 동씩 맡아서 관리하면 요양병원으로 가는 일도 줄이고 고독사 발생도 예방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다만 현재는 공공주택특별법상 주거용 목적 외에 사무공간으로는 제공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습니다. 돌봄사업을 위한 공간은 지방자치단체에 예외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에 올라가 있어 제도적 뒷받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케어홈에 대한 기존 거주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요즘은 어르신들이 먼저 얘기를 듣고 찾아오세요. 초반에는 통장님들의 도움을 받아 주민들에게 케어홈을 알렸습니다.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분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고 저희가 직접 찾아가 필요한 돌봄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살던집 참여자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을까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입소자 어르신이 몇 달 동안 집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어요. 한 번만 케어홈에서 운동해보자고 계속 권했더니 어느 날 정말로 문을 열고 나왔어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하루 종일 TV만 보며 누워 지내던 분이 지금은 한 시간 반씩 재활운동을 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인 거죠.
주거 보증금 이외에 대다수 돌봄서비스는 무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통합돌봄 모델이 지속가능하려면 재정구조가 뒷받침돼야 할 텐데요. 일정 부분 본인 부담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돌봄서비스를 받을 때 당사자도 비용을 내면서 ‘나도 이 돌봄의 책임 주체’라는 인식을 가져야겠죠. 광주는 사실 굉장히 특수한 환경입니다. 다섯 개 구 모두 통합돌봄사업(광주다움 통합돌봄)을 추진하면서 지역 안에서 어느 정도 안착이 된 상태거든요. 앞으로는 재정구조와 국가 역할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통합돌봄의 성패를 가르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외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통합돌봄은 복지 영역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복지와 의료, 일자리 영역이 순환 구조로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행정이 먼저 시작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안으로 민간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지속가능해집니다. ‘한 번 반짝’하는 성과는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돌봄은 복지서비스를 몇 천 건 했다는 숫자보다 이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조직과 구조가 갖춰졌는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좋은 돌봄’은 무엇일까요? 오른쪽 반마비 어르신 댁에 안전바를 설치해드렸는데 어르신이 “왼손으로 지팡이를 잡는데 오른쪽에 안전바를 달아놓으면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하셨어요. 그때 많이 반성했습니다. 해준 것에 만족할 게 아니라 필요한 걸 해주는 게 진짜 돌봄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치매를 앓던 저희 할머니도 마지막까지 요양병원에 가기 싫어하셨어요. 생전에 제게 “덕분에 귀한 대접 받고 간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살던 집에서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건 그런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까지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통합돌봄은 가장 기본적인 그 바람을 지켜주는 일이 아닐까요?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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