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1,original,left[/SET_IMAGE]백일홍이 피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100일을 내리 꽃을 피우는 백일홍이 마침내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지난 봄날의 어느 아침 나의 정신을 퍼뜩 차리게 한 것이 바로 배롱나무였다. 백일홍이라고 부르는 이 나무는 봄꽃의 향기에 취해 덩달아 달뜬 나에게 진정제 같은 것이었다. 매화며 산수유꽃이며 진달래꽃이 여전히 ‘미완의 혁명’으로 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각성제 같은 것이었다.
섬진강변 벚꽃 축제가 끝나고, 온 동네가 ‘진달래 산천’이 되어도 백일홍은 묵묵부답이었다. 봄꽃들의 잔치가 끝난 뒤에야 밤나무며 모과나무가 슬슬 연초록의 여린 입술을 내밀어도 이 나무만은 마치 죽은 듯이 동면의 겨울나무로 서 있었다.
맨살의 온몸으로 혹독한 겨울을 났지만 봄이 와도 아직 봄이 아닌 ‘춘래불사춘’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봄에 가장 늦게 잎을 내밀지만 여름 한낮의 뙤약볕 아래 100일 동안 꽃을 뿜어내는 그 저력, 이것이야말로 마치 독학(獨學)의 만학도처럼 함부로 휘둘리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결기(結氣)가 아니었을까?
전설이 참으로 슬픈 백일홍나무 아래 서서야 시인이자 통일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가 스스로 호를 ‘늦봄’이라고 지은 것을 알 것도 같았다. 뭔가 환하지만 ‘잔인한 사월’을 묵묵히 응시하며, 마침내 100일 동안 꽃을 피우는 저력이야말로 화르르 꽃을 피우고 지는 봄꽃들의 청출어람이 아니겠는가?
아무래도 백일홍은 일순간 미완의 혁명이 아니라 끊임없이 개혁의 완성을 꿈꾸는 꽃이다. 화려한 작심삼일이 아니라 담배를 끊어도 석 달 열흘은 끊어야 그 가능성이 보이고, 기도를 해도 백일기도는 해야 뭔가 깨닫지 않겠는가?
백일홍나무 아래서 민족시인 신동엽 선생을 생각하고, 김수영 시인을 떠올린다. 두 시인 모두 불운하게도 나이 마흔의 경계에서 봄꽃처럼 죽어갔지만, 그들의 정신은 백일홍의 끈질긴 결기를 닮아 있다.
그렇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서두르기만 한다고 될 일은 없다. 향기도 없이 화사하게 피었다가 화르르 지고 마는 벚꽃도 아름답기야 하지만, 그것만을 꿈꾼다면 일종의 도박 아니겠는가?
문단을 둘러봐도 그리 다르지 않다. 뛰어난 문재들이 안타깝게도 일찍 꽃을 피웠다 화르르 지는 일장춘몽의 벚꽃이 되기도 하고, 백일홍처럼 늦게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지만 ‘화무십일홍’을 넘어 오래오래 명작의 꽃을 피우기도 한다. 백일홍나무가 온몸으로 우리 모두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단순하지만 이처럼 깊고도 깊다.
백일홍나무는 일명 간지럼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잎과 꽃이 무성한 이 나무의 밑동을 손가락으로 간질이면 가지 끝의 이파리들이 파르르 떨기 때문이다. 묵묵부답의 나무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나무 중에서 가장 예민한 나무인 것이다. 스스로 욕망의 짐을 벗어버리듯 나무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며 언제나 맨살의 알몸으로 서서 세상과의 교신, 그 예감이라는 안테나의 주파수를 조절하는 것이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둘러보면 곳곳에 마치 죽은 듯이 제일 늦게 봄을 맞이하는 나무가 있다. 화무십일홍을 비웃으며 서두르지 않고 온몸의 세포들을 일깨우며 때를 기다리는 나무, 마침내 100일 동안이나 꽃을 피우는 백일홍나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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