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가뭄이라도 들면 많은 이들이 굶어 죽었다. 우리 몸은 굶주림에 적응해야만 했다. 굶어 저혈당이 오면 의식을 잃고 쓰러질 수 있기에 몸에 있는 지방은 물론이고 근육에 있는 단백질마저 녹여서 어떻게든 혈당을 올려야 했다. 그 결과 우리 몸은 혈당을 낮추는 게 아니라 높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 대부분은 혈당을 올린다. 췌장에서 나오는 글루카곤은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분해해 혈당을 높인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오는 스테로이드호르몬 또한 혈당을 상승시킨다. 우리가 흥분할 때 나오는 아드레날린 역시 혈당을 올려 더 많은 에너지를 몸에 공급해 싸움을 하게 만든다.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고 심할 경우 손마저 떨리는데 저혈당일 때 혈당을 끌어올리기 위해 나오는 아드레날린 때문이다. 키를 크게 하는 성장호르몬도 혈당을 상승시킨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모든 것이 넘쳐난다. 식량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과거에 살기 위해 먹었다면 이제는 맛보기 위해 먹고 기분이 좋아지려고도 먹는다. 결국 만성 고혈당 상태가 지속됐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육체노동이 줄었다. 우리 몸은 쓰고 남은 에너지를 모두 지방으로 저장하기 시작했다. 말랐던 인류는 뚱뚱해지기 시작했다.
과거 굶주림으로 자주 저혈당을 겪었던 인류는 혈당을 올리는 호르몬이 여러 개 필요했다. 반대로 과식해서 고혈당을 겪을 일이 적었기에 혈당을 내리는 호르몬은 인슐린 하나면 충분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이제 저혈당이 아니라 고혈당이, 기아가 아니라 비만이 우리를 괴롭힌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속도가 시속 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차는 브레이크 페달, 엔진 브레이크, 사이드 브레이크, 전기차의 경우 회생 제동까지 무려 4개가 생겼다. 그래야 하나가 작동 안해도 다른 것으로 차를 멈출 수 있다. 문제는 자동차와 달리 인체는 간단하게 속도를 낮춰주는, 즉 혈당을 낮춰주는 호르몬이 인슐린 하나밖에 없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화재경보기가 자주 울리면 사람들은 경보기가 울려도 대피는커녕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몸에서 혈당을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 자주 분비되다 보니 인슐린에 대한 반응이 감소한다. 몸도 계속 분비되는 인슐린에 적응한 것이다. ‘인슐린 저항성’이다. 처음부터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들지 못하는 ‘1형 당뇨’ 또는 ‘소아 당뇨’ 환자는 지금도 있지만 극소수다. 현재 당뇨의 대부분은 비만 등으로 인한 고혈당 때문에 인슐린 저항성이 생긴 ‘성인 당뇨’, ‘2형 당뇨’가 대부분이다.
혈당이 높아지면 피가 끈적끈적해지니 혈관이 잘 막힌다. 당뇨에 걸리면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는 심근경색 위험에 노출된다. 당뇨 환자 열 명 중 세 명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한다. 인류의 역사 300만 년 가운데 지금은 누가 뭐래도 가장 풍요로운 시기다. 이제 사람은 못 먹어서가 아니라 잘 먹어서 죽는다. ‘풍요의 역설’이다. 우리 몸이 이럴진대 우리 마음에도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서 불행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빛나는 외모만큼 눈부신 마음을 가진 의사.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2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작가이기도 하다.〈히틀러의 주치의〉를 비롯해 7권의 책을 썼다. 의사가 아니라 작가로 돈을 벌어서 환자 한 명당 진료를 30분씩 보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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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