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시내 남쪽에 위치한 남산은 서울 남산과는 같은 이름, 전혀 다른 모습의 산이다. 서울 남산이 조선왕조 오백년의 산이었다면 경주 남산은 통일신라 천년의 산이다. 신라의 옛 수도였던 서라벌 시대의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남산에는 신라의 역사를 관통하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150여 개의 절터, 90여 좌의 불상, 그리고 98기의 탑이 산중에 굽이굽이 펼쳐진다. 단순한 등산이나 산책 이상의 걷기다. 산속에서 만나는 무수한 신라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도 슬며시 발걸음 따라 1,300여 년 전 그때의 신라 서라벌로 옮겨간다.
이곳에서 역사는 더 이상 지루한 것이 아니다.
흔히 경주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칭한다. 그만큼 거리 곳곳, 마을 구석구석이 옛 유물과 유적들로 가득하다. 지천에 널린 것이 능이요, 머리만 돌리면 보이는 것이 탑이니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근 천년 동안 신라의 서울이었던 서라벌 경주는 신라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증거이며 경주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불교 유적은 종교를 떠나 신라 천년의 찬란했던 문화예술의 꽃이다.
그중에서도 694점의 문화유산을 보유한 남산은 과거 서라벌의 보물찾기 장소다. 상징적인 보물이기도 하고 실제로 상당수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남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0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그만큼 방대한 유물을 산 골골에 가득 품고 있어 걷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수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남산으로 향하는 이유 역시 그렇게 숨겨진 보물들과 역사를 하나하나 찾아 나서는 재미를 모르지 않기 때문일 테다.
남산은 사실 하나의 산이 아니다. 이리저리 뻗어있는 60여 개의 능선을 총칭해 남산이라 부른다. 그중에서도 삼릉에서 용장까지 이어지는 금오산 코스는 남산의 40여 골짜기 중 가장 많은 유적을 볼 수 있는 구간이자 신라 석불을 시대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신라 석불의 보고다.
불상 이름에 흔히 들어가는 ‘여래(如來)’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여(如)’는 진리를 뜻하고 ‘래(來)’는 말 그대로 온다는 것, 즉 진리가 온다는 의미로 부처의 열 가지 이름 중에 하나다. 이를 풀어쓰면 진리에 따라 이 세상에 와서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란 뜻이 되기도 한다.
삼릉~용장 금오산 코스는 신라 석불의 보고 입상들을 지나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삼릉이다. 세 개의 능이 있어 삼릉, 즉 신라의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능이다. 삼릉은 온통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소나무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일제히 야트막한 능들을 향해 가지와 줄기를 뻗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신하가 왕을 향해 머리를 조아린듯하기도 하고 양팔을 뻗어 다가가려 하는 애인 같기도 하다. 나무야 말이 없지만 그 애틋한 손짓만은 또렷하다. 그저 양지를 향해 뻗었다고 하기엔 과한 듯한 뻗침이 신기하다. 어쨌거나 걷는이에게는 고마운 송림이다. 쉬어가기 딱 좋다.
삼릉에서 개울 따라 500미터쯤 올라가면 머리 없는 석불좌상인 냉곡 석조여래좌상이 나온다. 8세기 중엽 신라 전성기의 불상이어선지 당당한 가슴과 넓은 어깨가 위풍당당하다. 마멸이 거의 없고 옷 주름은 생생하지만 머리가 없고 두 무릎이 파괴되어 있다. 비록 돌 불상이지만 나름대로는 갖은 고초를 겪었음이 틀림없다. 불교의 성지에서조차 흔히 발견하게 되는 머리 없는 불상. 번성하는가 하면 곧 파괴되고 또 쇠퇴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임을 말없이 일러준다.
퍼즐 맞추듯 숨은 보물 찾는 남산 등산길
이제부터 본격적인 숨은 그림, 아니 숨은 유물 찾기다. 모습만 찾아서 되는 게 아니라 그 숨겨진 이야기도 함께 찾아야 한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마치 회화를 그려놓은 듯 넓은 바위 위에 새겨진 불상,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을 만난다. 동쪽에는 설법하고 있는 석가모니 삼존불이 새겨져 있고 서쪽으로는 아미타삼존불이 있어 현생과 내생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다시 200미터쯤 위로 올라가면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이다. 앞의 선각육존불과 비슷한 양식의 새김이지만 얼굴만 돋을새김한 것이 이채롭다. 투박한 얼굴이 서민을 닮았다. 세련되지 않은 탓에 미완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남산 마애불 중 가장 늦은 10세기 작품이다.
그렇다면 ‘마애(磨崖)’란 또 무엇인가. 갈마(磨)자에 벼랑애(崖) 자를 써 자연암벽을 갈고 닦아 문자나 형상을 새긴 것을 뜻한다. 그러니 마애불이라 하면 절벽이나 벼랑 같은 암석에 불상을 새긴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선각이란 선으로 파서 새긴 그림이나 무늬를 뜻한다. 저마다 비슷비슷한 불상 이름, 석탑 양식 하나 외우거나 구분하는 것은 영 쉽지 않고 불상 이름은 헛갈리게도 온통 선각과 마애, 여래의 조합이지만 그 모습만은 제각각, 사연도 제 나름이다.
다시 길을 오르며 선각마애불과 상선암 마애선각보살상,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등을 거쳐 바둑바위를 만난다. 바둑바위에선 별안간 확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옛 서라벌 벌판과 북남산이 한꺼번에 바라다보인다. 그 많은 불상을 이런 산중에 마련한 것은 저 아래 세상을 이렇듯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에도 그 연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바둑바위 탁 트인 전망은 마음마저 빼앗아
한숨 쉬고 나니 금세 금오산 정상이다. 정상이라 봤자 별다를 것도 없지만 사람들은 기어이 정상까진 가야 한단다. 겨우 해발 468미터의 금오산이지만 여느 등산처럼 오름에는 빠지지 않는 고비도 있었다. 고비도 넘고 땀도 적잖이 흘리며 정상에 닿았지만 풍경은 바둑바위만 못하다. 어쩌면 우리 인생길도 그 종착점보다는 과정 중에 모든 재미와 기대가 소박하게나마 함축돼 있으리라. 정상에 올랐다는 건 실은, 그 기쁨을 만끽할 여유도 그리 길지 않게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뜻이 아니고 뭐겠는가.
금오산 정상에서 스스로에게 주는 훈장처럼 사진 한 장 박고, 달리 어쩔 도리도 없이 이내 내려오는 길을 탄다. 그 유명하다는 용장사곡 삼층석탑에 이르니 첩첩산과 전원의 풍경이 또 한 번 사람을 홀린다. 350미터의 바위 전체를 하층기단 삼아 세웠다는 삼층석탑은 그 몸체는 4.5미터밖에는 안 되지만 기단부까지 합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이 솟은 탑이 된다.
한참을 밧줄을 잡고 벼랑에 선 바위들을 기어 내려오면 조선초 매월당 김시습이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썼다는 용장사지가 나온다. 그러면 이제 내리는 길도 거의 끝났다는 뜻이다.
왕복 5~6시간이 걸리는 보물 탐험이다.
남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1,300여 년 전을 거슬러 세월을 오르고 또 내리는 일이다. 이름이나 사연은 다 기억하지 못해도 산중 깊숙이 들어앉은 옛 시대의 유물을 보며 시대와 역사의 흐름이란 얼마나 아련하고도 무상한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꿈같은 옛날이야기 들으며 과거와 현재가 슬며시 교차됨을 느낀다. 과거를 돌아보며 불현듯 지금을 살아가는 새로운 시선 하나를 얻는다. 역사에서 오늘을 배운다. 과거의 길을 걸으며 내일의 갈 길을 본다.
글과 사진·이송이(여행작가)