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음 강의에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느라 연구실 앞에 놓인 상자를 보지 못해 걸려 넘어졌다. 그 바람에 커피 잔 2개와 쟁반 2개가 서로 부딪치면서 떨어져 깨졌다.
그중 몇 조각이 내 엄지손가락과 손목 근처를 스쳤다. 또 다른 조각은 발등 한 곳을 찍었다. 좀 많은 양의 피가 흘렀다. 나는 마룻바닥에 주저앉았다. 직원들이 달려와 괜찮은지 여부를 묻고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상처 난 곳은 흐르는 물에 씻고 밴드를 붙였다. 그러고는 강의장으로 향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피가 흘러나와 나쁜 균이 내 몸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잠들기 전에 상처를 소독했다. 약 바르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작은 상처만 남았다.
나는 여기에서 독자들에게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내 기도 같은 바람을 전하고자 한다. 나는 누가 상자를 내 방 앞에 놓아두었기 때문에 넘어졌다고 원망하지 않았다.
상처는 아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피 나고 찢긴 상처로 인해 강의를 못하게 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 사고가 나를 불행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와 사는 방법을 배운 대로 실천하면서 매일 보람과 행복을 확인한다. 나는 그렇게 ‘처음 사는 오늘’을 나누는 것을 배웠다.
나는 육체의 상처가 자연치유되듯 마음의 상처도 치유된다고 전문가의 양심으로 굳게 믿는다. 다시 온전하게 되돌아갈 수 있는 속성을 우리 모두는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이 가장 확실한 정신건강 지키기의 첫걸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는 하고자 하는 일을 유전적·환경적 요인 때문에 할 수 없어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때는 어떻게 자기통제력을 발휘할지를 배우면 된다.
그래서 나는 치유나 상담이라는 개념을 선호하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환자 취급한다는 뜻이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오래도록 치유나 상담을 받도록 하는 것은 변해야 한다. 상담도, 치료도 중독이 되기 때문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가 스스로 일어서서 자기 문제를 성장의 기회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살면서 부득이 맞게 되는 문제나 갈등은 성장을 위한 절대조건임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스트레스나 문제를 없애는 것은 소극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나 갈등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행복도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면 달인이 된다. 삶에 실패란 없다. 다만 행복해지기 위한 또 한 번의 학습을 한 것이다. 내가 80여 평생을 살아오는 길에 막다른 골목이라 생각한 곳에는 언제나 샛길이 있었다.
다만 원하는 만큼 되지 않았을 때 다음에는 다르게 하겠다는 계획을 그 순간 세워둬야 한다. 정신분석학자인 윌리엄 글래서(W. Glasser)는 일찍이 치료비용의 10분의 1만 투자해도 국민 건강과 행복이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될 때는, 또 오래도록 기다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고 하기 싫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의미 있고 즐겁게 할 줄 아는 것이 행복의 열쇠다.
글·김인자(한국심리상담연구소장·서강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