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대관령 골짜기 왕산초등학교에는 1학년이 달랑 한 명입니다. 놀이가 한창 재미있을 여덟 살, 나연이는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혼자 그네를 타고, 혼자 미끄럼틀을 탑니다. 짝이 있어야 하는 시소는 탈 수 없습니다.
어린이에게 또래 친구가 없다는 것은 무인도에 홀로 있는 것에 견줄 만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친구가 없습니다. 어린이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은 산골 같은 환경조건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어른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마음의 문은 오랫동안 닫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는 말 한마디를 해 주는 친구, 쓰러지고 좌절했을 때 용기를 주는, 그렇게 ‘친구란’ 나에게 무엇인가 주기만 해야 하는 존재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아쉬울 게 없으므로 친구가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게 되고 점차 관계가 냉랭해져 갔던 것 같습니다. ‘이기주의’에서 발생한 파렴치한 사고방식이지요.
우리 마을에는 한 켤레의 신발처럼 단짝인 두 명의 할머니가 계십니다. 한 할머니는 세상 물정에 좀 어둡고, 버스노선을 읽을 줄 몰라 외출하기를 어려워하십니다. 그리고 또 한 할머니는 한글도 읽고 쓸 줄 아시는데 한쪽 다리가 많이 불편합니다. 두 할머니가 서로 의지하며 시내버스를 타고 다정하게 병원에도 다녀오고 강릉시장에도 다녀오시면 그 장바구니 내용물이 참 재미있습니다.
자반고등어 한 손, 두부 한 모, 양말이며 고무신 한 켤레까지 똑같습니다. 계산이 빠르고 세상 물정이 좀 더 밝은 편인 친구가 사는대로 따라서 똑같이 사 오시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들 집에 가 보면 냄비며, 베갯잇이며, 옷이며 살림살이 모두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그중에 한 할머니의 아픈 다리가 악화되어 도시에 사는 아들이 모시고 가 버렸습니다. 남겨진 할머니는 매일 문 앞에 앉아 그 친구를 기다립니다. 지난 겨울엔 다리 아픈 친구가 오면 미끄러질까 봐 눈도 치우고 연탄재도 뿌려 놓고 기다리는 걸 보았습니다. 시인 김소월이 진달래꽃을 뿌려 놓은 것보다 더 가슴이 짠해졌습니다.
산골에서는 이렇게 사람이 없어서 친구가 없을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사람들로 넘쳐나는데도 아파트 문을 걸어 잠그고, 이웃도 친구도 없이 고독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친구가 없다는 것은 ‘그는 나에게 친구여야 하고, 나는 그에게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란 서로 격려해 주며 함께 발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친구가 있는데 저는 친구가 없어요. 친구 사귀는 비법 좀 알려주세요.
주의 : 악플 달면 애애애앵~ 신고합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초등학생인 듯한 그가 칭찬이나 격려보다 비아냥거림을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미리 악플 달까 봐 걱정하고 있었을까요? 어찌 된 일인지 요즘 우리는 격려보다 비난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각자 모래알처럼 고독해지고 있습니다.
친구를 사귀는 비법은 없습니다. 다만, 친구를 사귀는 우선순위가 있다면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는 일입니다. 나부터 반성해야겠습니다.
글·유금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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