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 대학생이 되는 딸아이를 보면서, 이제 우리 정부도 새 출발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은 모든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 마음이 가족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과 다를 바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 정부는 험하고 먼 길을 가야 한다. 우리는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그 멀고도 험한 길에 동참해야 할 때다.
‘우리가 가야 할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심장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이 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잠언인데, 이 말이 주는 울림이 커서인지 간혹 생각난다. 머리와 심장은 각각 이성과 감성, 생각과 행동, 출발과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좋은 문장은 나무기둥과 같아서 줄기가 많은 법이다. 나는 이제 이 문장을 이렇게 틀어본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는 머리에서 심장에 이르는 길’이라고. 머리에서 심장은 정말 가까운 거리다. 그런데 왜 그렇게 멀리 느껴지는 것일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두뇌를 상징하는 머리와 심장은 보이지 않는 신체의 장기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이 있다. 신도 보이지 않아서 존재한다. 신이 보인다면 그 순간 신비로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머리에서 심장까지 가는 길이 먼 길이 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인생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정말로’ 가장 먼 길은 보이지 않는 길이다. 길이 보인다면 아무리 멀리 보여도 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런 도정에 서 있다.
머리에서 심장까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두 번째 이유는 예부터 지금까지 언행일치의 인간형은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는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심장을 움직여 공적인 일을 하는 공직자를 신뢰한다. 심장에서 나온 열정으로 머리를 쓰게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의 공약은 어쩌면 머리에서 나온 약속이다.
그 약속이 심장을 움직여 행동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가장 먼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 되기도 한다. 마주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보기 위해서는 적당히 거리를 좁혀야 한다. 먼 길을 가까운 길로 좁히는 순간 우리 일상에 기적이 일어난다. 이것은 마술이 아니라 기술이다. 삶과 정치의 기술.
나는 정부가 국민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를 고전에서 찾는다. 바로 맹자의 ‘측은지심’이다. 불행에 빠진 타인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바로 정치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고 너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측은지심은 사람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때 나온다. 어린아이를 볼 때는 허리를 굽혀 아이의 눈동자와 마주하고, 쓰러진 사람이 손을 내밀면 아무리 추워도 장갑을 벗고 따뜻한 맨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주면 된다.
정치는 관계의 기술이다.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거리를 이르는 말이다.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고, 적당하게 나무와 나무가 서 있는 바로 그 거리. 올 봄에 꽃을 본다면 서로 다른 나무가 얼마 간의 거리를 유지해야 꽃을 잘 피우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꽃을 바라보는 적당한 거리를 생각하라. 동네에 있는 나무만 잘 살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글·원재훈(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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