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시식(時食)’이라고 해서 제철음식을 최고로 쳤다. 공자의 식습관을 기록한 <논어(論語)> ‘향당편(鄕黨編)’에는 ‘불시불식(不時不食)’이라 하여 제철음식이 아니면 들지 않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곳곳에 제사 때 시식을 올린다는 대목이 보이고, 우리나라의 풍속을 정리해 설명한 <동국세시기>에도 시기마다의 별미인 시식을 소개할 정도다.
조상들의 지혜가 아니더라도 그때그때 계절 따라 나는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은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수많은 식재료를 양식하는 요즈음에는 계절음식의 가치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이른 봄의 제철음식으로는 남해안 사람들이 즐겨 먹는 도다리쑥국을 제일로 꼽고 싶다. 도다리쑥국은 봄의 신호다. 봄의 바다와 들을 대표하는 두 가지 먹거리가 다 들어 있는 도다리쑥국 한 그릇이면 청양가절(靑陽佳節)을 송두리째 즐길 수 있다.
쑥의 향과 도다리의 맛은 참으로 궁합이 좋다. 원래 통영이나 거제사람들은 도다리미역국을 즐겨 먹는데, 이른 봄 해쑥이 올라올 때는 도다리쑥국을 해 먹는다. 계절의 맛을 즐기는 탁월한 미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닷가 양지바른 곳에서 아직 채 녹지도 않은 굳은 땅을 뚫고 쑥쑥 올라온 해쑥과 산란 후 새살이 돋아난 도다리를 함께 끓인 도다리쑥국은 바닷가 사람들의 봄을 맞이하는 준비이자
춘곤증을 이기는 보양식이다. 예전 궁핍하던 시절, 남해안의 어머니들은 봄이 되면 억지로라도 아이들에게 도다리쑥국을 꼭 챙겨 먹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봄도다리라는 별칭이 다 붙었을까?
쑥도 우리의 ‘단군신화’에 곰이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먹고 사람이 되었다고 했을 정도로 예부터 신비한 식물로 여겨왔다. 약으로 흔히 쓰기 때문에 약쑥이라고도 하는데, 식재료로 국을 끓여 먹기도 하고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옛날에도 쑥국은 흔히 먹었던 모양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 이항복(李恒福)의 시문집인 <백사집(白沙集)>에는
“묵은 쑥 뿌리가 눈 밑에서 싹트려 할 무렵( 雪下陳根艾欲芽)
향기로운 쑥국모임에는 봄기운이 듬뿍하네( 香羹小會得春多)
우리 집 형제들은 그 때가 즐거웠기에(吾家兄弟當時樂)
꿈속에서도 분명 형제애를 느낀다네( 夢裏分明感?華)”
라는 시가 수록돼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도다리쑥국은 쉽지 않다. 우선 제대로 된 도다리가 없다. 현지사람들이 ‘담배도다리’라고 부르는 자연산 도다리는 구경하기도 힘들다. 요즘은 양식 가자미 종류가 도다리로 둔갑한다. 쑥도 막 돋아난 여린 야생 쑥은 여간해서는 만나기 어렵다. 이 둘을 함께 취하기는 더욱 힘들고 그 기간도 아주 짧다.
그러니 시인 윤성학이
“봄도다리쑥국 한 숟갈만 떠먹어봐도 알겠다
남녘 바다에서 깨어난 봄이
저 어족과 어떻게 눈을 맞춰 봄바다에 춤추게 하는지를
해쑥 한 잎이라도 다칠세라 국을 끓여내
거칠고 메마른 몸들 대접하는 그의 레시피를”
이라고 노래한 ‘한 숟갈만 먹어봐도’ 알 만한 도다리쑥국은 참으로 맛 한 번 보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런 불평만 늘어놓다가는 양식 가자미에 비닐하우스 쑥으로 끓인 국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철이 짧아 놓치기 십상이지만 남해안에서는 통영이나 거제의 몇 몇 음식점이 도다리쑥국으로 유명하며, 서울에서는 다동의 한 음식점에서 그 개운한 국 맛을 볼 수 있다.
글·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교수·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