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언론에서도 유전자 감식이나 프로파일러 등 낯선 수사기법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물론 2000년부터 미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텔레비전 수사극 CSI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시작된 변화다.
최근 우리 경찰의 과학수사 능력이 크게 강화되면서 나타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로 뾰족한 단서나 확실한 물증을 찾지 못해 미궁에 빠졌던 사건을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으로 해결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늘어나고 있다.
법과학 선구자로 알려진 프랑스 경찰청 에드몽 로카르드의 ‘교환법칙’에 따르면 범행 과정에서 범인의 손이나 몸이 닿은 곳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범인이 피를 흘리기도 하고, 손가락의 지문이나 손바닥의 장문(掌紋)을 남기기도 한다. 범인이 남긴 모든 흔적은 수사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과학수사에서는 현대 과학기술을 이용해 범인이 남긴 흔적을 모두 찾아내 분석한다. 과학수사는 현대의 과학과 기술이 모두 합쳐져 시너지를 발휘하는 대표적 융합학문분야인 셈이다.
한 명의 범인 놓치더라도 무고한 시민 처벌 막아야
과학수사는 숨겨진 흔적을 찾아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범인의 지문을 찾아내는 일이 출발점이다. 범죄현장에서 맨눈으로 지문을 찾아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과학의 힘이 필요하다. 탄소 가루처럼 짙은 색깔의 분말을 뿌리는 방법도 있지만 지문에 남아있는 화학성분의 특성을 이용하는 방법도 많다.
땀에 섞여 나오는 지방질 성분과 반응해 색깔을 나타내는 아이오다인(요오드)도 이용하고, 아미노산과 반응해 짙은 청자색을 나타내는 닌하이드린도 쓴다. 오래된 지문에 남아있는 소금기와 반응하는 질산은 용액도 이용한다.
범인이 남긴 핏자국을 찾아내는 일도 중요하다. 범인이 흘린 피에는 범인의 정체를 밝혀주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그런데 범인이 흘린 피가 시간이 지나 말라 붙어버리면 핏자국을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사람의 피와 동물의 피를 구별하는 일도 쉽지 않다.
다행히 과산화수소수에 녹인 루미놀을 이용하면 사람의 핏자국을 확인할 수 있다. 적혈구에 들어있는 철 이온이 과산화수소와 반응하면서 루미놀이 희미한 푸른 형광색을 띠게 된다. 혈액에 들어있는 헤모글로빈은 물에도 쉽게 씻겨나가지 않기 때문에 과학수사에 유용하게 이용한다.
유전자 감식도 유용한 첨단 과학수사 기법이다. 혈액·침·정액·머리카락 등에 들어있는 DNA를 이용하는 유전자 감식은 20세기 후반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한 생명공학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범죄현장에서 채취한 DNA의 수를 짧은 시간에 수백만 배 이상으로 증폭시키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기술과 DNA를 일정한 방법으로 절단하는 ‘제한효소’ 기술이 핵심이다.
범죄 피해자의 시신에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내는 일도 쉽지 않다. 범죄에 사용한 독약성분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생리학과 화학을 이용해야만 한다. 심지어 부패가 시작된 시신에서 발견되는 곤충의 흔적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법곤충학’에서는 부패의 정도에 따라 시신에서 발견되는 곤충의 종류와 서식상태가 변한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과학수사에 이용하는 과학 원리나 기술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한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아무 죄도 없는 시민을 범인으로 처벌하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원칙은 과학수사에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글·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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