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이 되신 시어머니는 이제껏 66사이즈를 입는 것을 자랑삼는 분이다. 시누들이나 내가 유행 지난 옷, 입지 않는 옷들을 가져가면 시어머니는 당신 뜻대로 자르거나 덧대어 장안에 없는, 야릇하고 귀여운 스타일의 옷을 만들어내신다.
“야들아, 어떠노?” 하시며 시어머니는 그걸 입고 한 바퀴, 패션쇼 하듯 맴을 돌고 자식들이 뒤태가 40대라는 둥, 멋쟁이 할아버지들이 다 따라오겠다는 둥 한 마디씩 보탤라 치면 시어머니의 눈빛은 소녀처럼 반짝인다.
몸매관리를 위해 다이어트를 하거나 특별한 운동을 즐기시는 건 아니니 시어머니의 비결이라면 평생 게으름을 모르고 살아오신 성정일 것이다. 어머님의 기상 시각은 언제나 다섯 시 반이다. 몇 해 전큰동서가 갑자기 돌아간 후 시숙과 조카들의 식사를 챙기고 그들이 출근하고 나면 방방을 청소하고 빨랫거리를 거두고 저녁거리를 장만하는 것, 모두가 시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허리가 아파도 눈이 침침해도 온종일 혼자 적적한 날에도 당신 위하자고 자식들에게 전화 한 통 하는 법 없는 시어머니를 위해 주말이면 사위나 아들들 중 누군가 사발통문 돌리듯 전화를 하고 한둘씩 모여든 이들이 향하는 장소는 대개 남한산성이다.
산성 끝까지 오르는 길 중간 참, 등에 땀이 밸 즈음이면 막걸리 파는 아저씨가 나타난다. 시어머니는 두어 사발 탁주를 드시고 상기된 얼굴로 남은 길을 씩씩하게 올라가시지만 내려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시어머니의 발길이 조금 흔들리기 마련이다.
“어머님, 괜찮으세요?” 하면 “기분 좋다” 하시며 쫄랑쫄랑 걸어 가시는데 이때부터 어머님에게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발끼이를 돌리려고 바람 부는 대로 걸어도 돌아써어지 않는 거어쓴 미련인가 아씨움인가아~.” 시어머니가 운을 떼면 아들들이 뒤이어 합창을 한다. “가씀에 이 가쓰으메 심어둔 그 싸아랑이 이다지도 깊을 줄을 나안 정말 모올랐었네. 아아아아 아아아아 진정 난 몰라았었네에에에~.”
중간중간 시어머니는 춤추듯 한두 바퀴 맴을 돌고 사위와 딸들이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추노라면 지나던 사람들이 싱글거리며 쳐다보지만 시어머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어느 주말, 여느 때보다 막걸리가 과했는지 점심을 드시고 시어머니가 계속 “발끼이를 돌리려고~”라고 흥얼거리시는 바람에 사위 중 하나가 “아따, 오늘 우리 장모님 한번 돌려드리자” 하더니 성큼 일어서서 돗자리를 얻어 왔다. 후식으로 나온 수박 그릇을 들고 우리는 식당 옆 계곡으로 갔다. 누구는 바지를 걷어붙이고 물로 들어가 차갑다고 소리를 지르고 누구는 종이컵의 커피를 홀짝이는 와중에 시어머니는 흥에 겨워 자리 위를 끝에서 끝까지 흔들리는 걸음으로 오가면서 계속 노래를 부르셨다.
돌아오는 길, 내가 물었다. “어머님, 그 노래가 그리 좋으세요?”
어머님은 눈을 뜨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셨다. “노래 안 좋으나? 가사도 그렇고.” 말씀을 길게 하는 양반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나는 또 물었다. “그래도요, 어머님.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 같아요.”
“그래 들리드나” 하신 시어머니가 피식 웃음을 흘리셨다. “내가 야야, ?V 번이고 발길을 돌릴라꼬 돌릴라꼬 카다가 못 돌렸잖나…
열아홉에 시집가가주고….”
열아홉, 꽃 같은 처녀의 상대는 서른한 살 노총각이었다. 서울에 사업을 벌이고 두어 달에 한 번 불쑥 다녀가는 신랑은 가고 나면 얼굴조차 가물거렸다. 근동에 소문난 신랑의 어머니는 외며느리를 쥐 잡듯 사납게 대했다. 저녁 내내 밥 생각 없다 하고는 별안간 부엌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이년이 시어미를 굶겨 죽일라카나” 하고 고함을 치기 일쑤였다.
남편이 다녀가는 달을 넘겼다 싶던 어느 날 시어머니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신랑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거였다. “새댁만 모르지, 다 아는 일이구만.” 옆집 아낙은 입을 비죽거렸다. 까맣게 가슴이 타는 밤을 지나 날이 밝았을 때, 그날 처음 시어머니는 ‘발길을 돌리려’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때마침 병석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오일장, 발이 땅에 닿았나 싶게 뛰어다녀야 했던 닷새가 지나고, 시어머니에게는 발길을 돌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따지기는 고사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남편이 떠나고 다시금 발길을 돌릴까….
하룻밤에도 열두 번 마음을 다잡아야 했던 어느 밤, 시어머니는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옆집 아낙을 따라 읍내 놀이패 구경을 간 거였다. 그곳에서 시어머니는 장고잡이에게 홀딱 마음을 빼앗겼다. “장고 잡는 사내가 아니라 장고 잡는 일. 그게 와 그리 쳐보고 싶든 동…. 채 쥐고 ?V 번 뚜디리고 나이까 속이 다 씨원 트라카이.”
몇 차례였을까, 시어머니의 밤 외출은 오래가지 못했다. 호랑이 시어머니의 노기는 하늘을 찔렀다. “아이고, 느그 할매가 춤바람 난 메누리라꼬 잡아먹을라 캐서 내가 천지야, 어디야 도망갔잖나.” 넋이 나갈 만큼 혼쭐이 나고 훌쩍이며 잠들었던, 이제 또 발길을 돌려야 하나 싶던 그 밤, 시어머니를 주저앉힌 것은 입덧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낳고 딸을 낳고…. 여섯 남매를 기르는 동안 이웃 아낙들은 제비처럼 소문을 물어 날랐다. 그때마다 시어머니의 발길은 흔들리고 흔들렸지만, 끝끝내 시어머니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고.… 돌리지 않았다.
내 시아버지는 자상하고 정이 많은 분이었다. 베풀기를 즐겨하니 따르는 이가 많았고 개중에는 당연히 여자도 있었으리라. 그 많은 정을 온전히 시어머니께로 돌리고 이제야 평화로운 날들이로구나 싶던 십수 년 전 어느 날 시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급작스럽고 야속한 이별이었다.
“아이고, 내 살아온 얘기하기도 이래 힘든데 니는 소설을 다 우예 쓰노.” 시어머니가 다시 눈을 감으셨다. 그토록 힘겨운 나날을 살고도 저처럼 편안한 얼굴을 하신 어머님. 차마,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했던 어머님.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노래가 떠오르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글·서하진 (소설가·경희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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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