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시내버스를 타고 전철도 탄다. 차 안의 많은 시민들의 시선이 손바닥으로 향하고 있다. 젊은 층일수록 그 모습이 일사불란하다.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몰고 온 도시 풍경이다. 나에게는 그 모습이 잠시 신기하다가 이내 어색하고 불편해진다. 그러나 달라진 실내 풍경은 이제 익숙한 도시인의 일상이다.
그나마 전철의 노약자석에는 젊은이들이 잘 앉지 않으니까 다행인데, 언제부턴가 시내버스에서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를 보는 경우가 드물다. 휴대폰을 사용할 때는 문자를 보내다가도 옆에 선 어르신을 위해 일어서는 젊은이들을 가끔 보곤 했는데, 스마트폰에 시선을 송두리째 빼앗긴 젊은이가 버스 기둥에 매달린 늙은이를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스마트폰 열독은 노약자에 대한 배려심뿐만 아니라 과거의 익숙한 풍경까지 밀어내고 말았다. 시내버스나 전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아도 심리적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던가. 하지만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커피 전문점이든 길거리에서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는 젊은이들이 책에 보낼 눈길이 드물 수밖에 없다.
출판계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서점이 사라지는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니 새삼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높은 교육열에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출판계의 위기와 서점의 몰락이라니 의아할 법도 하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요즘 도시인들이 지극정성으로 매달리는 헬스클럽 다니기, 등산, 걷기, 웰빙 음식 먹기 등 이것들도 정신건강을 위한다고 만족하는 데 머물 것인가?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바꾸는 일은 기성세대 스스로가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는 길밖에 없다.
한 출판사가 유명 작가의 소설을 베스트셀러로 조작하려고 사재기를 했다 해서 시끄러웠다. 출판계의 고질적 관행이라니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의 독서습관도 한몫을 한 게 분명하다.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대중적 인기에 기대는 심리가 원인 제공을 했다. 이 현상 역시 경쟁 심리의 변형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논리비약일까?
지적 호기심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만, 그나마 팔리는 책들이 대부분 자기계발서적이거나 자기위안서적이라는 점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 두 가지 독서는 크게는 상반된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인다.
하나는 경쟁에서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당장 실생활에 써먹을 수 있는 독서 욕구를 반영하는 것 같다. 다른 하나는 경쟁에 지치고 피폐해진 정신을 달래려는 욕구에서 나왔다고 보인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력을 키우려는 조바심 앞에, 경쟁에 지쳐 위안받고 싶은 심신 앞에 시와 소설, 고전읽기는 배부른 풍류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일일 연속극을 그냥 재미가 아닌, 어떤 목적성과 유용성을 위해서 매일 본다면 끔찍하게 생각할 거면서도….
성과지상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이은 우울증을 앓는다. 그들이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읽고 개인의 경쟁력을 함양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경쟁심리가 부추기는 불안감은 긴장을 풀고 마음의 평온을 찾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와 강요에 의한 독서보다는 한 시간, 혹은 삼십 분 동안이라도 전자기기 화면을 잊고 그저 멍하게 있는 것이 차라리 심신에 도움이 될 터이다. 불안함을 가중시킬 기능적 독서에서 탈피해야 할 이유이다.
글·전광호(부산대 불어불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