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 | 한겨레
1990년 동독과의 통일로 독일의 산업 경쟁력이 악화하는 가운데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높은 생산성과 품질을 앞세워 독일 기업을 압박해왔다. 1993년부터 폴크스바겐은 자동차 생산량이 25% 줄어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폴크스바겐 본사 공장이 있는 볼프스부르크시에서는 일자리가 2만 개나 줄고, 1992년 9%였던 실업률이 1997년 17.2%로 치솟았다.
당시 독일은 주요 제조업체들이 생산시설을 대거 해외로 옮기면서 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1938년 창사 이래 줄곧 볼프스부르크를 지켜온 폴크스바겐도 일부 차량의 생산기지를 임금이 낮은 체코 등으로 이전해야 했다. 지역경제의 위기감은 커졌다. 1990년대 후반 볼프스부르크 일자리의 약 60%가 폴크스바겐 공장과 협력업체에서 나올 정도로 폴크스바겐이 지역경제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볼프스부르크는 폴크스바겐이 지배하는 기업도시나 마찬가지였다.
▶독일의 폴크스바겐 공장 생산라인에서 한 노동자가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 한겨레
노조, 임금 하향 평준화 우려해 반발
1998년 폴크스바겐 노사와 시 당국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3자 협력모델을 만들자는 데 합의한다. 비용 절감과 혁신을 통해 지역 실업률을 절반으로 낮추는 ‘아우토비전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1999년 볼프스부르크시와 폴크스바겐이 각각 250만 유로를 출자해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회사가 독립 법인을 만들어 5000명의 실업자를 월 임금 5000마르크(약 350만 원)의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면 노동조합은 이를 수용할 용의가 있는가?” 1999년 말 페터 하르츠 폴크스바겐 노동이사가 독일 금속노조에 던진 질문이다. 당시 월 5000마르크는 폴크스바겐 노동자의 임금보다 약 20% 낮은 수준이었다. 회사 쪽이 노동자의 임금 양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노조에 제안한 것이다. 지역사회와 지방정부는 두 손 들고 반겼다.
하지만 노조는 달랐다. 독일 금속노조는 신설 공장이 임금의 ‘하향 평준화’를 부를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 회사 안에서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있으면 결국 전체의 임금 수준이 끌려 내려갈 것이라고 봤다. 사 쪽이 제시한 ‘주당 최대 48시간 노동’도 쟁점이 됐다. 독일 금속노조는 ‘주 35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맞섰다. 폴크스바겐 노조도 강력 반발했다. 노사의 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의견 충돌이 잦았고 급기야 결렬 선언까지 나왔다. 그러자 폴크스바겐은 2001년 신규 공장 설립 지역으로 포르투갈과 볼프스부르크를 놓고 저울질했다.
이때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주당 최대 42시간 노동’이라는 절충안을 들고 중재에 나섰다. 국내 일자리를 지키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조금 낮은 연봉과 조금 긴 노동시간’을 감수하라고 노조를 설득했다. 전문가들도 협상 막후에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한 협상 과정 끝에 결국 2001년 8월 교섭이 타결됐다. 폴크스바겐의 자회사 ‘아우토 5000’은 이렇게 탄생했다. 실업의 고통 속에 새로운 고용창출 대안을 찾아 나선 독일 노·사·민·정의 공동 결실이었다.
한 공장 두 법인, 노동자 간 갈등도
폴크스바겐이 볼프스부르크 기존 공장 안에 세운 별도 자동차 생산업체인 아우토 5000의 원래 이름은 ‘아우토 5000×5000’이다. 앞의 5000은 새 일자리 목표치, 뒤의 5000은 노동자 월급을 가리킨다. 아우토 5000은 2002년 3월 실업자 3500명을 채용하고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반면 하노버에 미니버스 공장을 세워 나머지 1500명의 실업자들에게 새 일자리를 제공하려던 계획은 타당성 검토 결과 이행되지 못했다.
아우토 5000 노동자들은 6개월의 교육 기간을 거쳐 미니밴 투란과 도시형 스포츠 실용차(SUV) 티구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투란은 폭발적인 시장 수요로 판매량이 급증해 2004년 독일 미니밴 시장의 25%를 점유하는 성과를 올린다. 티구안도 잇따라 히트하면서 아우토 5000은 출범 2년 만에 흑자를 내는 기적을 일궜다.
다만 한 공장 안에 두 개의 별도 법인과 다른 임금체계가 공존하면서 노동자 간 갈등 양상이 나타났다. 2006년 단체협약 갱신을 앞두고 한 차례 파업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생산량과 노동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우토 5000의 임금이 꾸준히 상승해 기존 폴크스바겐 노동자 수준과 비슷해졌다. 판매량 증가에 따른 물량과 인력 이동의 필요성이 커지자 폴크스바겐은 2009년 아우토 5000을 통합한다. 별도 법인을 해산하고 노동자 전원을 폴크스바겐으로 흡수했다. 아우토 5000 프로젝트가 7년 만에 성공적으로 종료된 것이다.
아우토비전 프로젝트가 거둔 지역경제 고용창출 효과는 매우 컸다. 볼프스부르크는 6년(1998~2004) 동안 100여 기업을 유치하고, 200여 기업의 창업을 지원했다. 시 전체에 새로 생긴 일자리는 2만 3000개에 이른다. 부품 제조, 판매, 유통, 관광, 컨설팅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동차 산업의 전후방 연관효과를 극대화한 덕분이다. 시의 실업률은 1997년 17.2%에서 2003년 8.4%로 급격히 떨어졌다. 당시 독일 전체 실업률 11%와 비교해도 양호했다. 민관이 파트너십을 이뤄 지역경제의 회생을 넘어 혁신에 성공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아우토 5000은 혁신적 실험장이었다. ‘학습공장’ 개념을 도입해 현장 중심적인 교육이 되도록 했다. 늘어난 노동시간은 교육훈련으로 활용했다. 작업과 훈련, 평가 모두에서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의 길을 열었다. 조직의 민주적 운영 원리가 생산성 향상과 조화를 이뤄냈다. 그 결과에 노사 모두 만족했다. 사 쪽에서는 기존 공장에선 도입이 불가능했던 작업 체계를 실험하면서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노조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이들 노동자를 모두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 아우토 5000 모델이 ‘상생의 일자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실험이 가능했던 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독일의 전통이 바탕에 깔려 있다. 아우토 5000은 노사 동수로 구성된 사업장평의회를 통해 회사의 주요 사안을 공동으로 결정했다. 이런 노사 협치 모델은 자연스럽게 노사정 3자 협약으로 연결된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섰던 페터 하르츠 폴크스바겐 노동이사는 훗날 독일 노동개혁위원장을 맡아 ‘하르츠 개혁’이라 불리는 노동 개혁을 이끌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중시 전통 바탕
지자체가 주도한 광주형 일자리 모델 역시 ‘사회적 합의’를 통한 고용창출이 강조된다. 노사와 지방정부의 협조 모델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상생형 일자리’를 지향하는 것이다. 임금을 기존 완성차업체의 절반 수준으로 유지하는 대신 정부와 지자체가 주택·교육 같은 ‘사회임금’을 지원한다. 기업은 인건비를 절감하면서 다양한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받고, 노동자는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는 동시에 책임경영의 주체로 참여한다. 지방정부는 지역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면서 해당 기업의 주주로서 공익적 가치를 구현하도록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 등에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중요성을 언급해왔다. 문재인정부는 광주 자동차를 시작으로 다른 지역과 업종으로 이러한 상생 모델을 확대해간다는 구상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현지에 정착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이미 공급 포화 상태다. 국내 자동차 공장도 유휴시설 규모가 연산 70만 대에 이르는 등 구조조정 과정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 신설 공장은 경형 SUV를 연 10만 대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금속노조는 “자동차 산업의 현실과 흐름을 무시한 과잉중복 투자로 광주형 일자리는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아우토 5000은 독일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생산 모델을 위한 혁신적 실험 공장이라는 비전이 있었다. 시장 전략과 부품 공급체계를 넘어 채용에서 교육·훈련, 작업 조직까지 공장의 전 영역에 걸쳐 혁신적 요소를 도입했다. 국내에 아우토 5000 사례를 소개한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장은 “광주형 일자리도 총체적인 경쟁력 측면에서 청사진을 서둘러 그려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동계는 임금의 하향 평준화나 공장 간 물량 이전을 우려한다. 광주 신설 공장의 임금·단체협약 협상은 5년간 유예하는 조건이 달렸다. 아우토 5000 임금이 기존 폴크스바겐보다 20% 낮은 5000마르크로 합의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게 노사가 정한 해당 산업의 최저 기준인 산별협약 임금이었기 때문이다. 볼프스부르크가 속한 니더작센주 지역의 단체협약 임금과 같은 수준이었다. 독일 금속노조는 사용자 단체와 전국 협약, 지역 협약을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반면 한국은 기업별 교섭체계여서 노사가 어느 수준에서 합의해야 할지 애매하다.
“위험 따르는 실험, 사회적 대화 충분히”
이문호 소장은 “아우토 5000은 임금이 상향 평준화하면서 통합됐다”며 “기존 기업단위 단협이나 사회적 협약을 통해 임금 저하나 물량 이전 방지 조항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아우토 5000도, 광주형 일자리도 핵심은 노사 합의를 통한 혁신 공장을 만드는 데 있다. 박명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광주형 일자리는 대기업 공장을 하나 더 짓는 게 아니라, 일자리 구조를 바꿔 새로운 제조기업을 만드는 실험을 하는 것”이라면서 “실험에는 당연히 위험이 따르는 만큼 사회적 대화를 충분히 하면서 보완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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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